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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Feb 11. 2019

업체 등쳐먹는 니들! 나빠!

악의 제국이라는 홈쇼핑의 내면


공정위가 주요 홈쇼핑 4개사 갑질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저의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아 대체 또 무슨 갑질을 했길래.. 답답하네'


'아.. 이번에는 댓글 읽지 말까..'



홈쇼핑에서 10여년간 PD로 일한 저에게 이런 뉴스는 달갑지 않지만 떨리는 손으로 댓글을 살펴봤습니다.


"홈쇼핑 놈들 맨날 업체한테 돈 뜯어내고 말이야"


"저번에 뭘 시켰는데 너무 허접해서 내 다시는 안 시킨다"


"아직도 홈쇼핑하는 사람들이 있나? 나는 TV에서 홈쇼핑 채널 지움 ㅋ"


"업체한테 방송시간만 주면서 편하게 돈 받아먹는 비양심적인 놈들"


"거기 PD들 출연자들이랑 강제로 술자리도 하고 접대도 받는다던데?"


깊은 한숨과 함께 인터넷 창을 닫았습니다.


홈쇼핑은 사실여부를 떠나서 이미 사람들에게는 갑질 회사, 시청자를 상대로 사기 치는 회사 등으로 인식이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잘못한 일이야 백번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현업에 있던 사람으로서 잘못된 시선과 편견만큼 힘 빠지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방송시간만 팔면서 편하게 돈 번다.  

홈쇼핑은 각각 한 시간의 "매장"을 업체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수많은 매장들은 무료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치나 조건에 따라 임대료를 내고 그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고 하물며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입점이라는 개념 하에 수수료를 지급합니다. 전국에 노출되는 한 시간의 방송을, 더군다나 홈쇼핑 회사의 인력과 장소를 활용하는 방송을 무료로 제공해줄 수는(제가 백만장자가 된다면 정말 무료 홈쇼핑 같은 거 해보고 싶긴 합니다) 없지 않은가요. 다만 제가 업체와 수수료 협상을 하는 업무를 하지 않아서 모르는 부분이지만 만약 과도한 수수료를 책정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뀌어야 할 부분입니다.


쓰레기 같은 상품을 속임수로 판다.

정말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안 좋은 상품을 받는 고객의 상심을 제가 짐작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회사의 잘못압나다. 하지만 업계 종사자로서 느끼는 점은 홈쇼핑 QA가 방송 준비를 방해할 만큼 철저하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을 이야기해보면 새롭게 선보이는 아이템 방송을 준비하다가 QA 통과가 안돼서 준비과정이 전부 날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MD도 업체도 안타까운 입장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불량품이 나가는 경우도 있고 상품이 생각보다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비율이 다른 판매처보다 절대 높거나 빈번하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PD들은 힘이 엄청나서 출연진들에게 접대도 받고 갑질 해. 

가장 억울한 이야기입니다. 저의 지인들조차도 제가 홈쇼핑 PD를 한다 그러면 물어봤습니다. 쇼핑호스트들이 방송 출연을 위해 PD에게 쩔쩔매지 않냐고. 10여년을 홈쇼핑 PD로 일하면서 느낀 점은 쇼핑호스트가 홈쇼핑의 꽃이라는 것이며 단 한 번도 쇼핑호스트가 PD 아래에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홈쇼핑 회사가 좋은 쇼핑호스트를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회사는 물론 업체들도 쇼핑호스트에 따라 자신들의 매출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PD가 좋은 호스트의 출연을 위해 부탁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많은 회사들이 PD에게 쇼핑호스트의 선택권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가끔 뉴스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듣다 보면 제가 정말 악의 제국에 속했던 일원인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홈쇼핑의 매출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방송을 하겠다는 업체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 시간 동안의 흥미진진한 방송, 집에서 받아보는 편한 홈쇼핑은 앞으로도 성장할 것입니다. 홈쇼핑 회사가 개선되어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뇌리 속에 있는 홈쇼핑의 이미지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도 홈쇼핑에서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하는 파트너사, 망할뻔 하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홈쇼핑의 문을 두드려 기사회생한 파트너사 등이 들으면 너무 슬픈 이야기니까요.





            오                          


오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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