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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Mar 15. 202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때때로 구원에 대해서 생각했다. 사람은 스스로가 나약하게 느껴질 때마다 구원받기를 소망한다. (혹은 구원하기를 소망한다. 구원함으로써 내가 구원받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에 대한 이야기도 가지각색이다. 평범하다 못해 못생기고 매력도 없(다고 느껴지)는 나를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매력적인 성격의 인기도 많은 누군가가 좋아하는 이야기. 아무도 나의 가치와 잠재력을 알아주지 않다가 능력과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알아보고 키워주는 이야기. 빈곤하고 불행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영웅에 대한 이야기. 혹은 잘난 것 없다 느끼는 내가 사실 누군가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누군가를 구원하는 이야기 등등.


  그래서 나는 이 저자가 자신의 불행하고 고난한 삶에 대해 줄줄이 나열하지 않아도 얼마나 구원받고 싶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 하나하나, 아주 작은 의문 까지도 스스로를 설득시킬 때까지 파고들었던 이유는 그만큼 스스로가 나약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보잘것없는 꿈이 이루어지면, 나의 꿈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장애물을 뛰어넘으면, 나도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고, 그가 좌절을 극복하면 나도 지금 이 좌절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그 방법을 손에 넣는다면. 머리에 집어넣는다면 말이다.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동일시를 할 만큼은 아니었겠지만 아주 보잘것없고 희미한 존재로 태어난 사람이 그토록 명망 있는 자리에 산전수전을 겪으며 올라갔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을 것이다. 저자는 거기에 작은 호기심을 더해서, 때론 내 삶에 어질러진 온갖 쓰레기와 장애물들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되기 위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조목조목 파해쳐가기 시작했고, 독자들을 이곳으로 데려왔다.


  분류학자로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중에서도 바닷속에 살고 있는 모든 어류들을 찾아내어 이름을 붙이는 일을 해왔다. 우리는 저자가 자신의 호기심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반짝이는 긍정성과 덤덤한 성격을 알게 되고, 때론 그의 추악함과 결여된 도덕성을 마주하며, 오늘날엔 선명해진 윤리의 길을 한참 헤매며 헛발질을 하는 모습도 보게 된다.


  내 인생의 구원자일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나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도덕 수준을 가졌다면 어떨까? 한 사람이 평생 동안 그려낸 길을 따라 걸으면 눈앞의 막연한 문제가 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랬다가 절대 되고 싶지 않은 종류의 인간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면?


  그래서 이 책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대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이 책은 위인전도 아니고, 비범한 사람에 대한 개인의 헌사도 아니다. 이 책은 사실 자신을 구원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내 인생의 장애물을 치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계기는 우울에 갇힌 저자를 구해줄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저자는 처음 아버지에게 희망을 걸었지만 아버지의 건강한 회의주의는 저자를 구해주지 못했다. 그것이 이 책의 첫 장을 아버지에게 건넨 이유가 되었다.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분류학이 정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나 또 다른 구원자를 찾아 나서지도, 곱슬머리 남자가 찾아와 주길 기다리지도 않는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처럼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이 가져다줄 반짝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삶의 진실이라는 게 있다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물고기라는 기준을 정해놓고 물고기들을 재단한다. 물고기와 같은 수많은 사회적 잣대들을 생각해 보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바닷속 생명체들을 한계 짓듯, 일방적으로 정해진 잣대 속에 자신을 틀어맞추느라 행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저자 또한 자신을 바이섹슈얼로 새롭게 정체화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직장을 다니는 것에 대해 몇 번씩 불안하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 연구처럼, 저자가 베일을 한 꺼풀 넘겨 본 세상이 진실에 가깝다는 깨달음으로 그는 불안한 밤을 끝내고 다시 새로운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 거기엔 사랑하는 연인과 내일에 대한 희망과 일상의 작은 행복들이 있다. 그렇게 또다시 불안한 밤을, 그리고 또다시 희망 어린 아침을 맞이한다. 차곡차곡 희망이 쌓이고, 불면의 밤은 희미해져 간다. 살아감으로써 저자는 자신을 구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삶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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