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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ㅏ Aug 23. 2023

루나의 꿈 여행

EP.0 꿈 일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꿈은 언제나 마법 같은 경험이다. 끊임없이 펼쳐진 무한한 초원을 달리기도 하고, 세상의 법칙의 영향을 받지 않는 놀이공원에서 신나게 놀 때도 있었다. 알 수 없는 힘으로 하늘을 날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동물도 만나고. 가끔 신비한 힘으로 만들어진 퍼즐을 풀고, 마법 학교에 입학해 마법 경연을 벌이기도 한다. 유령의 도시, 바다의 도시, 우주, 또는 땅속 세상 등 복잡한 곳에 떨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꿈은 즐거웠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꿈은 잠깐의 여운이 남기지만, 어느 순간 모래가 흐르듯 흩어져 버린다. 소중했던 경험과 감정, 생각은 모두 한 줌의 연기로 사라지는 것이 조금은 슬프다. 깨어나면 언제나 잊히는 즐거운 순간들.


 분명 꿈을 기억하는 건 맞다. 현실을 살다 보면 문득 꿈들이 떠오르니까. 다만 현실과 꿈의 저장공간은 분명 다르다. 감각적인 경험, 오감 생각 경험. 분명 존재하는 것들인데, 꿈에서 깨어나면 일순간 느껴지다가 사라지는 기억.

 

 현실에서는 현실의 기억만 활성화되고, 꿈에서는 꿈의 기억이 활성화되고. 하지만 가끔 알 수 없는 이유로 현실에서도 꿈의 기억이 떠오른다.

 

 거대한 용의 등을 타고 구름을 뚫고 날아오를 때, 마법에 걸린 숲에서 사나운 생물들과 싸우던 때, 고대 유적에서 신비한 퍼즐을 풀던 때. 분명 평범한 일을 하고 있지만 가끔 꿈의 기억이 떠오른다. 현실에서 꿈이 떠오를 때는 현실의 감각으로 꿈을 본다. 새로운 영감을 받고, 고양감을 얻는다.

 

 현실 세상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축복. 그렇지만 금방 사라져 버리는 저주를 동시에 받은 것이다. 오늘도 비슷한 날이었다. 방금 떠난 세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현실은 그리움조차 허락해 주지 않는다.

 

 마을에서의 하루가 끝나고 루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온몸의 기가 하나로 모이면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꿈이 시작한다.

 

 루나가 눈을 떴다.

 

 하지만 눈을 뜬 곳은 현실이 아니라 꿈속이다. 얼핏 초록 불빛이 도는 신전 앞이었다. 루나는 웅장함에 감탄하며 신전으로 발을 들였다. 신전은 미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온통 초록색 횃불로 장식된 미궁은, 노랗고 붉은 배경과 어우러져 스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미궁에 도움을 구하는 존재가 느껴져 나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낯설고 두려운 감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흥분감 역시 동시에 느껴진다.

 

 “그래. 이게 꿈이지.”

 

 꿈이라는 특별한 환경이 용기를 준다. 루나가 걸음을 옮겼다. 어떤 모험이 나를 기다릴까 긴장하는 순간 앞에 바닥에 수풀이 우거진 것이 보였다. 수풀 밑에 엉성하게 함정이 보였다.

 

 “이건 너무 뻔한 함정인데? 이렇게 풀을 우거지게 바닥에 깔아놓으면 누가 봐도 함정이잖아? 그리고 저렇게 대충 만든 화살 함정은 뭐야. 그냥 미궁처럼 보이려고 겉치레한 것일 뿐이잖아? 함정인데 적어도 정성은 들어가야지”

 

 루나는 이번 꿈은 시시하다고 느끼면서도 어쨌든 새로운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 미궁은 엉성하고, 구색만 갖추고 있었다. 미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지선다가 연속되는 갈림길. 함정이 있을 거 같으면 꼭 티를 내며 숨긴 듯 만 듯한 위협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길을 잘못 들어도 나아가다 보면 목적지로 향하고, 함정을 발동시켜도 피해라고 부르기도 낯부끄러운 공격이 나온다. 어찌 됐든 미궁을 헤쳐 나아가다 보니 유니콘을 만났다.

 

 “뭐야? 미궁 속에서 헤매다 만단 게 고작 흰 말에 뿔이 달린 동물이라니! 이왕 꿈속에서 보는 동물이면 좀 더 멋진 동물이어도 되잖아! 용이나, 현무 같은 거!”

 

 루나가 보는 대상이 하얀 말에 뿔이 달린 평범한 형상임은 자명했지만, 특별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저를 찾으셨군요.”


 유니콘은 루나를 보고 말을 건넸다.

 

 “저희가 만난 것이 필연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당신을 꽤 주시하고 있었답니다. 항상 다양한 꿈을 꾸고, 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본인도 그에 따른 만족을 얻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현실에서도 항상 꿈을 잊지 않으시니까요.”

 

  유니콘은 마치 마음이라도 읽은 양 루나가 꿈에 대해 궁금해하던 걸 말했다.

 

 “맞아. 그게 궁금했어. 대체 꿈이라는 게 뭔지. 항상 잠에 들면 새로운 세상으로 간다는 게 기억나. 그 세상에선 무언가를 했고, 감정을 느낀 것은 분명해.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어. 꿈에서 깨어나면 모든 걸 잊어버리는걸.”

 

 “꿈은 또 다른 세상이에요. 잠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매개랍니다. 당신이 말하는 ‘현실’에선 ‘꿈’의 세상을 기억할 수 없어요. 당신이 겪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경험. 그렇기에 현실에서도 자꾸 꿈을 생각한다면 현실에서 사는데 방해가 될 겁니다. 현실에서는 모든 생각과 감정 경험이 희석되어 받아들여지지만, 꿈은 감정에 없어 모든 것들은 온전하게 수용하게 돼요.”

 

 “지금은 꿈속이니 다시 꿈의 기억들이 떠오르는데, 정말 아름답고 순수한 기억들이야.”

루나는 머릿속을 지나가는 기억과 감정에 약간의 전율을 받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 슬픔. 분노조차도 온전한 상태로 느껴진다. 현실을 살다 보면 무뎌지겠지만 꿈은 무뎌짐을 허락하지 않았다. 루나는 꿈의 추억이 소중했고, 유니콘은 루나의 마음을 알아챈 듯 말을 걸어왔다.

 

  “꿈을 기억하고 싶나요?”

 

 “솔직히 그래. 나는 꿈을 통해서 기운을 얻거든.”

 

 “그게 상상한 것만큼 유쾌하지도, 쉽지 않은 일일지라도요?”

 

 “응. 나는 꿈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 현실이 꿈처럼 아름답지 않을지 몰라도, 현실과 꿈을 같이 살고 싶어.”

 

 “알겠어요.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도와서 주는 것. 여운과 기억이 남아도 그걸 다시 순수함의 재료로 삼아 살아갈 수 있길 바라요. 부디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랄게요.”

 

 “우리 만남은 네가 의도한 거야? 그냥 만나면 재미가 없으니 엉성한 미궁으로 구색을 갖춘 거고?”

 

 유니콘은 아무 말 없이 웃었다. 이후 루나가 눈을 뜨고 일어났다.


 ‘이색적인 꿈이었어.’ 눈을 비비며 일어나지만, 이번 꿈은 달랐다. 확실히 꿈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생생하고 선명한 감정의 흐름이 여운으로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


 침대에서 일어나자, 곁에 떨어진 노트가 보였다. 촌스럽게 ‘꿈 일지’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노트를 펼치자 제일 첫 번째 장에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유니콘이에요. 루나의 꿈은 앞으로 여기에 기록될 거예요. 굳이 직접 작성할 필요는 없답니다. 꿈을 기록하고, 꿈 조각을 모을 수 있어요. 꿈 조각으로 노트를 채우면 좋은 일이 일어날 거예요. 이 일기의 존재로 루나는 꿈과 동기화할 수 있어요. 기억도 순간도 감정도. 모든 세상에서 생긴 경험과 감정을 꿈 조각으로 모아 하나의 수정이 탄생할 수 있기를.’

 

루나의 꿈 여정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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