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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ㅏ Sep 06. 2023

로맨틱이란 환상

EP 02: 사랑과 결혼

루나가 눈을 떴다!


 사람들이 가득한 광장에 하트 풍선이 가득하다. 핑크빛 조명과 부드러운 바닥재가 꼭 사랑을 고백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실제로 광장은 넓고 밝고 활기찬 곳이다. 즐겁게 이야기하거나 웃거나 걷는 사람들은 전부 연인으로 보였다. 광장의 중앙에는 하트 모양으로 물을 뿜는 분수가 있다. 분수는 계속 흩어지며 다양한 모양의 물줄기를 뿜었고, 색색의 조명으로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 냈다.


 루나는 끔찍하게 로맨틱한 광장이 낯설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곳에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어색했다. 광장 한쪽에는 연인들이 앉아있는 벤치가 있다. 벤치에는 하트 모양의 쿠션과 야릇한 향을 내뿜는 꽃이 있다. 연인들은 서로를 바라보거나 안거나 키스하며 접촉하고 있다. 벤치 옆에는 연인들이 자신들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걸어놓은 자물쇠가 있는 울타리가 있었고, 울타리에는 다양한 색상과 모양의 자물쇠가 수천 개 달려있었다.


 “나도 주책이야. 이런 토악질 나는 꿈을 꾸다니!”

 광장은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일 터. 하지만 문화교류가 아닌 성적인 행동과 아밀레이스의 교류만 이뤄지고 있었다. 광장의 다른 한쪽에는 조각상과 문화작품들이 즐비해 있지만 배경으로만 존재할 뿐, 광장의 목적은 스킨십일 뿐이었다.


 루나는 소름 돋는 광장을 걷다가 자신처럼 혼자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손에는 꽃다발과 반지를 들고 있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누가 봐도 고민이 있는 모습이었다. 루나는 빨리 고민을 해결해 주고 꿈에서 벗어나고 싶어 고민할 새 없이 남자에게로 향했다.

 

 “안녕. 너 무슨 고민이 있어?”


 남자가 돌아봤다.


 “안녕. 꼬마 아가씨가 무슨 일이래.”

 “무슨 일이고 뭐고 누가 봐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고 있으면 고민이 있고 도와주고 싶지.”

 “그 정도로 티가 났어?”


 남자는 멋쩍은 듯 웃음을 짓는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기에 이 역겨운 광장에서 혼자 싸돌아 다니고 있는 거야?”

 “오늘은 중요한 날이거든.”

 “중요한 날?”

 “그녀에게 프러포즈할 거야.”

 “프러포즈가 뭔데?”


 루나의 세계에선 프러포즈니, 결혼이니 하는 개념이 없었다. 좋아하면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세상이라 프러포즈와 결혼의 개념을 들으니 충격적이었다.


 “너 말은 결혼이란 건 말이야. 한순간 좋아하는 사람이랑 평생을 같이 살자고 맹세한 후, 온갖 제도적으로 구속되는 거라고? 정말 끔찍한 세상이네.”  


루나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자를 다그쳤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결혼은 신성한 제도야.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축하받는 식을 올리고,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과 약속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거든. 너는 구속이라 했지만, 법적으로 보호받는 관계를 맺는 거야. 또 가족과 친구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사회적인 책임과 역할을 부여받아.”


 “가족이 하나라도 피곤한데 피도 안 섞인 가족을 하나 더 두고, 친구들까지 자발적으로 신경 써야 한다니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거 같아.”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마. 결혼이 얼마나 행복한 건데. 결혼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충성과 존중과 배려와 지지와 동반을 약속하는 의식이야. 결혼 후엔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누가 뭐래도 결혼은 신성한 제도이자 문화적인 전통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개인적인 선택이야.”


 “그러니까 문제인 거지! 스스로 잘못된 길을 걷는데 나는 말릴 수밖에 없어. 굳이 결혼해야만 충성하고,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들어 봐. 사람은 계속 변하는 거야. 사랑 역시 순간의 감정이고! 네가 사랑한다는 사람이 한순간의 계기로 미워질 수도 있는 거라고! 단순히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평생을 같이 살자고 맹세하는 건 미친 짓이야! 누구와도 할 수 있는 사랑을 한 사람에게 바친다는 게 미친 거라고! 실제로 다른 사람에 마음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야. 나도 변하고, 너도 변하고, 가치관도 변하고, 외모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는 건데 평생 사랑한다고 맹세하는 게 말이 돼? 심지어 맹세해도 이혼하는 커플이 60%나 된다며!"


 “맞아. 하지만 나는 그 60%에 해당하지 않을 거야.”


 루나는 자신감 넘치게 말하는 남자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멍청한 규칙을 누가 만든 건지 모르겠네. 온갖 허례허식으로 결혼이란 걸 축복하는 식까지 올리다니. 이걸 진정한 사랑으로 포장하며 사회가 모두 세뇌하는 걸 이해할 수 없어!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나이에, 한정된 지역에서 한정된 사람을 만나서 평생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한다고? 분명 또 다른 사랑이 올 거라는 걸 알지만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실수하면 법적 리스크가 있는 상황에서 결혼이란 걸 한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얼마나 멍청한 규칙이야.”


 “어쨌든, 나는 결혼을 원하고, 결혼을 위한 프러포즈를 준비하고 있으니, 네가 도와줬으면 해.”


 “그래. 나도 이 미친 세상을 빨리 떠나고 싶으니까 해보자고, 프러포즈란 걸.”


 루나는 남자의 말에 따라 프로포즈를 준비했다. 광장 가운데 풍선을 배치하고, 현수막을 건다고 했다. 그러고는 대면해서 온갖 미사여구가 발린 달콤한 말과 돌덩이가 박힌 반지를 주고는 결혼해달라고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낯 부끄러운짓을 용케 하네. 심지어 이런 걸 받으면 좋아한다고? 정말 신기한 세상이야. 저딴 돌덩이를 보고 기뻐하고 이산화탄소를 불어넣은 고무덩어리를 보고 좋아한다니. 심지어 사랑에 빠진 이유가 힘들 때 곁에 있어줘서? 그럴 거면 사회복지사랑 결혼하지. 원래 생명은 힘들 때 서로 도와주는 거라고”


 “너는 이해 못할 거야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남자는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말했다.


 “평생 그 마음을 가지고 살기 바래. 지금은 누가 뭐라고 해도 듣지 않을 마약에 취한 상태처럼보이니까. 힘들 때 도와주지 않는다고 사랑이 식지 마…. 아니다. 평생 취해서 살면 별 문제가 없을 거 같기도 하네.”


 루나는 남자가 프러포즈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람들 앞에서 꽥꽥되는 노래를 부르고, 무릎을 꿇고 반지를 준다. 저 행위가 사랑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러포즈를 받은 여성도 감동했는지 눈물을 흘렸다. 프러포즈는 성공했고, 루나도 꿈에서 깰 수 있었다. 비몽사몽한 루나는 꼭 남자가 결혼이라는 이상한 제도 아래서 잘 살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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