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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Jan 13. 2020

지금 방송하는 거 일본 제품 아닌가요?

2019년 유통업계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는 역시나 일본 불매운동이었다. 소비자들의 일본 불매운동 영향으로 특수와 어려움을 모두 경험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홈쇼핑 역시 일본 불매 운동으로 2019년을 숨 가쁘게 보냈다. 2019년 대한민국을 움직인 그리고 아직도 진행형인 이 일본 불매운동은 지난해 홈쇼핑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홈쇼핑 여행상품의 상당수는 일본 여행상품이다. 가격 부담도 적은 데다가 가까운 거리로 인해 일본의 다양한 지역에 접근이 가능해서 홈쇼핑이 각 도시의 개성에 맞는 여행 상품을 제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식도락, 고성, 온천, 축제 등 다양한 컨셉으로 매주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떤 날은 전 홈쇼핑에서 일본 여행상품만 방송할 때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홈쇼핑에 도배되다시피 하던 일본 여행 상품이 일본 불매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거짓말같이 대부분 사라졌다. 홈쇼핑 자체적으로 여행사와 협의하여 일본 여행 상품을 빼기도 했지만 실제 계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진행했던 일부의 일본 여행 상품도 예약 건수가 평소의 2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해 여행사 측에서도 더 이상 일본 여행 상품을 꺼내놓지 않았다. 또한 이미 오래전에 예약을 받아 여행 날짜만 기다리던 일본 여행 상품도 고객들의 취소로 여행 상품 진행 자체가 불가능해진 경우도 많았다. 나 역시 작년 초에 미리 예약해두었던 미야자키 여행이 고객 부족으로 취소되었다. 홈쇼핑의 정해진 여행 방송 슬롯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일본 상품이 빠지자 그 자리를 동남아와 제주도 여행이 발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홈쇼핑에 종사한 지 10년이 되었지만 작년처럼 동남아 여행 방송이 자주 편성되고 모객 또한 원활히 잘 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일본 여행의 대체재로 선보인 베트남, 태국, 대만 등의 여행 상품은 연일 히트를 치며 얼떨결에 홈쇼핑의 효자 상품이 되었다. 나 역시 취소된 일본 여행 대신 대만의 타이중 여행을 다녀왔다.  


또한 홈쇼핑의 꾸준한 매출을 보장해오던 일본 상품들이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시청자들을 만나던 유명한 클렌징 폼과 마스크팩이 홈쇼핑 방송에서 사라졌고 어쩌다 하는 일본 상품들도 고객들의 실시간 지적과 외면으로 맥을 추지 못했다. 또한 홈쇼핑에서 쏠쏠한 매출을 올리던 몇몇 유명 화장품 역시 직원들에게 일본 아베를 높게 평가하는 막말 영상을 시청하게 한 한 회사가 원료를 공급하는 브랜드 리스트에 올라 삽시간에 홈쇼핑 방송에서 사라졌다. 


작년 하반기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던 상품들도 협력사와의 협의를 통해 모조리 진행이 스탑 되었다. 실제 오랜 준비 끝에 선보이려던 화장품, 속옷 등이 눈물을 머금고 런칭을 연기했다. 나 역시 모 의류 브랜드의 남성 셔츠 런칭을 한동안 준비하고 있었는데 원래는 영국 브랜드로 소개가 되던 브랜드였다. 그런데 일본 회사가 얼마 전 인수한 사실을 알게 되어서 런칭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방송을 하는 도중에도 지금 방송하는 상품이 일본 브랜드인지 물어보는 고객들의 문의가 정말 많았다. 오해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방송을 통해 혹은 고객과의 채팅을 통해 일본 브랜드가 아님을 전달하면서도 일본 불매 운동이 정말 전국민적으로 행해지고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한 번은 모 시계 브랜드의 상품을 방송하다가 고객들이 일본 브랜드임을 알아내어 방송이 끝날 때까지 항의 메시지를 받기도 했고 실제로 이 방송을 진행했던 PD와 MD는 큰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일본 불매 운동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홈쇼핑사 몇 군데는 일본 상품 방송 진행은 물론 쇼핑몰에 일본 상품을 몇 천 건씩 올려두었다가 고객들과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한번은 계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본 상품을 방송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고객들의 항의가 계속되었고 미안한 마음과 민망한 마음이 뒤섞여 겨우겨우 진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고객들이 채팅으로 서로 대체 상품을 알려주고 내가 독립운동을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꼭 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을 보며 울컥한 적이 있다. 또한 그 시즌에 상품을 팔지 못하면 본인의 회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한국인이라면 참여해야 하지 않겠냐며 물건 못 팔아도 어쩔 수 없다며 이야기하던 협력사 직원분도 기억에 남는다.


처음 일본 불매운동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소극적이었다. 내가 불매할 생각은 있었지만 정부가 독려하는 것도 아니고 자발적인 운동이었던지라 사회적으로 잠시 불타오르다가 사그라들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홈쇼핑에서 방송을 하고 상품을 팔다 보니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일본 브랜드를 지적해주고 일본 상품에 대해 철저히 외면하는 고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이 일본 불매운동을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이제 일본 불매운동이 끝물이고 올해부터는 서서히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나 역시 이 일본 불매운동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작년 국민들의 똘똘 뭉친 모습을 상품 판매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보고 나 역시 동참한 입장에서 감히 제2의 독립운동이었다고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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