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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정한 이웃

THAV의 보안관, 나의 따거들

by Lizzy Moon

"안녕, 리지!", "리지, 잘 잤어?" 이곳에서 어느샌가 귀여움을 맡았고 즐기는 요즘이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던 첫 주에 나는 스튜디오키를 두고 외출해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고, 점심 식사 중이시던 보안관님께서는 나의 난처한 표정을 무심히 읽으시곤 식사를 멈추시더니 곧장 내 스튜디오까지 직접 따라와 문을 열어주셨다. 그때의 그 민망함과 죄송함이란! 한국에서 준비해 온 간식들을 잔뜩 들고, 인포메이션 센터를 다시 찾아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우리는 서로를 마주할 때마다 조금의 어색함이 담긴, 안부 인사를 나눴다. 그 순간 우리 사이에 어떤 언어도 없었다. 그저 눈빛과 몇 마디의 음성 정도로 서로의 안부와 기분을 확인하고 전하려 애썼다. 그들과 조금은 친밀해졌다고 느꼈던 어떤 날, 나는 그들에게 이름을 물었다. 몸짓과 눈빛, 서로의 언어와 통역기를 모두 총 동원해 알게 된 서로의 이름을 시간이 조금 더 흐른 이제는 신나게 외치며, 아침저녁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의 보안관들은 촘촘하게 교대하며 그들의 자리를 지켜내는데 어떤 시간에는 cctv앞에 앉아서 사람들의 동선을 확인하고, 또 어떤 시간에는 박스에 앉아 사람들을 응대하며, 또 어떤 순간에는 손전등을 들고 빌리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안전을 체크하고 이상함을 감지하면 즉각 행동하신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서로에게 공유되는 투명한 시스템을 자랑한다고. 그런 그들에게 최근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생겼다며, 보안관들과 친밀한 스탭이 어느 날 내게 미소를 머금은 채 신난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그건 바로, 리지가 언제 갑자기 나타나고 또 사라지는지 CCTV로 확인하는 소소한 이벤트를 그들이 무척 즐기고 있다는 것.


나는 아침 일찍 마을을 산책한다. 산책하면서 발견하는 자연물들을 나의 물감을 만들 재료로 선택하는 시간은 관광객이 붐비기 시작하기 전 끝나야 하기에, 조금은 이른 아침에 산책은 시작된다. 그들은 나의 동선은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어떤 날, 내가 아침 산책을 거르면 조금은 궁금해한다고 한다. CCTV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리지를 쫓아 모니터를 구경하는 게 요즘 그들의 소소한 재미라니, 세상에나! 너무 귀여운 그들의 궁금증과 나에 대한 순수한 관심들을 알게 되니 마음 한편이 몽글해지고 이내 따뜻해졌다.


요즘은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꽤 많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 보내고 있다. 키가 엄청 크고 덩치가 좋은, 웃을 때 미소가 참 포근하지만 무표정일 땐 세상 무서운 나의 넘버원 따거는, 내가 멀리서 나타나기만 해도 인사를 하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의 준비과정을 지켜보며 모른 척, 그의 앞으로 다가가 밝게 인사를 건넨다. 그런 그와 내가, 어느 날 저녁 각자의 텀블러를 들고 인포메이션센터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마침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스텝이 있었고, 그는 그녀에게 "건배"를 한국어로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갑자기 내 텀블러에 자신의 텀블러를 스치며 "짠!' 하며 씩 웃는다. 우리 모두 배꼽이 빠지게 웃으며, 친구가 되었음을 알아챘다. 그렇게, 그와 나는 만나면 주먹을 쥐고 "짠"하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배관공 선생님과 나는 하루에 많게는 10번도 마주칠 정도로 자주 만나는 사이다. 그는 오래된 빌리지의 모든 파이프를 비롯한 각종 수선을 담당하는 베테랑, 맥가이버이자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기도 하다. 매일 낙엽을 줍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어르신은 늘 웃으며 한 마디씩 해주신다. 유일하게 그는 내 한국어 이름의 한자를 중국식으로 불러주시는데, 나는 그가 내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하다.


늘 나를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며 내가 건네는 인사에 수줍게 답인사를 건네던 따거는, 알고 보니 지드래곤의 오래된 열혈팬이셨다. 그는 지드래곤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으셨고 짧은 문장은 답해낼 수 있을 정도셨으며 친해진 요즘은 지드래곤의 안부 중 부분들을 직접 춰주시기도 하신다. 정말 반전 있는 따거!


내게 매일 지난밤 잠은 잘 잤는지, 벌레들이 괴롭히진 않았는지 물어봐주는 따거는 매번 이곳에서의 생활이 도시에서 자라온 내게 불편하다는 걸 꿰뚫고 있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런 그의 눈빛을 읽고도 괜찮은 척 씩씩한 척 대답을 이어간다. 나 여기서, 처음 만난 벌레들이랑 곤충들이 너무 많아! 한국에선 집에 미니 도마뱀이 나타날 일이 없는데 여기선 너무 흔해서 이젠 놀라지도 않는다고! 모두가 신기해한다, 도마뱀이 없다고? 하하하, 한국인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생각과 반응에 나는 웃음이 터지곤 한다. 그들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정말 다른 곳에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마주하는 순간이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들의 이야기가 내게는 그저 웃음을 나게 할 만큼 신기하고 또 흥미롭기 그지없다.


아티스트 빌리지에는 이곳의 원주인인 주민들과 스태프들, 아티스트 그리고 모두의 안전을 책임지는 따거들이 함께 살고 있다. 우리 모두, 아티스트 빌리지의 구성원이며 함께 이 특별한 마을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이다. 모두에게 다정한 사람들이 가득한 이곳에서의 하루가, 또 지나간다.


내일 아침, 우린 또 길 위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외치겠지,


안녕! 리지, 안녕! 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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