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홈쇼핑에 대한 뉴스 기사를 보고 있었다. 갑질로 인해서 과징금을 내게 되었다는 그런 뉴스였고 아니나 다를까 댓글창은 홈쇼핑 비난으로 도배가 되었다.
"홈쇼핑 놈들 맨날 업체한테 돈 뜯어내고 말이야"
"저번에 뭘 시켰는데 너무 허접해서 내 다시는 안 시킨다"
"아직도 홈쇼핑하는 사람들이 있나? 나는 TV에서 홈쇼핑 채널 지움"
"업체한테 방송시간만 주면서 편하게 돈 받아먹는 비양심적인 놈들"
"거기 PD들 출연자들이랑 강제로 술자리도 하고 접대도 받는다던데?"
업계 종사자로서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유통의 정말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데 왜 홈쇼핑은 늘 이런 취급일까? 비리와 갑질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희화화하기 바쁜 그런 존재.
처음에는 다들 아무것도 모르고 떠들어댄다고 생각하며 짜증이 났다. 말도 안 되는 억측에는 기가 차고 가서 따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홈쇼핑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때는 그렇게 사건사고가 났을 때뿐 아닌가? 늘 TV라는 매체를 통해 일방적으로 상품에 대해 이야기만 하지 않았던가?
시청자들에게 구매를 요청할 때만 친근한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던가?
마치 비밀조직처럼 운영되고 고객에게 홈쇼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중이 알지도 못하고 떠드는 게 아니라 홈쇼핑에서 소통을 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었다.
갑자기 선구자가 된 것 마냥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싶었다. 홈쇼핑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도 풀고 솔직한 사정에 대해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어떤 경로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전할까 고민을 했다.
유튜브를 할까? 블로그를 할까? 인스타그램을 할까?
사실 어떠한 기준은 없었지만 다소 충동적으로 브런치 스토리를 선택했다. 일단 글을 쓰는 것이 제일 빠르고 무엇보다도 심사를 거쳐서 작가를 뽑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홈쇼핑에 대한 글을 하나 빠르게 썼다. 그리고 냅다 작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서는 브런치 스토리에 대해 조금 살펴보기 시작했다.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다. 브런치 스토리 심사가 그렇게 까다롭다는 것이었다. 몇 번 탈락하는 건 기본이고 10번 넘게 심사에서 고배를 마시는 일도 있었다.
사전에 이런 걸 알았으면 좀 더 성의 있게 고심해서 글을 쓸걸 후회도 하면서 다음 심사를 위한 글을 벌써 구상하고 있었다.
브런치팀의 회신은 매우 빨랐다. 다음날 합격이라는 소식을 바로 전해주었다. 잠시 슈퍼맨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나는 입이 틀어막혀있었던 것처럼 마구 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제 막 글을 쓰다 보니 소재도 무궁무진했고 내가 일하는 일상도 글의 소재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글을 쓴 지 한 달 정도 지났다. 구독자가 200명 가까이 모이고 글마다 반응이 괜찮았다. 홈쇼핑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댓글들을 보며 내 기획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처음으로 제안을 받았다. 메일을 눌러보니 놀랍게도 출판사 대표님이었다.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내가 쓴 책을 출판하는 것이었기에 몹시 두근거렸다. 날아갈 듯이 출판사에 방문했다.
"브런치스토리에서 흥미로운 글들을 쓰고 계시더라고요. 독자들 반응도 좋고 브런치스토리에 잘 없던 주제라 알고리즘도 잘 타고 있는 것 같아요"
"네 다행히 독자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출판 제의를 드리고 싶어요. 저희는 큰 회사는 아니지만 유명 드라마 원작이 된 소설도 출판하고 이름 대면 알만한 베스트셀러도 기획해서 출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독자도 200명 남짓이고 초보 작가인데 굳이 출판을 제안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워낙 시장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이다 보니 희소한 이야기들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미처 풀어놓지 않은 에피소드들도 있을 것 같고요. 저희는 독자들이 많이 찾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출판사 대표님과 미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온갖 친구며 지인이며 연락을 해댔다. 이제 나 출간 작가가 된다고.
브런치 스토리에서 글 쓴 지 두 달 만에 내 책이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더 신기한 건 그 이후로 계속해서 출간 제의가 왔다. 국내 1위 출판사에서 찾아오기도 하고 베스트셀러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규모 있는 출판사들에서도 연락이 왔다. 트루먼쇼에 버금가는 몰래카메라 같았다.
고민 끝에 처음 나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고 그렇게 거짓말 같이 내 필명을 딴 책이 출간되었다.
마케팅 담당자가 서점에 쌓여있는 내 책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었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첫 책임에도 불구하고 몇 천부가 판매되었으니 나 나름대로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지금도 책은 판매가 되고 있다.
출간 이외에도 브런치 스토리는 나에게 무궁무진한 일을 연결해 주었다. 월간잡지 '좋은 생각'이 특별판을 낼 때마다 필진으로 참여하는 등의 글쓰기 본연의 일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쓰고 있는 홈쇼핑과 관련한 제안이 쏟아졌다.
정부기관 강의, 대학 강의, 오디오 콘텐츠 제작, 멘토링, 온라인 클래스 제작, 회사 컨설팅 등 내가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감히 생각도 못할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만 썼을 뿐인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전문가라고 불러줬다.
더 뜻깊었던 일은 홈쇼핑에 관심이 있거나 취업을 위해 간절히 정보를 찾고 있던 분들에게 단비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취업준비생부터 쇼호스트 지망생, 드라마 작가, 예비 창업가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만나며 내 나름의 인사이트를 제공했다. 별 것 아닌 내용임에도 정말 도움이 되었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또 신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맞이한 연말. 브런치스토리팀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구독자 기준 상위 5%의 인기 작가라는 배지를 주며 인증을 해준 것이었다.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나는 또다시 내 몸 안에 있는 슈퍼맨의 힘을 실감했다.
슈퍼맨은 정말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