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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니크 Dec 04. 2017

큰 발 콤플렉스

  발이  편이다. '크다'라고 표현하지 않는 이유는, 누가 봐도 왕발이다 싶을 정도로  발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가 작은 탓에 언젠가 샌들을 사러 갔을  가게 주인아저씨로부터 "아니, 키도 작은 아가씨가 발이 이렇게 커요?"라는 소리도 들었더란다.


그냥 '발이 몸에 비해 크다'라고 생각하며 살다가 콤플렉스 수준으로 발전한  사회 초년생 때다. 그땐 근무  걸을 일이 많아서 운동화를 새로 사러 나갔다.    운동화를 신는 날은 연중행사 수준으로 적었기에 한두 개의 단화 외에는 적당한  없기도 했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이상하게 평소  맞던 사이즈의 신발도 맞지 않는 .


  그날도 그런 날이었는지 평소보다  사이즈나  신발을 신고 나서야 직원의 '이제  맞네' 같은 눈길을 받을  있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회사 규정에도 맞고  취향에도 맞는 디자인을 찾기가 너무 힘들고 당장 내일 신고 출근할 신발도 없으니 어쩔  없어 신었던 신발을 사들고 집으로 갔다.




  회사에서 우리 팀에는 왕고참 선배가 있었는데  사람은 누구에게나 말을 함부로 하곤 했다. 이제  입사한 막내였던 나야 말할 것도 없이  선배 눈에는 신경  가치도 없는 피라미였을 것이다. 새로  신발을 신은  날이자  선배와 같이 마감 조였던  들려온 한마디는 이후  년간 나의 '신발 고르는 의사결정' 지배했다.


  ", 왕발아. 저녁 먹으러 가자."


  충격적이었다.

  친구들에게 '내가 발이 커서...'라고 말해도  들려오는 대답은 ' 정도는  것도 아니야'라든가 '   티도 안나' 같은 말이었는데.

  왕발이라니.

  스스로 발이 크다고 생각했지만 타인으로부터 발이 크다고 지적받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배는 언제나 그랬듯이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일 텐데,  오랫동안 신발을  때면 '제가 발이 커서요' 입에 달고 살았던  보면  말은 나에게 나름 영향력이 있었던 듯하다.


  뾰족한 앞코의 하이힐이 됐든, 무채색의 펑퍼짐한 러닝화가 됐든 내가 신발을 고르는 기준은  하나였다.

  발이 작아 보일 .


  발이  보이면 큰일이라도  것처럼 굴었다.


  운동화는  맞게 신으면 나중에 걸을  힘들어진다는 판매 직원의 말은  무시하며,  견디다 싶을 정도로 작은 사이즈보다   사이즈  정도의 신발만을 구매했다.  때는 발을 구겨 넣어서 구매했던 신발을 평소에는 발이 아파 도저히 신고 다닐 수가 없어서 누군가를 주거나 수거함에 버린 적도 있다.


  다행히 신발을 사면 3~4년은 거뜬히 신어 버릇해서 신발을 자주  일은 없었다.

  그렇게 살고 있었다.




  렇게 살던 어느 날, 유행이 지나도 같은 신발을 신고 니가가 촌스러운 신발을 신었다는 언니의 타박을 듣고 같이 신발을 사러 갔다.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 디자인을 사서 오래도록 촌스럽지 않게 신으리라는 마음으로 신발을 골랐는데, 앞꿈치 끝까지  맞는 사이즈는 품절이란다. 그보다  사이즈  것은 있다고 해서, 일단 신어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끝을 신발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앞꿈치 끝이 신발에 닿지 않는 느낌은 생경했다. 고작 5mm 차이인데 발이  보이진 않을까 이리저리 걸음을 옮겨 거울을 보았다. 한번 마음먹었을  사지 않으면  세월아 네월아 하며 미룰 것만 같아서, 당장  신발이 없으면   사람처럼  자리에서 신발을 사들고 가게 문을 나섰다.


  그리고 처음으로 신발을 신고 나간 . 너무 편했다.  끝이 닿지 않으니 발이 조금 부어도 신발이 발을 옥죄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발이  보이던 것은 기분 탓이었는지, 아니면 조금 커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졌던 것인지. 발이 편해지니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괜찮았다.


  억울했다.  좋은  진작 넉넉한 신발을 신고 다닐걸 후회됐다.  발이 크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발만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전족 아닌 전족 상태로  년을 지낸 것일까.


  처음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니  뒤로는 수월했다.  이상  질문은 '  보여요?'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발이  하루를 편하게 버틸  있을지, 그게 궁금했다.

  



  천성이 소심하고 내성적이기에,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많이 떠올리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아니라면 어떻게 보이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점 깨닫고 있다.


  '' 중심이 되어야  삶을 오롯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있다는  깨닫고서도 그걸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30대가 돼서야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실행에 옮기니 말이다.


   사이즈  신발을 신어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이즈  신발을 눈치채기는커녕 당장 오늘 내가 무슨  신발을 신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일 테니 말이다. 이제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의 말에  삶을 휘둘리게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후부터 그동안 스스로에게 씌운 외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피부 잡티를 가리고 작은 눈을  보이고 싶어서 매일 아침 공들여하던 화장도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앞으로는 스스로 만족할  있고,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에 조금  시간을 쏟으려 한다. 넉넉한 신발이 발의 평화를 가져왔듯, 자존감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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