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노약자' 중 약자에 속합니다.
갑자기 잘 아프고, 환절기에 힘들어집니다.
태어난 이래 쭉 그런 사람입니다.
계획적인 성격이었던 저에게 이건 몹시 짜증 나는 일이었죠.
뭘 좀 해보려면 곧 아파서 계획 다 틀어지고
회복된 후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으니까요.
우주까지라도 훨훨 날 것 같은 성격인데
몸이 안 따라주는 게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인지...
어리석었던 어린 날에는 계획했던 일 다 포기해버리고
누워서 짜증, 원망, 한탄으로 속만 부글부글 끓였습니다.
나이 50이 넘었어도
우주까지 날아갈 기세로
빡빡한 계획표 짜놓고 사는 건 여전합니다.
그러다 몸 상태 안 좋은 게 이삼일 간다 싶으면 어김없이
뉴스에서 환절기이니 노약자는 건강 유의하라는 말이 들립니다. ㅎㅎ
이제는 어린 날에 그랬던 것처럼
짜증 내면서 드러눕지는 않습니다.
빡빡한 계획표 속에서 꼭 해야 할 일만 하고
나머지 일정은 멈추고 편안하게 쉽니다.
몸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밀린 동영상도 보고
폴더의 사진 정리도 하고...
내년부터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도 몰라서
이번에는 '농사 달력' 정리도 했지요.
몇 년 만에 꺼내보는 건지 손볼 데가 많더라고요.
이렇게 부분적으로나마 일상을 유지하다가
몸이 나아지면 멈춘 곳에서 다시 이어갑니다.
당연히, 다 포기해버리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낫습니다.
일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기막힌 정치, 경제 뉴스들이 많아도
통장 잔고가 바닥을 쳐도
몸이 좀 안 좋아도
빨래하고, 청소하고. 나에게 끼니를 챙겨 먹이는
기본적인 일상이라도 유지하다 보면
안 좋은 환경, 상황에 마음까지 병드는 것을 막아주어
맑은 정신으로 올바른 생각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일로 인해 일상이 깨진 사람이 있다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절망을 딛고 일어나는 힘,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힘이 생길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