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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진 Apr 10. 2021

어른의 삶을 마치면 돌아갈 날들


얼마 전 유튜브에서 8편짜리 해리포터 영화 시리즈를 5시간 정도로 편집해놓은 영상*을 보았다. 영화 한 편이 30-40분 정도로 요약된 분량이었다. 하루 만에 다 보기엔 많은 양이라 며칠에 걸쳐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봤다. 영상을 제작한 유튜버의 친절한 설명과 드립을 따라가니 영화 한 편 볼만한 시간도 안 된 것 같았는데 다 보고야 말았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어렸을 때, 책이라곤 교과서밖에 몰랐던 초중딩 시절 내게 책 읽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책이다. 그때만 해도 공공 도서관보다는 만화책, 무협지, 판타지 소설을 주로 빌려주는 도서대여점이 더 친숙했는데, 해리포터가 나오길 손꼽아 기다려 대여점에서 겨우겨우 빌려봤다. 그렇게 재밌게 읽던 해리포터였는데, 돈 주고 사서 읽은 기억은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 싶다. 초절정 인기라 빌리기도 어려웠는데, 수십만 원씩 하는 엠피쓰리플레이어나 시디플레이어 같은 건 엄마를 졸라 몇 개나 사서 썼으면서 말이다.


그땐 책에 대한 관념 자체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한번 읽고 말아버릴 것을 사서 읽는 건 낭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특히나 소설책은 절대 두 번 이상 읽지 않았기에 더 그러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어선 지 학창 시절 내내 돈 주고 책을 사 읽은 기억은 거의 없다. 가끔 <느낌표>에서 소개한 책이나 사 읽었으려나. 책은 학교 도서관이나 도서대여점에서 빌려보면 그만이었다.


그런 해리포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를 다시 보니, 풋풋했던 어린 시절 감성으로 회귀하는 기분이었다. 그게 좋아 한동안 그 감정에 푹 빠져있기도 했다.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도 못했고 몰라도 되었던 시절, 별 걱정 없이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꿈꾸고 그려보면 되었던 시절, 미래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시절. 그때는 종종 어른들에게 “어른이 되고 보니 학생일 때가 제일 좋더라”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럴 때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생각하곤 말았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너무 공감이 가서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쩌면 그 시절은 아무 걱정 없이 (그나마) 마음 가는 대로 하며 지낼 수 있어서 아름다웠던 게 아니라, 다시 돌아가지 못하기에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들이 있어서 내 삶에게 고마웠다. 그건 마치 긴 여행 끝에 돌아갈 집과도 같은 날들이고, 고단한 어른의 삶을 마치면 다시 돌아가 쉴 수 있을 것만 같은 고향 같은 날들이다.


* 해리포터 영상 주소  https://youtu.be/t5E7GoiV3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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