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6: 까마귀의 노래
그러던 어느 날, 한 유명한 예술가가 마을을 지나가다 우연히 그리프의 노래를 들었다. 그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외쳤다. “세상에, 이렇게 감동적인 목소리를 듣다니! 이 까마귀는 보통 새가 아니야!” 그날 이후, 그리프의 소문은 마을을 넘어 온 산천으로 퍼졌다. "이 까마귀의 노래는 특별해!"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돌고 돌았다.
그리프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노래를 불렀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를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평소엔 가까이 오지 않던 다른 새들이 다가와 “역시 너는 대단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작은 참새조차도 그리프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그리프야, 정말 네가 그렇게 훌륭한 줄 몰랐어. 내가 널 알아봐 줄 걸 그랬어.”
참새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예전엔 가끔씩 놀리던 친구들이 이제는 그를 우러러보며 그리프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루나는 그리프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는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이 너를 이렇게 다른 눈으로 보는 거니?”
그리프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루나. 나는 그저 내가 좋아서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갑자기 사람들이 나를 특별하게 여기기 시작했어. 예전엔 나를 무시하던 새들마저 이제는 나와 친구가 되려 해.”
이후로 그리프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노래를 부를 때마다 사람들이 몰려와 그의 노래를 들었고, 그에게 호감을 보였다. 어떤 새들은 그리프에게 선물을 건네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앉으려고 다퉜다. "내가 그리프의 친구라구!"라고 외치는 새들마저 생겨났다.
특히,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새들이 그리프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말을 걸곤 했다. "예전엔 몰랐는데, 이렇게 멋진 까마귀가 있다는 걸 이제 알았어." 그리프는 이런 변화가 낯설었지만, 동시에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마치 자신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프는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그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만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이들이 진정으로 자신을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유명해졌기 때문에 다가오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루나는 그리프를 조용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프, 넌 원래 누구였니? 사람들이 너에게 기대를 걸며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넌 여전히 그저 너일 뿐이야. 달라진 건 그들의 눈이지, 네가 아니야.”
그리프는 루나의 말을 곱씹으며 자신이 왜 이렇게 불편함을 느끼는지 깨달았다. 자신이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기대와 시선 속에서 자신이 달라진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본질보다는 사람들이 보는 ‘특별한 존재’로 자신을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맞아, 루나. 나는 그냥 내가 좋아서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이제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에 맞춰야 할 것만 같았어.”
루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진정한 너의 가치는 너 자신이 느끼는 것이지, 다른 이들이 붙여준 명성에 달린 것이 아니야. 네가 무엇을 위해 노래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 그 답을 찾으면, 네 마음도 훨씬 가벼워질 거야.”
그리프는 루나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이제 다시 자신을 위한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했다. 유명해졌다고 해서,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고 해서 자신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소리로 행복해지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프는 다시 예전처럼 강가의 작은 자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제는 더이상 누군가의 기대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의 노래는 더 깊고 감동적인 울림을 주기 시작했다. 진정성에서 비롯된 소리는 그 어떤 유명세보다 값진 것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