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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Aug 23. 2024

15화 창립 이래 최대 매출을 기록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대한민국의 이커머스는 쿠팡과 네이버가 장악했다. 그 외 커머스 플랫폼은 하루하루가 생존경쟁이다. 


입사 첫날 대표가 말했다.


"우리가 지금 아무리 좋은 상품과 가격을 위해 노력해도 쿠팡과 네이버를 이길 수 없어요. 상품과 가격이 아닌 다른 경쟁력을 만들어 주세요. 그게 사업부의 미션입니다" 


커머스 회사에서 상품과 가격이 아닌 경쟁력을 갖추자니 무슨 이런 뜬구름 잡는 소리 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넘게 고민을 하다가 머리도 식힐 겸 극장에 방문했다. 내가 평소에 정말 좋아하고 덕질을 하던 마블의 새 영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에 대한 평이 매우 안 좋았고 더 흥미로운 영화들이 있었지만 나는 고민 없이 마블 영화를 선택했다. 영화가 완성도 있지는 않았지만 쿠키 영상으로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를 가늠하는 것만으로도 팬인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영화에 호평을 할 수는 없었지만 티켓값이 아깝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구독하고 평소에 애청하던 유튜브 채널의 라이브를 시청했다. 심심찮게 보이는 슈퍼챗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정말 팬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다. 


마블팬이었던 나는 더 좋은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기꺼이 마블 영화를 위해 티켓값을 지불했다. 유튜브 채널의 팬들은 본인에게 직접적인 이득이 없음에도 슈퍼챗이라는 비용을 들여 채널을 응원했다.


상품과 가격이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다는 가정하에 팬들의 힘을 더한다면?

어쩌면 최저가 혹은 최고의 선택은 아닐 수 있어도 돈을 지불한 고객들이 있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이론이었지만 다음날 바로 대표를 찾아갔다.


"대표님. 말씀대로 저희가 같은 상품이라도 쿠팡이나 네이버에 비해 압도적인 혜택을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가격과 상품 경쟁력으로 승부하면 언제가 무조건 지게 되는 싸움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저는 팬덤 기반의 커머스를 해보려고 합니다"


"팬덤이요?"


"넵. 콘텐츠를 통해 커머스를 하는 사업부라 가능한 비즈니스라 생각합니다. 출연진이나 프로그램의 팬들을 만들고 쌓아서 상품에 의존하는 커머스보다는 팬덤에 기반한 커머스를 해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지원할 사항 있으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나는 일단 우리의 상황에서 영입할 수 있는 최선의 출연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폭발적인 관심을 받던 서바이벌 TV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었던 여성 그룹 전체를 영입했다. 섭외 비결은 따로 없었다. 그저 소속사를 무작정 찾아가 우리의 사업 방향성을 이야기하고 같이 일하자고 말했을 뿐이다.

또 한때 국내 최고 인기를 누리던 걸그룹의 멤버도 영입했다. 그룹은 해체했지만 꾸준히 SNS를 통해 본인만의 영역에서 팬들을 만나고 있는 것을 높게 샀다.

커머스 쪽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 개그맨 역시 섭외했다. 쇼호스트와의 케미가 기대되면서도 커머스 이해도가 높아서 가치가 있었다.

나름 반짝 인기를 끌었던 회사 캐릭터도 이참에 부활시켰다. 오히려 귀여운 캐릭터가 대세인 지금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출연진들을 구성하고 또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PGM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실제 배우들이 출연해 공연의 일부를 라이브로 보여주는 공연티켓 PGM

실제 여행작가가 루트 그대로 브이로그 형태로 보여주는 여행상품 PGM

쇼호스트의 멘트 전혀 없이 ASMR로만 진행되는 식품 PGM

시청자들의 채팅에 따라 방송의 진행이 결정되는 생활용품 PGM


이렇게 순식간에 출연진과 콘텐츠를 베이스로 한 특화 PGM이 만들어졌다.


문득 단순 한 시간 방송으로는 팬들과의 교감을 쌓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회사 앱 담당을 찾아갔다.


"지금 같은 커머스 형태가 아닌 SNS 형태로 앱 UI를 바꾸고 싶습니다"

"네??? 앱 UI를 바꾼다고요?? 대표님과 상의해 볼게요"

"제가 대표님은 설득하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 길로 대표를 찾아가서 기존의 상품 중심 앱 UI는 차별성이 없다고 어필했다. 전체적인 앱을 바꾸는 것이 부담이 된다면 라이브커머스 영역이라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해보시죠. 개발팀에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대표는 의외로 바로 승낙을 했고 그 길로 앱 개편은 시작되었다.


SNS처럼 각 PGM마다 공간을 주고 주인장들이 콘텐츠를 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방문한 팬들이 본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영역도 개발하고  팬 규모의 척도인 구독 기능도 추가했다. 


급격한 변화에 회사의 임원진들도 조직 내 조직원들도 우려를 표했다. 팬들이 커머스 플랫폼에 모이면 얼마나 모이겠냐는 불안의 소리도 커졌다.


마침내 앱이 새롭게 오픈되고 PGM들이 시청자들에게 선보여졌다.

커머스에 관심이 없는 출연진들의 팬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팬들이 방송을 시청하다 보니 채팅도 재미있어지고 출연진들도 소통하기가 편해졌다.

출연진들과 담당 PD들은 앱 내 본인들 PGM 영역에 경쟁하듯 단독 콘텐츠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출연진들은 본인의 실제 SNS에 본인의 일정을 올리며 부탁하지도 않은 상품 홍보까지 진행했다.


그렇게 3달이 지났고 놀랍게도 유튜브에서도 모으기 힘들다던 구독자 1천 명을 넘어가는 PGM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덩달아 매출도 늘어가기 시작했다. 최저가가 아닐 수 있지만 본인들이 좋아하는 출연진과 PGM을 위해 고객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어느덧 우리의 방식은 경쟁사들이 견제하고 문의를 해오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어느 날 가전 담당 MD가 급하게 나를 찾았다.


"S전자에서 미팅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같이 가셔야 할 것 같아요"


S전자에서는 새로운 시리즈의 스마트폰 등이 나올 경우 대규모로 공개 론칭 이벤트를 진행한다. 매번 네이버 등 대형 플랫폼에서 독점하듯이 진행이 되어오고 있었다.

회의의 주된 내용은 놀랍게도 우리의 플랫폼에서 최초 공개 이벤트를 진행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왜 하필 저희와 이 이벤트를 진행하겠다고 결정을 하셨나요?"


나의 질문에 S전자 담당자가 답했다.


"요즘 운영하시는 플랫폼의 모든 지표들이 상승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트렌드에 맞게 좋은 출연진들이 PGM을 이끌고 있고 시청자들 반응도 좋다는 걸 저희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S전자의 최신 스마트폰과 탭 등을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하고 판매하는 이벤트를 독점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고객들의 반응 역시 폭발적이었다.


그렇게 폭풍 같은 한 달이 지나고 조직 내 데이터를 담당하는 직원이 나를 찾았다.


"저도 혹시나 싶어 더블 체크를 해봤는데.. 저번달 매출이 월 매출 기준으로 창립이래 최대예요"


그렇게 여러 가지 들이 운 좋게 맞물려 우리 조직은 창립 이래 최대 매출을 기록하게 되었다. 커머스 플랫폼 경쟁에서 밀려 서서히 죽어가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던 회사 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50명 조직원을 모두 불러 모았다.

우리는 사무실에서 다 같이 햄버거 세트를 먹으며 지난 몇 달간의 정신없었던 질주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실 저는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왜요? 어떻게 아셨는데요???"


모두의 시선에 나에게 쏠렸다.


"아.. 아니에요. 말이 헛나왔네요"


슈퍼맨의 힘이 내게 있다는 건 아직 비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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