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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밥 Mar 07. 2024

드라마.

드라마 작가를 꿈꿨을 때가 있었다. 어쭙잖게 공모전도 몇 번 응모하고 잘 나가는 드라마 대본들을 꾸역꾸역 구해다가 달달 분석도 해보고. 어려운 방송 용어나 극작법 기초 등 갖은 이론은 물론, 소재 고갈을 염두해 주변인의 살아온 날들을 탈탈 털며 부족한 경험들을 보충해 나갔던 때. 한 때였지만 살아있는 열정으로 움직일 때였다. 그리고 그 열정으로 지낸 날들은 아직 잘 보관되어 있다. 깊은 곳 작은 상자에 담겨.


'드라마 같다'.  가지 정의가 어렵다. 극적 반전의 권선징악도, 드세고 기구한 자 전개도, 허무맹랑한 마법 스토리도, 현실판 직장 노동요도 '드라마 같다'에 죄다 포함이 되니. 희로애락에 마술, 요술 다 더한 걸 '드라마 같다'라고 봐도 무방할 테다. 플래시맨이며 우주괴물이며 마법 같은 공상에 빠져 더욱 그런 꿈이 친근했지만, 꿈을 실현할 나이엔 이미 고되고 지겨운 인간관계에 허덕일 때였고. 그 끈적이는 집요한 관념들, 편견들에 지쳐있을 때였고. 그래서 삶과 드라마는 다르다고. 저만치 밀어버린 후였다.


짧지만 긴 여운이 좋아 단막극에 매료되었을 때, 베스트극장 주제 음악은 눈앞에서 회람되는 책 같은 소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음악은 그날의 이야기와 함께 일주일을 고스란히 품어, 다시 마주칠 설레는 날에 미소를 짓게 하기 충분했다. [천봉례 여사의 행복한 일생]이 유독 기억에 남지만, 사실 시청한 모든 작품이 다 보물 같은 감정으로 각인돼 있다.


드라마 극본공모 소식이 들려온다. 이상하게 반갑고 설렌다. 3사를 비롯해 단막극이 죽어나간 지 오래됐지만 회생을 바라던 기대감까진 치우진 못했나 보다. 난장판 시놉시스며 습작들을 몽땅 치워 놓고도 어느 정도 감정이 뛰는 것도 같고.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희열보단 새로운 선상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지금 같으면 각기 다른 멀티버스를 발견하는 극적 성취감쯤 되는 그 작업이 못내 아쉽기도 하고.


어쨌든, 기대감은 기다림을 조급하게 또 즐겁게 만들어 준다. 나도 드라마 같이 살아왔다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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