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계진 Jun 22. 2021

불면의 밤을 건너서

스물다섯, 고시생활 탈출기


내 이십 대 중반의 밤들은 대부분 잠 못 이루는 밤들이었다. 잠자리에 누우면 머리는 금방 쌩쌩해졌다. 양을 천 마리 넘게 세봐도, 약국에서 수면유도제를 사다 먹어봐도, <논어>를 옆에 갖다 놓고 밤마다 읽어봐도 별 소용이 없었다.


불면증이 시작된 건, 패기 있게 시작한 고시생활이 좌초되면서부터였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남들이 신림동 고시촌에 방을 얻어 비싼 돈 들여가며 학원을 다닐 때, 난 동네 도서관에서 강의 테이프를 들으며 독학했다. 돈이 없기도 했지만 왠지 혼자서도 해낼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처음 본 시험 결과 발표를 듣기 전까지의 일이었지만.


독학은 쉽지 않았다. 뒤늦게 현실 자각을 하고 점차 낙방의 두려움과 불안감에 빠져들었다. 그즈음 하나둘씩 군대에서 돌아오기 시작한 친구들을 보고선 조바심이 났다. 다들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같은데, 나만 계속 제자리걸음 하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시험에 낙방하면 삶이 비참해질 것 같았다.


그즈음부터 밤마다 잠들기가 어려웠다. 생활은 엉망이 됐고, 점수는 갈수록 떨어졌다. 결국 두 번째 시험을 보고 수험생활을 접었다. 결과 발표가 나기 전에 가채점도 하지 않고 마음을 정했다. 스물다섯의 겨울, 짧은 인생에서 가장 큰 포기였다. 씁쓸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음을 비로소 실감한 순간이었다.


군 입대까지는 1년이 남았고, 학교는 설렁설렁 다녀도 될 정도로 학점이 애매하게 남은 상황이었다. 더 이상 엄마에게 생활비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바로 알바를 구했다. 식자재 도매시장 일이었다. 매일 새벽 다섯 시부터 여덟시까지 3시간만 일하면 일당 3만 원을 준다기에 솔깃했다. 그 당시 최저시급 4320원에 비하면 두 배나 많아 쏠쏠한 일자리였다.


시장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약령시장이었다. 주로 한약재를 파는 시장인데 곳곳에 떡집이나 두부집 같은 식자재 판매점도 있었고, 새벽이면 식자재를 납품하는 트럭들이 잔뜩 와서 약재상 점포 앞에 자리를 깔았다. 그때만큼은 약령시장이 식자재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시장은 처음이라 일단 분위기나 알아보자 싶어서 가게를 찾아갔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오토바이를 타고 물품을 배달하는 일이었다. 면허는 없었고 탈것이라곤 자전거 말곤 경험이 없었던 지라 낙담했다. 급하게 면허를 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벽 알바를 구하기 어려웠는지, 사장은 시장이 파한 후에 내게 속성으로 오토바이를 가르쳐줬다. 배달용 오토바이는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균형감각만 있으면 쉽게 몰 수 있었다. 배달 일도 시장 안에서만 오가는 일이라 면허 없이 그냥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알바 생활이 시작됐다. 새벽 다섯 시까지 시장에 도착하려면 네 시에는 집을 나서서 버스를 타야 했다. 첫차 풍경은 삭막했다. 좌석은 거의 채워져 있었고, 승객들은 대부분 무채색 옷을 입고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얼굴에서 표정은 지워진 채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부분 눈을 감고 쪽잠을 청하는 듯했다. 시장까지 30여 분, 귓가로 스며드는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에서 그나마 따스한 온기를 느꼈다.


내가 주로 배달하던 물건들은 계란과 떡이었다. 종종 두부나 어묵 같은 식자재도 함께 배달했다. 계란은 많으면 20판까지 배달했는데, 중심을 잃어 쏟아버리는 걸 막기 위해 최대한 느리게 이동하는 게 관건이었다. 곳곳에 있던 과속방지턱을 오르내릴 때 특히나 주의를 요했다. 쉴 새 없이 오가는 오토바이나 차량들을 피해가는 요령도 필요한 일이었다.


일하면서 가장 힘든 계절은 겨울이었다. 겨울엔 일회용 비닐장갑, 목장갑, 스키장갑까지 손을 삼중으로 막아야 겨우 견딜 만했다. 그렇게 꼈는데도 칼바람은 속살까지 파고들었다. 어떤 날은 영하 십도 밑으로 내려가고 눈도 내렸다. 구매 차량이 평소보다 반절로 줄었는데, 그래도 손님이 있어 일을 아예 쉴 순 없었다. 같이 일하던 알바 형이 노점상에서 오뎅을 사와선 사장과 둘러서서 소주를 마시며 몸을 데웠다. 몸에 알코올이 들어가니 겨울바람이 한결 수월했다. 그때 마신 소주는 살면서 마신 가장 맛있는 술이었다.


한창 일이 몰리는 시간이 지나면 시장에도 잠깐의 여유가 찾아왔다. 커피 한잔 마시며 저 멀리서부터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면 내 마음도 절로 환해지곤 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정반대로 어긋나는 길이었다. 그들과 마주치며 이따금씩 군대에 다녀오면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곱씹어 봤던 것 같다. 한 길만 보였던 삶이 여러 갈래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시나브로 불안은 자취를 감춰갔다. 더 이상 불면의 밤도 찾아오지 않았다.


알바를 그만두고 몇 년 후, 새벽 아닌 시간대에 시장을 지나쳐본 적이 있었다. 새벽이면 어디선가 잔뜩 물건을 싣고 와 내다 팔던 상인들, 빵빵대며 오가던 차들과 오토바이들, 물건을 기다리며 짐 정리를 하던 구매 차량들이 없었다. 생경한 풍경이었다. 지금 그들은 내 눈엔 보이지 않지만 내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거리를 가득 메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날의 기억들도 내 속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날들이 지금의 나를 받쳐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든든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