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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밥 Feb 29. 2024

첫 만남. 사진.


올해는 윤년, 오늘은 윤일이다. 4년에 한 번씩 돌아온다는 2월 29일. 아내와 내가 처음 만난 날.


둘 모두 연한 미소로 기억을 꺼내는 걸 보면, 그날은 서로에게 좋은 날이었다. 다툼과 실망을 안고 뱉는 날에도 그때를 불러내는 후회는 없었으니까.


눈에 질끈 힘을 주는데도 지나간 걸 찾기가 힘에 부치고 오래 걸린다. 기억도 곧잘 써야 매끄러울 텐데 꺼내기 싫어 가둔 놈들, 갖은 핑계로 잊어버린 놈들을 헤치고 끄집어내기가 버겁다.


녀석들이 붙박이 수문장이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한데. 꽤나 알아주는 빗장을 쓰는 건지 내가 시원찮게 보였는지 도통 열어 줄 기미가 없다.


20년 전 오늘의 기억이 아직 열린 채로 있다는 건 그래서 내겐 행운이고 또렷한 두근거림이다. 다만, 번거로운 실랑이 없이 그날을 열다 보면 미안한 감정 역시 사진처럼 함께 다가오니, 어쩌면 빗장을 틀어 쥔 녀석들이 좀 더 나아 보이기도 한다. 내가 안겨 준 삶의 무게. 그 자욱. 흉터들이.. 너무 선명해서..



'첫 만남'을 '사진'으로 담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


첫 만남의 기억이 모두에게 제법 선명하다는 것. 설레고 조심스러운 그날에 있어 당돌한 요구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되는 이유. 딱 잡아 20년 전을 떠올려도 딱 잡아 그려낼 수 있는 사진 같은 기억.



하지만 가지고 있다면, 풋 하고 웃는 날이 하루가 더 늘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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