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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Mar 15. 2023

너무너무 싫은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 방법



  나는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를 사랑하고, 그로부터 사랑받지 않으려 하면 된다. 그럼 그를 이렇게까지 싫어할 일도 없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기대를 맘대로 버릴 수 없는 것처럼, 관계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내 맘대로 통제할 수도 없는 게 사람이다. 그러니 늘 어떤 사람은 고뇌와 괴로움 속에서 산다. 그러다 사람이 싫어질 정도로. 그래서 사람을 극도로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사실 언젠가 사람을 아주아주 좋아하고 사람들 속에서 편안하게 살고 싶어 했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믿었던 만큼 배신감이 큰 것처럼, 사람이 너무 무서워진 이유도 내가 사랑받고 싶어 했던, 좋아하고 싶었던 사람이라는 존재가 날 인정하지 않을 때, 내가 사랑할 수도 없는 면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너무나 큰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고 그 감정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어딜 가든 누군가로 인해 쉽게 불편해졌고, 그를 이해할 수 없어 못마땅해하고 미워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그런 식의 감정을 타인에게 갖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가, 합당한 일인가 끊임없이 재고하는 사람이었기에 겉으로 티를 내거나 타인들에게 내 감정을 강요하려들진 않았다. 내면의 괴로움은 피할 수 없지만 다행히 충동적인 행동으로 상황을 악화시키진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쿨하지도 무던하지도 너그럽지도 못한 나를 자책하며 살아왔다. 누군가는 그러려니 저 사람을 대하거나 좋아하기까지 하는데 난 왜 이렇게까지 저 사람을 불편하게 느낄까? 역시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거야. 사람이라는 게 그럴 수 있는 거라고. 나를 애정하는 사람들을 나를 격려해 주었다. 이런 나를 답답해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과 당장 멀어져라. 그 집단을 떠나라며 훈수를 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것도 한두 번이지.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마 내 이런 성향은 어딜 가든 발동될 거야. 이번 한 번 피하고, 이번 한 번 주위에 고민을 털어놓아도 아마 본질을 짚지 않으면 영원히 이 고통 속에서 살게 될지 몰라.


  세상엔 의식 없이 타인을 괴롭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타인으로 인해 쉽게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또 그 사람은 의식 없이 다른 누군가를 괴롭게 만든다. 상부상조하는 지구촌 세계관의 다크 버전 같다. 하지만 나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 덕분에 내 내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 한 때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심보가 내 안에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내가 열등하고 부족한 부분을 알고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걸 직감적으로 인식했다. 그 열등하고 부족한 부분을 그냥 내보이며 세상을 살아가면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도 사랑받지도, 때론 욕을 먹거나 미움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실제로 경험할 수도 있고.) 근데 세상에 나왔더니 그냥 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꽤 잘 생활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귀엽게 봐주기도 한다. 그렇게까지 미움받는 것 같지도 않다. 왜냐하면  지금 내 앞에서도 저런 행동을 보이고 있고, 저 행동을 목도하는 나는 모른 척 잘 참아주기까지 하고 있으니까. 마음 어딘가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너무 긴장하지도 않고 오만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도 않고. 혹여나 날아올 미움에 쫄지도 않고서. 하지만 나는 너무 오랫동안 조심하며 살아와서 하루아침에 저렇게 살 순 없다. 살고 싶지도 않다. 네버더레스, 저 사람이 부러워. 하우에버, 난 조심하는데 그걸 모르고 조심하지 않는 저 사람이 미워. 진짜 내 마음은 뭘까?


  그렇게 나는 아주아주 어린 시절 내 본성이라는 걸 좀 발견했다. 천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면 내가 좀 짠하다. 힘없는 상태에서 살아남으려고 내 본성을 다듬고 또 다듬어왔던 것이니까. 때로는 이런 모습의 대가로 받는 사랑이 완전하게 느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이런 내 모습도 나다. 성장하고 성숙한 나. 그러니까 짠하면서도 대견한 것이다. 스스로 이렇게까지 노력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한 거니까.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은 하지 못한 부분이다. 그러니 그 사람을 그렇게까지 부러워할 일도 없는 것이다. 그 사람과 나는 각자 다른 이득을 취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진화한 포켓몬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반야심경에서도 늘 말한다.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은 내 안에 있다고. 그렇게 나는 나를 좀 이해하게 됐고, 때로 열등감에 둘러싸여 타인을 맹목적으로 미워하던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그렇다고 악의를 가지고 공격하는 행위를 정당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너무너무 싫은 사람을 만나면 불편해하지 않게 되었냐고? 사실 큰 변화는 없다. 여전히 내 마음은 뚝딱거린다. 불편했다가 괜찮았다가 다시 불편했다가 하며 산다.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어째 더 마음이 요란해진 것 같은데.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성장이 얌전할 수는 없으니까. 언젠가 끝이 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체크인에 나온 이옥섭 감독이 그랬다. 너무 미우면 그냥 사랑해 버린다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뭔가 그 말이 끌렸다.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만 들었던 때가 있었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대가로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마법은 부릴 수 없다. 그러니 차라리 내 안에 넘치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사랑으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내가 짜증나하던 그 사람의 그 모습, 기억조차 흐릿한 어린 시절 내가 버리고 싶었던 그 모습을 사랑해 주는 것이다. 그 사람이 보여주는 내가 싫어하던 내 모습을 조금 이해하면서. 내가 부러워하면서도 두려워하던 그 사람이 잠깐은 되어도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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