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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Aug 29. 2022

내가 가진 안진진과 강민주

양귀자의 <모순>과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읽고




  때때로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다.

  나는 그것이 지금까지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을 경험했을 때라고 생각한다. 좋은 책은  기분의 정체가 무엇인지 언어화하기 위해   며칠 고민하게 만든다. 양귀자의 『모순』이 그런 책이었다.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안진진(眞眞)의 삶은 다양한 인물과 엮여있다. 한국문학에서 익히 볼 수 있는 책임감 없는 아버지와 생계를 위해 억척스러워지는 어머니, 철 없이 사고나 치고 다니는 오빠, 어머니와 쌍둥이 자매이지만 너무나 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안진진의 이모가 있다.


  이제는 성찰 없는 남성 인물들과 결국 참고 헌신하는 여성 주인공에 신물이 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결국 우리 삶의 절대법칙인 모순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장에서부터 스물일곱 안진진은 똑똑해 보인다. 사랑하는 이모의 외로움을 걷어주고, 그녀의 모든 감정을 재치 있게 파악한다. 가족 구성원의 알 수 없는 행동을 그녀는 결국엔 다 분석해낸다.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신의 모습을 이성적으로 관찰하고 때로 통찰력 있게 자신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삶의 추잡한 진실도 다 알고 있고, 곱게 자란 주리의 순진한 사고방식도 어여삐 여길 줄 안다.


  하지만 안진진의 삶은, 스스로가 가진 현명함만으로 극복하기엔 너무나 고단하다. 알코올 중독에 변변찮은 벌이 없이 집을 나갔다가 치매에 걸려 돌아온 아버지로부터 그녀는 사랑을 받고 싶었다.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만큼은 어여쁜 연인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싶지만 자신의 처지가 볼품없다고 생각해 솔직하지 못한다. 부족함 없이 살던 사랑스러운 이모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안진진은 두 남자 중 한 명과 결혼을 결심하고, 진심으로 사랑받고 싶었던 남자가 아닌 벌이가 꽤 괜찮은, 사랑과는 거리가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하기로 선택한다. 삶의 무게에 사랑이라는 애쓰는 마음을 더 하기가 버거워 그녀는 오히려 짐을 나눠질 것들을 찾기로 했다.


  비록 결혼이라는 주제로 삶의 모순을 다루고 있지만, 책이 출판된 98년도가 이전해 IMF가 터지고 여성의 실업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임을 고려하면 안진진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야기 전체가 안진진의 면역된 괴로움과 고독함을 설명하고 있다. 어디서부터가 불행이고 어디서부터가 안정인지 구분할 수 없는,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구분하기가 어려운, 이 복잡다단한 삶이 그 당시의 한국에, 어쩌면 오늘날까지 비일비재할 것이다.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게 내 이야기가 아닐 뿐이다. 그렇게 현명하지만 자신의 현명함을 받쳐줄 지지대가 없는 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며 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선택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사람들의 모순된 선택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이해가 된다는 것이 가치관적으로 같은 입장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오로지 신념을 제1순위로, 다른 모든 변수들을 제쳐두고 꼿꼿하게 살아가는 게 개인의 의지만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과정은 때로 비굴하고 처참하고 괴롭다.


  글에선 두 남자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표현되지만, 우리는 자주 현실을 선택한다. 모두가 도박이나 다름없는 꿈을 좇진 않는다. 우리는 약간의 답답함을 주더라도 경제적 안정성을 주는 직업을 선택한다. 안정을 선택한 이모가 정신적으로 고통받다가 자살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안진진도 알지만 그럼에도 물질을 선택하는 것처럼.


  책을 덮고 처음엔 안진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안진진의 선택이 싫었다. 나는 안진진과 다르고 싶었는데, 그녀를 곱씹을수록 내 속엔 안진진이 있었다. 있었기 때문에 다르고 싶었던 것이다. 안진진의 어떤 모습은 꼭 나의 모습과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양귀자 작가는 『모순』을 쓰기 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라는 소설을 썼다. 그 글의 강민주가 안진진을 만난다면 답답함에 화가 날 것이다. 강민주는 결단코 안진진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 강민주는 많은 공부를 했고, 풍부한 경제력을 가졌다.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고 그것을 피한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사람이다.


  2022년을 살고 있는 우리가 강민주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은 아마 90년대 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여성 인권 이슈들이 여전히 잔재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승하가 말하듯, 사회는 변하고 있고 남성들은 여성들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주장은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점 또한 그렇다.


  강민주는 자신의 삶 전부를 던져 사회에 메시지를 던졌고,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다. 여성들의 선호를 받는 남성 배우 백승하를 납치 감금했고, 어떤 남성 납치범보다 인간적인 대우를 하며 이유 없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승하의 감수성과 소통하여 유대 깊은 관계가 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강민주 또한 백승하를 '남성 집단'의 대표 표본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강민주는 폭력과 같은 남성성의 상징인 황남기를 종처럼 부리고, 황남기 덕분에 완벽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다. 그러나 강민주는 황남기의 손에 죽었다. 백승하는 강민주가 가진 사상을 이해했지만 황남기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강민주라는 여성을 사랑하고 욕망했다. 강민주는 백승하와 달리 황남기와 수직적 관계로서 소통하지 않았다. 이러한 수직적 계급은 결국 파멸과 죽음을 낳는다. 강민주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에 던진 메시지처럼.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수록된 작가의 말에는, 어느 날 노년의 여성이 작가를 찾아와 억압받고 고통받았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이를 글로 써달라고 부탁했다는 일화가 적혀있다. 그 경험을 시작으로 강민주가 태어났다. 여성이기에 감내해야 했던 일들, 부당하지만 부당함을 모르고 살았던 일들이 모여서 강민주가 된 것이다.


  윗 세대 여성들의 삶을 빼곡히 알고 있는 나의 또래 여성들은 그러니 강민주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작가의 귀에 들린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강민주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자행하는 폭력, 남성 다수가 기득권이었기에 만들어진 사회적 문제들이 있음에도 여성들은 무해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백승하라는 남성 배우를 사랑하고, 남성을 쉽게 사랑하게 된다는 강민주의 생각이 마냥 허황되어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니 나는 강민주의 어떤 면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지만, 거기엔 또 다른 안진진이 존재한다. 둘은 여성이라는 점 말고는 공통점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들과 같은 여성이기에 둘 모두 공감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강민주와 같은 마음으로 꼿꼿하게 살고자 하고, 때로는 안진진과 같은 모순된 선택을 하면서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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