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리지, 웰컴 투 완푸!

완푸 초등학교 방문기

by Lizzy Moon

내 스튜디오를 지나가려면 늘 통과해야만 하는 작은 광장이 있다. 지하 대피실 갤러리와,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레터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광장으로 가려면 무조건 지나야 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어느 날, 이 공간에 구조물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광장에 선반들이 나타난 날, 나는 한 어른을 만났다. 그는 눈빛이 무척 반짝이는 어르신이었고, 바디랭귀지와 영어 그리고 중국어와 휴대폰 통역기를 넘나들며 내게 질문을 하려 애쓰셨다. 나는 그 어른이 왜인지 너무 좋았고, 가던 길을 멈추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눈빛을 읽으며 내게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 들어보려 애썼다. 그는 초등학교에서 미술 선생님으로 오랜 시간 근무했고 지금은 퇴직했지만, 매일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고 수업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퇴직한 교사가 여전히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려 애쓴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존경스러웠다.


그는, 젊은 시절 휴가마다 해외를 돌아다니며 거리 위에서 자신의 수묵산수화를 실연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고 했다. 그가 보여준 사진들에서는, 에어비앤비 집 발코니도 있었고 카페 안, 길거리, 기차역 안, 사원.. 정말 장소를 가릴 것 없이, 자신의 마음이 닿기만 한다면 어떤 장소에서든 자신의 장기인 수묵화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내는 그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대만의 베테랑 티칭 아티스트를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는 내게, 초등학교에 가보겠느냐 은근히 권했다. 기회를 덥석 물어낸 나는, 내일 당장 가겠다고 답했다. 그는 무척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몇 초 말을 멈추다, 이내 말을 이어냈다. “좋아, 그럼 내일 오전 11시 우리 학교 앞으로 와! 나랑 급식도 같이 먹고 미술실 구경도 시켜주고, 정원 속 자연물들 이름도 알려줄게!”.


아침 11시, 약속 시간에 맞춰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로비에서 그를 다시 만났는데, 아이들이 타고 놀 카누를 만들고 계셨다. 매년 이 학교 아이들은 선생님이 제작한 카누에 그림을 그리고, 직접 강가로 카누를 갖고 가서 물놀이를 즐긴다고 했다. 실제로 THAV에 도착했을 때, 스탭이 내게 보여준 사진 속에서도 카누를 타고 있는 아이들과 작가들 모습이 있었던 걸 기억해 냈다. 그는 웃으며, 작년에 한국에서 온 작가와 일본에서 온 작가가 함께 카누를 만들고 타는 퍼포먼스를 아이들과 함께 했었다고 말해주었다.


1층부터 4층까지 1~6학년 아이들, 그리고 유치원 아이들 교실을 구경하다가 지난 축제 오프닝에서 친해진 앨리스 선생님네 교실을 발견했다. 마침 오후시간에 한국인 도우미 선생님이 수업에 참여하시니, 급식을 먹고 오후시간에 수업 참관을 하면 어떠냐고 그녀는 내게 물었다. 가볍게 학교 구경하고, 급식 먹고 스튜디오로 돌아오려던 계획은 그렇게, 학교에 온종일 머무르는 일정으로 바뀌게 됐다. 덕분에, 아이들의 수업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무척 흥미로웠다. 아이들도 내가 무척 신기한 듯, 주변을 맴돌며 내 눈치만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일부러 한국어로만 대화를 이끌었더니, 조금의 호기심을 갖고 있던 아이들마저 점점 내 곁을 떠나가기 시작했다. 동일한 언어 소통에서 느끼는 안정감을, 꼬마들도 느꼈나 보다.


학생들과 똑같은 메뉴가 선생님들에게도 제공되는데, 조금 재미난건 자신이 먹을 그릇과 수저는 갖고 와야만 한다는 것. 개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그릇들을 구경하는 것도 내게는 하나의 흥미로운 놀이였다. 내가 방문한 날은 고기 없는 날었는데, 아이들의 반발이 너무 심해서 매주 1회씩 갖던 이벤트는 이제는 한 달에 두 번만 진행한다고 했다. 보통은 흰밥이 나오지만, 고기 없는 날에는 밥에 버섯이나 야채 등을 넣어 간을 맞춘 볶음밥을 제공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한다고 설명해 주셨다.


점심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맡은 구역의 청소를 하고 낮잠을 잔다. 1시- 1시 30분, 낮잠을 자는 건 이들에게 무척 중요한 교육 포인트처럼 보였다. 담임 선생님이 계신 반으로 돌아가서 낮잠을 자거나, 잠이 오지 않는 아이들은 공유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 낮잠을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잔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 아닌가!


참관했던 영어 시간이 끝나자 교장선생님이 오셔서, 내게 학교 정원 속 자연물들의 특성을 알려주시겠다고 이야기하셨다. 내가 자연물에서 물감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걸 몇몇 선생님들이 지난 주말에 진행한 나의 오픈스튜디오를 방문해서 알게 되고, 학교에 돌아와서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나를 알고 있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은 학교의 모든 식물들을 직접 관리하시는 가드너이시기에, 내게 어떤 식물이 독이 있고, 색이 있는지 알려주고 싶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씀 하셨다. 참 감사한 마음이다. 우리는 학교를 누비고 다니며, 식물 속 색들에 대한 지식을 나눠 냈고, 새로운 식물이 나올 때마다 휴대폰으로 검색해서 내게 알려주셨다. 할아버지와 함께 산책하는 기분이 들었고, 마음이 너무 따뜻해졌다. 내가 다시 꼬마가 된 기분이었다.


집으로 가기 전, 교장 선생님은 화단에서 색이 재밌을 것 같은 풀들을 잔뜩 꺾어서 내게 주셨다. 그리고 슬그머니 말씀하셨다. "그래서 리지, 우리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해 워크숍 한 번만 해주면 안 돼?"


아유, 안될 거 없죠? 당장 다음 주 수업 할까 봐요?


keyword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