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항상 미래를 고민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으려고 한다. 그중 가장 쉬운 것은 지금 슬슬 대중들의 관심을 얻고 있거나 업계 내에서 트렌드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빠르게 시도해 보는 것이다.
어느 날 본부장의 호출이 있었다.
"회사에서 홈쇼핑 최초로 라이브커머스를 해보려고 하는데 기술적인 테스트 정도는 끝났어. 시험 방송도 몇 번 해봤고"
"네 그런데 저를 부르신 이유가..?"
"그 신사업에 PD 대표로 네가 좀 가야겠다"
TV 홈쇼핑 조직에서 나름 익숙한 일을 하며 편하게 느끼고 있던 터라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럼 그 신사업 조직에는 누가 합류를 하는 걸까요?"
"일단 신사업이니.. 인원은 최소화하기로 했어. 기술 쪽 한 명이 붙을 거고 방송 디자인 관련해서는 한 명 정도 지원이 될 거야. 일단은 팀장도 공석으로 둘 거고. 그리고 일단은 모바일 사업부 내 조직으로 하게 되었어. 임원분이 직속상관이니 진행 상황은 계속 보고 드리면 돼"
결국 방송 실무를 할 인원은 나 하나로 끝낸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방송 쪽 인원은 전혀 없는 모바일 사업부 소속이라니.
회사를 꽤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사무실에 가니 낯익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전임자에게 브리핑을 받았다.
"그냥 홈쇼핑 TV 방송하던걸 모바일로 송출 정도만 해본 상태예요. 그 이외에 아무것도 진행된 사항도 결정된 사항도 없습니다"
정말 백지상태의 사업이었다. 일단 방송용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서 방송이든 테스트든 뭐든 해볼 생각이었다.
"예전에 포토 스튜디오로 쓰다가 지금은 안 쓰는 공간이 하나 있는데 거기를 일단 써"
대망의 신사업 첫 업무는 '청소'였다. 한동안 쓰지 않던 공간의 짐을 빼내고 먼지를 닦고 바닥을 쓸었다. 마음속으로는 이번 달 안에 꼭 퇴사한다는 말을 되뇌며.
어느 정도 공간 확보를 하고 기술 인원을 불러 방송용 스튜디오로 만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예산이 적으니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낡은 장비들을 활용하고 모바일 송출이 가능하게끔 환경만 조성하는데 의의를 뒀다
.
이때부터는 달라진 환경에 놀라고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것의 연속이었다.
먼저 방송할 상품이 없었다. TV 방송을 할 때는 다들 방송을 하고 싶어서 어떤 상품을 빼냐가 문제였는데 검증도 안된 모바일 방송을 하고 싶은 브랜드사는 하나도 없었다.
모바일 사업부 MD들을 닦달해 봤지만 대답은 한결같이 불가능하다였다.
보기 딱했는지 TV 방송 MD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TV 방송 시 모바일 방송도 진행한다는 조건으로 브랜드사와 계약을 진행하여 겨우 상품들은 해결이 되었다.
방송을 진행할 인원도 없었다. 그래도 최소한 10명 이상의 스탭이 함께 하는 TV 방송에 익숙했던 나는 모든 걸 혼자 진행해야 했다. 무대 구성부터 상품 DP 등의 방송 준비는 물론이고 카메라, 기술 등 방송 진행에 필요한 인원도 없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방송 환경이 만들어졌다. 방송이 시작되면 나는 왼손으로 카메라를 잡고 오른손으로 컷을 넘겼다. 그러다 후다닥 컴퓨터로 달려가 고객들의 채팅과 판매 수량을 체크하고 다시 달려왔다. 중간중간 방송 보조를 하는 FD 역할도 내 몫이었다.
방송이 끝나면 방송에 활용한 상품들을 곱게 포장해서 브랜드사로 보내는 업무도 내 것이었다. 그렇게 방송 하나가 끝나면 녹초가 되었다.
방송을 진행할 쇼호스트도 없었다. TV 방송을 진행할 쇼호스트도 부족한 상황에서 테스트 성격의 라이브커머스에 투입할 쇼호스트를 배정받기는 쉽지 않았다. 쇼호스트 입장에서도 잘 갖춰지고 매출도 보장되는 TV 홈쇼핑 방송을 하다가 인터넷 방송 수준의 환경을 맞이하고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실전 경험을 미리 쌓는 셈 치고 신입 쇼호스트를 요청했다. 차라리 내가 교육을 하고 TV 방송 전 연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어필했다.
다른 모든 걸 떠나서 매출이 참혹했다. 몇억은 물론 몇십억 도 거뜬하게 달성하는 TV 홈쇼핑에 비해 라이브커머스 매출은 50만 원, 100만 원대에 불과했다. 어떠한 노력과 요청도 이 귀여운 매출 앞에 묵살되기 일쑤였다. 어렵게 모셔온 브랜드사는 물론 나 역시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스튜디오를 한 번씩 방문했던 동료들은 곧 없어질 사업이니까 힘 빼고 해도 된다는 말을 남겼다.
회사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성과도 나지 않는, 회사에서 추진해 보겠다고 간을 보다가 금방 접어버리는 전형적인 신사업의 흐름 속에 나 역시 TV 방송 조직으로 복귀를 오히려 더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생소한 브랜드의 상품을 방송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약 500만 원의 매출이 나왔다.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나온 매출이지만 절대적 수치가 성공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기에 그냥 그렇게 리뷰 회의를 하고 나서려던 참이었다.
"PD님. 저희는 TV 방송은 고사하고 이렇게 고객들에게 노출될 기회도 많이 없었어요. 500만 원이면 저희가 한 달 내내 몰에 올려놓고 뭔 짓을 해도 안 나올 매출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브랜드사 대표의 감격스러운 말에 대충 시간 보내다가 기존 조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내게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필사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필사적인 일을 대충 했던 것이고.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매출에 연연하기보다 나를 찾아주는 브랜드사가 만족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송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고객들이 구매를 하지 않더라도 오래오래 방송을 보며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브랜드사 대표의 말에 방송 중 상품이 걸린 돌발 퀴즈를 준비해 시청자들이 쉽사리 방송에서 나가지 못하게 했다. 3분 정도에 불과하던 평균 시청 시간이 10분을 넘어갔다.
본인들의 신선한 수산물을 꼭 제대로 홍보하고 싶다는 브랜드사 대표의 말에 장비를 챙겨 들고 바다 한가운데 양식장에서 방송을 했다. 사진 몇 장, 멘트 몇 번이 전부일 줄 알았던 대표는 파도치고 흔들리는 양식장 위에서 어떻게든 방송을 만들어준 우리의 노력에 고마워했고 매출도 많이 늘었다며 즐거워했다.
상품의 개발 배경과 노력이 이루 말할 수 없다던 대표에게는 방송 출연을 제안했다. 모바일 방송이니 부담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을 했고 결국 대표는 출연을 결심했다. 매출은 신통찮았지만 대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해서 속이 시원하다며 후련해했다.
이런 사례들이 계속되자 라이브커머스를 해보고 싶다는 브랜드사가 늘어났다. 매출도 아주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분위기가 반전되자 회사에서도 PD와 스탭들을 조금씩 조직에 넣어주었다.
갑자기 누구도 예상 못한 코로나가 터졌다. 모두가 외출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커머스 업체들의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홈쇼핑도 마찬가지였고 라이브커머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이제서 결과를 보고 허둥지둥 라이브커머스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이미 준비는 물론 온갖 방송을 통해 경험을 쌓아둔 상태였다.
매일매일 방송이 신기록 행진이었다. 100만 원 남짓하던 평균 매출이 600만 원 700만 원까지 늘어났다. 회사에서는 긴급히 사업부를 만들고 관리자며 예산이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방송을 하고 싶다는 브랜드사도 줄을 섰다.
그렇게 코로나 효과가 끝나고 많은 라이브커머스 관련 사업과 회사들이 운명을 달리했지만 우리는 코로나 효과로 쌓아 올린 매출을 기반으로 더 많은 지원 속에 더 좋은 상품과 조건으로 방송을 계속할 수 있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회사 한구석에서 작게 시작했던 신사업은 이제 방송 당 2천만 원에 가까운 매출을 내기 시작했다. 전담 임원도 생기고 20명이 넘는 조직이 되었다.
먼지를 뒤집어쓰며 시작했던, 몇 번이고 포기하려고 했던 이 사업은 어느새 회사에서 꽤나 중요한 사업이 되었다. 처음부터 함께 한 나는 그 주역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슈퍼맨의 힘은 오늘도 내 몸속에서 주체 못 하고 날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