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시집을 선물했다. 그 당시 감명 깊게 읽었던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라는 책이었다. 집에서 무얼 선물할까 고민만 줄곧 하다가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발견하곤 느낌이 왔다. 딱히 선물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았고, 책 정도면 무난할 것 같았다. 나도 감명 깊게 읽었으니 선물로 줘도 적당할 거라고 생각했다.
서점에서 새 책을 사서는 친구에게 선물을 건넸다. 정작 선물을 받은 친구는 별말이 없었는데 옆에서 다른 친구가 내게 물어왔다. “네가 좋아하는 걸 준거야? 아니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 준거야?” 생각지 못한 질문에 살짝 당황했지만 나는 내가 읽고 감동을 받아서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 선물했다고 답했다.
친구의 질문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집에 돌아와서 그 친구가 시집을 잘 읽을까, 생각해 봤는데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도 비슷한 기억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선물로 받고도 다 읽지 않는 경우도 꽤 있었고, 읽었다 해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좋은 책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선물을 한 걸까? 어쩌면 그 친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선물을 준 건 아니었을까? 일단 무난하게라도 선물을 하면 선물을 주지 않았다는 미안함이나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일은 늘 어려웠다. 살면서 내가 가장 선물을 많이 준 사람은 엄마인데, 어려서부터 해마다 돌아오는 엄마 생일선물을 고르는 일은 마치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 같았다. 생일 즈음이면 형과 무얼 선물할까 답 없는 얘기만 주고받다가 결국 엄마에게 물어보곤 했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적당한 가격대의 화장품을 알려줬고, 가게에 데려가서 우리가 살 수 있도록 해줬다. 그렇게 관성적으로 건네는 선물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런 식 말고, 내가 직접 고른 선물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쌓여갔다.
스무 살이 넘어서 처음으로 내가 고른 선물로 스카프를 드렸다. 역시나 선물 고르는 일은 어려웠다. 주변 친구들은 어떻게 하는지 조사도 해보고, 엄마가 평소에 어떻게 치장하고 다니시는지 살펴보기도 했다. 무심코 "엄마는 무슨 색깔을 좋아해?" 물어봐놨다가 적당한 색깔을 골라 드렸다. 엄마는 환한 미소로 좋아했지만 진짜 좋아하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찝찝했던 것 같다. 엄마가 ‘진정으로 기뻐할’ 선물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생애 최고로 기쁘게 받았던 선물은 유치원 시절 성탄절에 받은 ‘슈퍼 그랑죠’ 조립 로봇이었다. 그랑죠는 그 당시 한창 티브이에서 즐겨 보던 로봇 만화였다. 엄마에게 사달라고 조르기도 많이 했는데, 성탄절 아침 해가 밝고 머리맡에서 큰 양말에 담겨있던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이란, 실로 엄청났다. 밤사이에 산타가 왔다 갔다고 확신했다. 늦잠을 즐기던 부모님을 깨워서는 산타가 진짜 다녀갔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고 자랑했다.
그 후로도 많은 선물을 받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내게 필요한 것들을 먼저 물어오면 그것에 답하고 내가 말해준 선물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어폰, 가방, 모자, 블루투스 키보드 등 적당한 가격대에 정말 필요한 것들을 선물로 받아서 잘 썼다.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어 차츰 필요한 것들을 다 갖추게 되자 생일 즈음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질문에 답할 말이 궁해졌다. 그럴 때면 딱히 필요한 게 없어도 억지로 머리로 짜내선 필요한 걸 말하곤 했다. 선물에 대한 감흥도 줄어갔던 것 같다. 예측 가능한 선물엔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받은 선물 중에 기억에 남는 건, 결혼식 날 받았던 그림 선물, 생일 때 받았던 딸기잼과 책갈피 선물이었다. 그림은 나와 아내를 아는 친구가 우리 둘의 앞날을 상상하며 그린 것이었다. 보름달 밝게 뜬 밤에 새 한 쌍이 마주 보며 들판 위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풍경이었다. 우릴 생각하면서 행복을 기원하며 그렸을 마음 생각하니 고마웠다. 딸기잼은 내가 워낙 딸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직접 만들어준 것이라 더 특별했다. 책갈피도 직접 만든 선물이었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고 만든 것인데, 다소 투박했지만 깊게 마음에 남았다.
상품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상품 아닌 선물을 받아서 기뻤던 걸까.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이 세상 유일한 것이라서 내가 더 특별해지는 기분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안에 담겼을 시간과 마음까지 생각하니 더 고마웠다. 내가 무어라고 나를 위해 정성과 수고를 들인단 말인가. 그만큼 내가 소중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수십수백만 원짜리 명품이나 최신 전자제품을 사다 줘도 이런 감흥은 누릴 수 없을 게다. 어쩌면 좋은 선물이란 이 세상에 나란 사람이 단 한 명 있음을 알려주고, 그만큼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인시켜주는 징표 같은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