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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Mar 19. 2019

홈쇼핑과 업체의 아슬아슬한 관계! 그 진실에 대하여

홈쇼핑을 쇼핑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홈쇼핑의 문제점 역시 많은 주목을 받으며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현업에 있는 입장에서 책임을 통감하고 가슴 아픈 사실이지만 질 낮은 상품 판매, 잘못된 정보 안내, 과도한 고객 현혹 등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홈쇼핑의 문제점입니다.

하지만 가장 자주 언급되고 잘 알려진 홈쇼핑의 문제는 바로 '업체에 대한 갑질' 일 것입니다.

억울하다고 하기에는 실제 많은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고 저 역시 홈쇼핑의 여전한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방송을 하며 실제 별별 업체를 만나며 많은 감정을 느낀 제 입장에서 업체와의 관계과 단지 '갑질'이라는 표현 하나로 정의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방송을 하며 만났던 업체분들과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갓 PD로 입봉하고 가장 힘든 점 중의 하나는 업체분들의 불신입니다.

회의 때부터 느껴지는 "이 햇병아리가 우리 물건 진짜 잘 팔 수 있을까?" 하는 분위기가 입봉 PD를 더 긴장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입봉 하고 1년 동안은 방송 때마다 긴장하고 혹 매출이라도 안 나오면 방송 후 리뷰 회의에서 업체분들에게 모진 말도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방송에 소질이 없는걸까 하고 자책할 그 무렵 한 업체의 방송을 하게 되었는데 그 업체는 강력한 시연을 바탕으로 한, 홈쇼핑 업계에서는 아주 유명하고 힘이 있는 업체였습니다.

PD 선배들로부터 업체가 주장도 강력하게 하고 요구사항도 많아 고생 좀 할 것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저는 걱정을 가득 품고 회의실로 향했습니다.

 MD와 업체의 설명이 끝나고 저의 방송 전략을 공유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낯이 뜨거워질 정도로 너무나 엉성한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건 업체분들이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그렇게 하시죠 PD님" 이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경험 많은 업체분들이 어리숙한 입봉 PD의 모습을 보고 매출에 대한 걱정보다는 미래의 좋은 모습을 기대하며 너그러이 넘어가 주신 게 아닌가 합니다.

다행히도 그 방송의 매출을 훌륭하게 나왔고 한동안 그 업체의 전담 PD로 방송에 대한 경험을 많이 쌓았던 기억이 납니다.


종종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분들을 업체로 만날 때가 있습니다.

실제 제가 만났던 몇몇 업체분들이 과거에 주먹 쓰는 직업(?)을 가졌었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분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먼저 제 편견일 수 있지만 험상궃은 얼굴과 우람한 몸집과 너무 다르게  생각보다 너무 착하시고 순수한 분들이었습니다.

직원들이 먹성이 좋아 팔아야 될 돈까스가 자꾸 없어진다며 고충을 토로하던 업체분들, 물건이 잘 작동되는지 시험하다가 앞머리가 타서 오신 업체분들, 장난감 아이템 방송을 하는데 손이 두꺼워서 조립을 못해 낑낑대던 업체분 등 재미있었던 기억이 많습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조직(?)에 몸 담았던 분들이라 그런지 습관적으로 지나치게 깍듯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방송 회의를 들어갔는데 업체분들 중 몇몇 분이 의자에 앉지 않고 벽에 서있길래 기겁을 하며 어서 앉으시라고 한 적도 있고 회의만 끝나면, 방송만 끝나면 업체분들 전체가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90도로 인사를 하셔서 저도 쩔쩔 맨 기억도 있습니다.

또 회의 때마다 방송 때마다 커피, 음료수를 한 손 가득 사 오셔서 몇 번이나 그러지 마시라고 얘기했던 업체, 식품 방송 매출이 잘 나와서 PD님 덕분이라고 냉장고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 만큼의 해당 식품을 주셔서 정중히 거절했던 업체도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가끔 그분들의 순수했던 행동과 말들이 생각나 웃을 때가 많습니다.


PD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사정이 어려운 업체분들이 홈쇼핑 방송을 통해 매출을 올려 회사 사정이 좋아지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한 번은 파산 직전의 카페트 회사가 최후의 수단으로 홈쇼핑에 들어왔는데 공교롭게도 제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업체분들은 첫 회의 때부터 본인들의 사정을 솔직히 털어놓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고 저도 왠지 모를 유대감이 생겨서 유독 열심히 준비를 했습니다.

다행히도 해당 업체의 카페트는 그 시즌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되었고 그 매출을 통해 회사가 다시 정상 운영이 가능해졌습니다.

제가 크게 잘한 것이 없음에도 업체분들은 늘 고맙다고 이야기했고 저도 괜스레 그 업체와의 방송이 있을 때면 좀 더 노력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현재 그 업체는 홈쇼핑 방송을 하지 않지만 대표님과는 아직도 서로 안부를 묻고는  합니다.  

저는 이 분들과의 경험을 통해 홈쇼핑 방송과 업체 간 좋은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물론 이렇게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업체는 업체 나름대로 홈쇼핑에 불만이 있겠지만 저 역시도 일하기 힘들었던  업체분들을 많이 만나봤습니다.


제가 이해하기 힘든 업체분들 중에 하나가 본인 방송에 의욕이 없는 분들입니다.

매출이 잘 나와야 본인들에게도 좋을 텐데 회의 때 PD와 호스트가 방송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심드렁하거나 못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생방송 직전에 깜빡하고 방송 준비를 못했다고 이야기하면 아무리 PD와 호스트가 방송의 신이어도 매출이 잘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식품 방송을 하는데 협력사분이 방송 당일날 해당 식품을 딱 3세트 가지고 오는 바람에 상품 진열은 물론 호스트 시식조차 제대로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식감 자극을 할 수 없는데 방송 매출이 잘 나왔을 리가 없습니다.

또 한 번은 조립이 필요한 상품이어서 업체분에게 방송 스튜디오에 조립이 가능한지 꼭 확인해 달라고 스튜디오 스케줄까지 비워두었는데 업체분은 문제없다며 한사코 리허설을 거부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막상 생방송 당일날 스튜디오에서 조립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고 결국 제대로 조립도 못한 상태에서 생방송을 했습니다. 역시나 매출은 엉망이었습니다.

가끔 무례한 업체분들을 만나서 마음이 편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한 번은 방송 환경 고려 없이 본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방송 흐름을 짜 와서 무조건 그대로 해달라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템에 대해 더 이해도가 높은 업체분들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입장이긴 하지만 무작정 본인들이 생각해온 것 그대로 방송을 해달라고 막무가내로 이야기하는데 정말 난감했습니다.

제가 방송 환경적 요소를 차근차근 말씀드리며 이러한 부분은 방송 구현이 힘들다는 점을 몇 번이나 이야기해도 마치 PD가 의욕이 없고 하기 싫어서 핑계 댄다는 식으로 이해해서 속상했던 적이 있습니다.

또 한 번은 방송 후 스튜디오 정리는 고사하고 본인들 쓰레기 등을 그대로 두고 가서 그 스튜디오에서 다음 방송하는 업체분들을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한 업체도 있었습니다.

회의 시간에 말없이 늦는 업체, 매출 안 나왔다고 리뷰 없이 썡하니 가버린 업체(보통 방송이 끝나면 PD, 호스트, MD, 업체가 간단히 리뷰 회의를 하고 다음 방송 전략을 짭니다), 회의 때 모두가 협의한 내용 무시하고 본인들 마음대로 준비하는 업체 등을 만나면 PD로서 가끔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홈쇼핑 종사자로서 업체분들은 하나하나 소중한 고객들입니다.

PD로서 업체분들과 협업해서 좋은 방송과 좋은 매출을 만들어 보람차고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생각한 대로 방송이 안돼서 업체분들께 죄송한 적도 많습니다.

방송을 같이 하며 업체분들과 호흡을 맞추고 서로 신뢰를 쌓으며 PD로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고 있음을 느끼기에 홈쇼핑의 갑질은 당연히 없어져야 할 적폐이지만 홈쇼핑과 업체의 관계가 단지 '갑질'이라는 말로 단정 지어지기에는 많이 아쉽다고 저는 느낍니다.

좋은 방송과 매출을 제공하는 홈쇼핑과 그것을 믿고 좋은 상품을 제공하는 협력사분들의 선순환이 홈쇼핑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도 느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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