좌충우돌 워킹맘 살아남기
요즘, 나 안녕하지 못하다.
엄마인 나,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 일터에서 마주하는 일 하는 여성에 대한 시각 등 고민하는 시간과 깊이가 깊어지고 있다.
내가 쓰는 뉴스레터에 어떤 분이 ‘엄마의 취미가 아이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라면, 저는 엄마가 왜 그에 죄책감이라든지 자괴감을 느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댓글을 남기셨는데, 그 글을 오랫동안 곱씹었다.
그러게, 나 무슨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죄책감이 들까.
이것도 미안하고, 저것도 미안할까. 나는 왜 이렇게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내고 싶은 것도 많고, 삶에 욕심이 많은 걸까.
내가 유독 죄책감과 자괴감을 많이 느끼는 건지, 아이 탓이 아니라고 하면서 무의식 중에는 아이 탓을 하고 있는 건지도 궁금하고, 나 스스로 꼭 답을 내고 싶은 의문이기도 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 노력하는 중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아이가 아직 어리면 엄마의 취미 시간을 확보한다는 건 내 체력을 담보로 시간을 당겨쓰거나, 남편이나 친정 등에 돌봄 노동을 어느 정도 기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된 이후에는 늘 아이에게도, 부모님이나 남편에게도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공존한다.
생계를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 외에도 나의 만족을 위해 안 해도 큰일 나지 않는 것들을 기어코 해 나가고 있는 중이니까.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복직한 나를 보고 “아이는?”이라고 물어본다. 그럼 저흰 아빠가 주 양육자가 되어 보고 있어요라고 하면 “부럽다”라는 말이 빠지지 않고 돌아온다.
워킹대디에게는 와이프가 전업육아를 담당한다고 했을 때, ‘부럽다’고 하지 않는다.
뭔가 이상했다.
남편이 아이를 보고, 나는 일하는 게 나의 커리어에 집중할 수 있으니 좋겠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돌봄 노동에서 어느 정도 뒷짐 지고 빠질 수 있어서 좋겠다는 의미일까.
또는 ‘워킹맘’에겐 으레 힘들겠다, 대단하다는 등의 말이 붙는데 ‘워킹대디’에게는 별로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워킹맘보다 워킹대디가 훨씬 많을 텐데.
이런 걸 보면 알게 모르게 아직도 워킹’ 맘’이 감당해야 할 몫이 많다는 반증은 아닐까?
출근하기 전 아이가 깨지 않게 살금살금 집을 나오고 일을 하고, 집에 들어가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아이 밥을 챙기고 장난감을 치우는 사이 집을 치우고, 아이를 씻기는 사이 빨래를 하는 등 남편과 나는 쉼이 없다. 그러고 나면 10시, 11시가 되어 겨우 저녁을 먹거나 각자가 하고 싶은 걸 하는데, 그런 날도 많지는 않다.
아이를 재우면서 우리 둘 다 피곤에 지쳐 언제 잠들었는지도 기억 안 나게 같이 잠들어서 나는 그다음 날 아침 또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방을 나와 그제야 화장을 지우고, 지운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그 얼굴에 화장을 하고 출근을 한다.
나의 힘듦에 대해 “힘들죠?”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나, 너무도 육아를 하는 일하는 여성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조직에서 일하는 건 어떤 섬에 나 혼자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기도 하다.
당연하게 같은 자리, 같은 업무에 복직을 했고, 회사에서 복직을 한 케이스가 내가 처음이라는 것도 그렇게 특별하게 다가오진 않았는데, 요즘엔 체력적으로 피곤하기도 하지만 이런 피곤함과 지침을 공감해 주고, 토닥여줄 워킹맘 선배가 없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외로움을 크게 느낀다.
출산 전에는 그 바운더리 안에 나도 속해 있는 느낌이었는데, 출산 후에는 나만 동떨어져있는 느낌이다.
오늘은 요즘 재미있는 드라마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뿐이라 대화에 낄 수 없음이 조금 아쉬웠다.
“나도 영화관에 가고 싶다”라고 말하니 주말에 남편한테 애 맡기고 가면 되지 않나요 하는 말에 아직 어린 자녀를 두신 워킹대디와 ‘우린 서로 이해하지, 그게 불가능하지’라는 눈빛을 주고받았는데, 이런 순간들마다 참 많이 외롭다. 그게 왜 힘든 건지 구구절절 설명한들 아마 아이가 없는 삶에서는 이해 불가능할 뿐이니까.
육아 이야기는 나를 제외한 나머지 분들에게는 관심도 없거니와 이해가 안 가는 이야기들이고, 육아를 하지 않는 신혼이나 싱글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나의 입장도 서로 공감대 형성이 조금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워킹대디들은 어느 정도 육아의 지치는 순간과 힘든 때에 대해 공감을 얻긴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워킹대디들은 엄마에 비해 출산 휴가도 짧거니와 육아 휴직을 해본 경험도 많지 않듯 아이가 더 어릴 때 100% 육아참여를 해보지 않았기에 그들의 공감에서 어떤 공백들이 느껴지기도 한다.
워킹대디들의 그저 버티라, 더 크면 나아진다라는 모호한 말 말고, 더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싶다.
어떻게 버티고, 어떤 게 힘들고 어떤 게 어떻게 나아진다는.
임신했을 때는 몰랐다. 이렇게까지 아이를 가지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데에 있어 무지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임신했을 때는 어떤 걸 조심해라, 뭐가 좋더라 저마다의 축복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 출산 후 육아를 할 때에는 이렇게 하지 말아라, 부모가 되어서…라는 날카로운 잣대만 들이댈 뿐 ‘부모가 처음인’ 부모들에게 다정하지 않다. 오히려 육아의 어려움에 대해 서로가 서로에게 무심하고 무지하다.
육아는 육아를 ‘하게 된’ 사람만의 몫이 아닌데, 이 사회는 너무도 아이를 키우는 게 고달프고 힘들다.
오늘 읽은 구절이 생각난다.
“엄마가 엄마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 것 같아요.”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 김우영 님 인터뷰 중
사회와 주변의 무관심함을 탓하기보다, 내가 엄마로서 지치지 않고 엄마의 경험과 이야기를 더욱 끈질기게 하고 싶은 동기부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