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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Aug 22. 2024

14화 스카웃 그리고 50명 조직의 수장

"오랜만이어도 호흡이 잘 맞네요"

"자주 오세요. 저도 너무 재미있어요"


오랜만에 친했던 쇼호스트와 방송을 잘 마무리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PD님 경력이 얼마나 되셨죠?"

"10년 넘었죠. 세월이 빠르네요"

"라이브커머스 쪽 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3년 넘어가네요 이제? 그런데 갑자기 제 경력을 왜.."

"아닙니다. 문득 궁금해서요"


사람이 안 묻던 것을 물어보는 것에는 무조건 이유가 있다.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왔다.


"커머스 중견 회사에서 라이브커머스 총괄을 찾고 있다고 하네요. 제가 PD님을 추천드렸는데 생각 있으시면 간단히 인터뷰 해보시죠"


그때까지만 해도 흔하디 흔한 이직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제안 들어보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고 업계의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알겠다고 하니 쇼호스트는 냉큼 바로 일정을 잡아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회사였고 라이브커머스가 사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 사업의 총괄이라니. 일개 과장에게 별 제안이 다 들어온다고 생각했다.


잠시 뒤 쇼호스트로부터 당장 내일 시간이 되냐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 날은 휴일이었고 의아해하는 나를 쇼호스트는 면접 준비도 하지 말고 간단히 차 마시는 자리라 생각하라며 안심시켰다. 간단히 이력서를 만들어서 보내고 다음날 무슨 일이 펼쳐질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카페에 앉아 있는데 반팔과 반바지 그리고 큰 배낭을 멘 한 남자가 나를 아는 척했다.

조심스럽게 누구시냐 물어보니 그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본인이 대표라고 말했다.

늘 단정하고 딱딱한 대표의 모습만 보던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첫인상이었다.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 시간 동안 나보다 대표의 말이 더 많았다.  본인이 생각하는 회사의 비전과 그 속에서 라이브커머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몇 번이고 강조했다. 그리고 본인이 바꿔가고 있는, 구글과 메타와 유사한 기업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제 TV홈쇼핑보다 라이브커머스가 더 재미있고 관심이 있던 나는 열심히 경청했다. 라이브커머스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 회사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함께 하시죠. 긍정적인 답변 주시면 너무 좋겠습니다"


헤어지며 대표는 형식적인 것 같기도 하고 진심인 것 같기도 한 모호한 말을 남겼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다음 날 인사팀장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직원이 바로 연봉을 비롯한 처우에 대해 안내를 했다.  처음 제시한 연봉을 듣고 그냥 현재 연봉의 40% 올려서 다시 역제안을 했다. 다소 당황한 듯한 인사팀장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 후 다시 인사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표님께서 PD님이 무슨 조건을 이야기하든 받아들이라고 하시네요. 연봉은 말씀하신 수준으로 하고 혹시 좀 더 고민하실까 봐 스톡옵션도 추가로 드리기로 했습니다. 처우는 회사 임원들과 비슷한 수준이고 직급으로 굳이 따진다면 회사 NO.5 정도 되실 거예요. 담당하실 조직에는 50명의 조직원이 있습니다. "


슈퍼맨의 힘이 일렁거렸다. 1천 명 회사의 넘버 5가 된다니. 50명 조직의 수장이 된다니. 진짜 내 인생은 남들과 다르다. 이미 마음은 다 넘어간 상황에서 조금만 더 고민해 보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조언을 구할만한 사람들은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연봉 수준이며 직급이며 지금 상황치고는 굉장히 높다는 것이었다. 회사의 간판이 지금보다 내려가는 것만 제외하면 모두가 입을 모아 안 갈 이유가 없다며 부러움을 표했다. 


대표는 내가 고민 중이라고 생각했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을 해왔다.

마침내 나는 결심했다. 익숙한 이곳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다고.

슈퍼맨의 힘을 다시 한번 시험해 보겠다고.


회사에 퇴사 소식을 알리자 회사는 충격에 빠졌다.

불만 없이 충성심 있다고 생각했던 직원이었고 회사 라이브커머스 사업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직원이라는 이유였다.

퇴사 선언을 한 이후 많은 관리자들이 나를 불렀다.


"회사 간판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여기서 나가면 절대 다시 여기 급 회사로는 못 와"

"연봉은 당연히 더 주겠지. 그런데 안정감이 다르잖아"

"회사도 더 멀어진다며? 그게 얼마나 귀찮은데?"


온갖 이야기로 나의 잔류를 희망하는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같이 들었지만 그런 말로 내 마음이 바뀔 정도였으면 퇴사 선언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업부 최고 임원이 나를 불렀다.


"돈이 불만이냐?"

"그런 건 아닙니다"

"직급이 불만이냐?"

"그런 것도 아닙니다"

"잔류하겠다면 연말에 최고 고과와 최고 연봉 인상을 약속해. 그리고 곧 관리자도 될 거고"


너무나 달콤하고 분에 넘치는 말이었지만 나는 결국 거절을 했다.

그렇게 정들었던 홈쇼핑을 떠나 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입사 첫날 나는 조직원들에게 모두 모여달라고 요청했다.


"제가 관리자 경험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소리를 할 수도 있고 조직 관리를 잘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전에 꼭 오셔서 저에게 잘못된 부분을 말해주세요. 그게 조직이 올바르게 나가는 방향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주시는 분이 조직의 최고 인재입니다."


물론 모두가 시큰둥하게 반응을 했다. 적어도 나는 진심이었다. 익명게시판을 만들고 누구든 어려운 점이나 불만 사항을 털어놓아 달라고 했다.


어느 날 나에게 한 조직원이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새롭게 해 보자는 업무가 너무 추상적이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불평만큼 그 이유도 조목조목 밝혔다. 나는 그 업무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 보고 내가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전체회의를 열어 해당 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그것을 일깨워준  직원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비로 포상도 진행했다.


적어도 진심이라는 것은 전해졌는지 그 이후 조직원들은 수시로 내 자리로 와서 업무의 어려운 점과 불만 사항 등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출장 등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는 업무에는 내가 먼저 나섰다. 그러자 너도나도 먼저 솔선수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어느 날 대표가 나를 불렀다.


"맡고 계신 조직이 분위기가 너무 좋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사업도 중요하지만 그런 좋은 기업 문화 만들어주시는 것도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보통 칭찬을 받으면 더 잘하고 싶어 진다. 모든 조직원과 1:1 미팅을 해서 현재의 어려움과 강점을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업무를 주려고 했다. 또 나는 내 연봉의 일부가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회사가 책정한 것이라 생각하고 조직원들의 동기 부여를 위한 것에는 아낌없이 썼다. 


회사들의 이야기를 익명으로 하는 앱 내 회사 게시판에 우리 조직에 관한 이야기도 종종 올라왔다. 조직 문화에 대한 즐거움은 물론이고 조직장인 나에 대한 칭찬도 있었다. 다른 조직장들도 나를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힘을 얻었다.


어느 날 몇 통의 메일을 받았다.


'계시는 조직의 업무나 문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저도 조직원으로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조직들에 속해 있는 직원들이었다. 은근슬쩍 자리 있는지 물어보는 직원들도 생겨났다. 

적어도 조직문화만큼은 내가 좋게 바꾸고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회사는 동호회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사람이나 조직이 좋기만 해서는 안된다.

성과가 있어야 조직은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좋은 조직 분위기를 발판 삼아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슈퍼맨의 힘이 때맞춰 꿈틀거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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