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태양의 기세가 꺾이면
남들은 밭일을 하러 나가는데
저는 개들 산책시키러 나갑니다.
포기한 텃밭이라 해도
심어놓은 것들은 돌봐줘야 하고
그 시간에 풀이라도 뜯어말리면
돈 사서 보탬이 될 텐데
제 계획표에 그런 일들은 오전에 하는 걸로 되어있고,
안 그래도 야행성인 사람이
요즘은 밤이 시원해서 그런지
거의 밤을 새우고 오전에 자는데
자느라 못 한 일은 못 한 채로 넘어가고
개들 산책시키는 시간을 지킵니다.
오전에 못 한
농사든 채집을 해서 돈 사는 것도 좋지만
저는 소유보다는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 내 생각, 내 기분, 내가 살아있다는 것...
저는 제 존재가 가장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의 존재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내신랑 천일동안 님이
한 건의 일을 마치고 작정하고 쉬는 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같이 놀아주는 것,
우리를 만나러 손님이 오시면
손님에게 온 집중을 하는 것,
개들과 고양이들에게 신경 쓰는 것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서 소유는 풍족하지 않아도 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소유는 채워도 채워도 부족함을 느끼지만
존재는 관심을 두면 둘수록 풍성해집니다.
행복은 존재에 대해 눈 뜰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