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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Jan 04. 2022

커머스에서도 말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을까?

제가 자주 가는 약국에서 중년의 약사님은 약을 건네며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복용법은 지켜주시고요. 아프지 마시고요"


무뚝뚝함에 가까운 말투로 말을 건네지만 '아프지 마시고요' 그 한마디가 늘 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바로 먹어야 하는 약이 아니면 괜스레 그 약국에서만 약울 구입하곤 합니다.


또 자주 가는 작은 마트에서 과일을 사면 항상 사장님은 넉살 좋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부탁인데 맛없으면 다시 가져오세요. 저도 맛없는 거 팔고 싶지도 않고 여기서 저희 믿고 사가는 손님들이 맛없는 과일 먹는 거 제가 못 보겠어요. 사신 거보다 더 드릴 테니까 맛없는 과일은 제보 좀 해주세요"


한 번도 환불이나 교환을 받은 적도 없고 늘 맛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장님의 그런 멘트가 왠지 신뢰가 가서 과일은 꼭 그 마트에서 사게 됩니다.


돈 안 드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 저는 그 약국의, 그 마트의 충성 고객이 되어서 지속적인 매출을 올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새 유행하는 단어인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홈쇼핑이나 라이브 커머스에도 이런 방식이 먹힐까요?


홈쇼핑에서 인정받는 쇼호스트는 판매를 위해 푸시를 잘하는 호스트가 아닙니다. 고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멘트와 감정적으로 다독거려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호스트입니다.


같은 건조기를 판매하는 홈쇼핑 방송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내 생활이 얼마나 편해지겠어요? 힘들게 건조대에 널지 마세요. 게다가 오늘 가격이.. 추가 구성으로는.."


"저도 세탁하고 나면 탈탈 털어서 널어야 하는 스타일인데 그러다가 손목이 나가서 몇 달 고생했었어요. 다들 그런 경험 있으시잖아요. 저는 건조기 쓰면서 그 시간 절약해서 아이들 얼굴도 한번 더 보고.."


그저 물건 팔려고 떠드는 것이 아닌 왠지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느낌이 들면 나도 모르게 하나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라이브 커머스 패션 방송을 진행할 때의 일입니다. 쇼호스트가 메인으로 준비한 화이트 컬러의 옷을 입어보며 준비해온 멘트들을 하는데 시청자 중 한 명이 제일 구석에 걸려있는 블루 컬러의 옷을 궁금해했습니다.


"지금 옷 설명 다 끝나시면 끝에 있는 블루 컬러 옷도 한번 보여주세요. 집에 화이트 톤이 많아서 블루톤도 궁금해요.."


무난하게 '네! 잠시 후 보여드릴게요!'라고 응대를 하고 싶었는데 문득 작은 모바일 화면으로 우리 방송을 열심히 보면서 채팅까지 남기는 고객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금해하시면 저희가 못 참죠! 지금 바로 보여드릴게요!"


채팅과 동시에 쇼호스트에 신호를 하니 찰떡같이 알아듣습니다. 제가 한 채팅에 한마디 덧붙이며 서둘러 블루 컬러 옷을 챙긴다.


"어머 고객님 죄송해요. 제 할 말만 하느라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네요~ 이런 방송의 주인은 시청자들이고 그분들의 요청사항을 바로바로 반영하는 게 또 묘미 아니겠어요? 바로 블루 컬러 옷 보여드립니다!"


넉살 좋은 쇼호스트의 멘트와 함께 블루 컬러 옷의 설명이 한참 이어졌습니다. 원하는 바를 얻어서 만족했는지 아니면 본인이 보고 싶던 옷 설명에 집중했는지 그 고객의 채팅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렇게 방송이 끝나가고 쇼호스트의 마무리 멘트가 나올 때쯤 올라온 채팅 하나.


"오늘 고맙습니다.. 제 거랑 언니 거랑 두 개 주문했네요 번창하세요.."


가끔 라이브 커머스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여러 회사의 방송을 모니터링하면서 특히 쇼호스트의 멘트나 제작진의 채팅 응대를 유심히 봅니다.

어떤 회사는 쇼호스트가 본인의 설명에 빠져서 시청자들의 채팅을 외면하기도 하고 제작진이 고객의 질문에 네  한 마디로 끝내기도 합니다.

그런 방송들이 보면 결국 채팅 수도 적고 방송의 활기가 없어 보입니다. 시청자와의 소통이 가장 큰 차별점인 라이브 커머스에서 말입니다.


반면 어떤 회사 방송에서는 쇼호스트가 시청자들과 대화를 하느라 방송 흐름이 엉망인 경우가 있고 제작진도 시청자들과 온갖 농담을 하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런 방송은 다 읽지 못할 정도로 채팅도 많이 올라오고 그에 따라 방송의 흥은 더 올라갑니다.


두 방송 모두 매출을 넌지시 물어보면 매번 그렇지는 않지만 후자의 방송 매출이 더 낫습니다. 또 꼭 매출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시청자들이 다음에 또 보러 오겠다는 말을 하는 비율도 후자가 훨씬 높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데 말 한마디로 천냥 벌지 못하라는 법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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