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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ㅏ Oct 27. 2024

있을 땐 불편한데

EP75: 루나와 보이지 않는 보호막

 루나는 이번에도 낯선 꿈의 세계에 들어섰다. 이번 꿈은 그동안 방문했던 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녀가 있는 곳은 마치 거대한 성 같았지만, 그곳은 너무나도 완벽해 보였다. 성은 굳건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벽은 어떤 침입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튼튼해 보였다. 그 벽의 표면은 유리처럼 매끄럽고 깨끗했으며, 성 안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곳곳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감돌고 있는 듯한 이상한 분위기가 있었다. 루나는 성을 천천히 걸으며 그곳을 둘러보았다. 그때 갑자기 바닥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무언가가 그녀의 길을 막았다.


"저쪽으로 가지 않는 게 좋아."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루나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야?" 


루나가 물었다.


"나는 이 성의 보안 시스템이야." 


목소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여긴 안전해. 너를 지키고 있는 존재들이 항상 주변에 있어."


"보안 시스템?" 


루나는 의아해하며 주변을 다시 살폈다. 성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는데, 자신을 지키고 있다는 존재가 무언가 낯설었다.


"나는 너를 보호하고 있어. 하지만 평소에는 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거야.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루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너는 평소에 나를 위해 뭘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성벽을 강하게 유지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너를 보호해. 하지만 아무도 나의 일을 신경 쓰지 않지. 왜냐하면 내가 잘 하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든. 사람들은 내가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때로는 나를 불편해하기도 해. 나를 없애버리려는 사람도 많아."


루나는 생각에 잠겼다. 보안 시스템이란 존재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지만 그저 평온한 날들 속에 숨어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귀찮아하거나 불편해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안전이 보장되는 상황에서는 보안이란 존재는 무용지물처럼 여겨졌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아. 내가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 순간은 항상 사고가 일어났을 때지."


 보안 시스템의 목소리가 조금 씁쓸하게 들렸다.


"사고가 일어나면...?"


 루나가 물었다.


"그렇지. 사고가 나면 모두가 나의 필요성을 깨닫게 돼. 그제야 사람들이 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지.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을 때가 많아." 


보안 시스템의 목소리는 멀어졌다. 


"사람들은 내가 없을 때의 위험성을 느끼기 전까지는 내 소중함을 알지 못해. 그리고 사고가 터지면 그제야 나를 찾지."


루나는 성을 둘러보며 보안 시스템이 말하는 의미를 점점 이해했다. 성 안은 완벽하고 아무런 위험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완벽함은 보이지 않는 보호막 덕분이었다. 성을 지키는 보안 시스템 덕분에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보안 시스템의 존재를 인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종종 나를 귀찮아해. 내가 이곳에 있으면, 그들은 마치 내가 자유를 억압하는 것처럼 느끼지. 나 없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나를 없애버리려 해. 왜냐하면 내가 일을 잘하고 있으면 그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게 불편하게 느껴지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그게 사고를 막아주는 거잖아?" 


루나가 물었다.


"그렇지. 하지만 사고가 터지지 않으면 그걸 느끼지 못하지.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내 존재를 무시해버리고, 나를 귀찮다고 생각해. 그런데 막상 사고가 나면 그때는 나를 찾고, 나를 없애려 했던 걸 후회하지."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성 안에서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도, 보안 시스템이 없으면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에 처할지 몰랐다. 평소에는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그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뒤에서 모든 위험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보호막을 귀찮아했다. 오히려 자신들에게는 불편함을 주는 존재로 여겨졌고, 그로 인해 그들은 보호막을 제거하려고 했다. 그 결과, 성 안의 평화는 유지되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깨닫는 이는 없었다.


루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성 안의 주민들이 보안 시스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까웠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결국에는 사고가 나야만 그들이 이 보호막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슬프게 느껴졌다.


"결국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을 깨닫기 전에 내가 없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아." 


보안 시스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을 때가 많지."


루나는 다시 성 밖으로 걸어 나가며 생각했다. 보호는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가 중요한 법이다. 그것은 그 존재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끔 막아주기 때문이었다. 루나는 성 밖으로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성벽을 바라보았다. 그 벽은 여전히 강건했고, 보안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


루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 가치를 잊으면 안 돼. 언젠가 그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될 때가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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