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ㅏ Sep 03. 2024

천하제일가면무도회

EP15: 산다는 건 하나의 연극

루나가 눈을 뜬 곳은 전혀 낯선 공간이었다. 화려한 장식과 아름다운 가면을 쓴 공작들이 가득한 무도회장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가면을 쓴 공작들은 웃고 떠들며 춤을 추고 있었지만, 그들의 미소에는 어딘가 진실되지 않은 느낌이 스며 있었다. 루나는 이곳이 단순한 무도회장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곳은 ‘천하제일가면무도회’, 즉 공작들 각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삶의 축소판이었다.


루나는 천천히 무도회장을 둘러보며 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갑자기 한 공작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가면이 아주 멋지군요! 어디서 구하셨나요?”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루나의 가면을 칭찬했다. 루나는 남자의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그저 의례적으로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루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당신의 가면도 인상적이네요.” 그러나 그녀의 말 역시 가면에 가려진 진심이 아니었다.


루나는 조금 더 무도회장을 탐험하기로 했다. 무대 위에서는 누군가가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고 있었다. 파란 공작이 옆에 있는 흰 공작을 끊임없이 칭찬한다. 그러자 칭찬을 받은 흰 공작이 “아냐, 네가 더 멋진 걸!”라고 받아쳤다. 두 사람은 서로 이기려는 듯이 말싸움을 이어갔지만, 그들의 싸움은 결국 허울뿐이었다. 마치 서로를 칭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누가 더 그럴듯하게 남을 치켜세우는 척하며 자신을 어필하는지를 겨루는 것 같았다.


“결국 둘 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 거잖아,” 루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솔직하게 인정하고 서로 도와줄 수도 있을 텐데, 굳이 가면을 쓰고 연기할 필요가 있을까?”


 그때 무도회장의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자리한 공작 가족이 보였다. 그들 사이에서는 돈봉투가 오고 가고 있었다. 어른 공작이 용돈을 건네자, 아이 공작은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안 받아도 됩니다!”라고 말했지만, 그 말과는 달리 눈은 돈봉투를 쫓고 있었다. 결국 몇 차례 거절 끝에 돈봉투는 어린 공작의 손에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정말 필요했어요,” 그제야 두 공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루나는 무도회장 한가운데서 지내는 사람들이 하나의 쇼를 하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짜인 틀 안에서 서로 정해진 수를 주고받으며 겉치레를 하는 가식적인 모습이 너무나 어색했다. 실제로 양복을 입은 정치하는 공작은 서로 경쟁하고 싸우지만, 결국 그들은 사전에 짜인 각본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선거 유세에서, 의회에서, 심지어 인터뷰에서조차 그들은 연극을 하고 있었다. 마치 진짜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명분을 만드는 쇼에 불과했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구나,” 루나는 생각했다.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면서 말이야. 누군가는 강해 보이려 하고, 누군가는 친절해 보이려 하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가면을 쓰지. 이 무도회에서 가면을 벗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무도회장 곳곳에서 공작들은 끊임없이 가면을 바꿔 쓰며 자신을 연기하고 있었다. 하나의 가면이 아닌 상황에 맞는 다양한 가면을 준비한 것이다. 한쪽에서는 상사에게 아부하는 직원들이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친구 사이에서 서로 칭찬을 주고받으며 속내를 감추는 공작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다른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그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사회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일 수도 있어. 모두가 솔직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가면을 쓰고 살아가면서, 진정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모든 것이 가식적이고, 진심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 순간, 루나는 무도회장에 가득한 공작들이 모두 지쳐 보이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가면 뒤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고, 진짜 감정을 숨기느라 지친 모습들이 보였다. 그들은 더 이상 무도회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직 사회에서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가면을 쓴 채 연극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었다.


 루나는 무도회장 한가운데서 외롭게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가면을 쓰지 않고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혼자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가면을 쓰지 않은 자신이 진정한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가면을 쓰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있을까?” 루나는 마지막으로 자문했다. “아니면, 가면을 쓰는 것 자체가 이 세상의 본질일까?”


루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녀는 자신이 가면을 쓸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습이 아닌,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그렇게 그녀는 무도회장을 뒤로하고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가식적인 세상을 떠나,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하기로 한 것이다.

이전 17화 세상에서 가장 힘든 거북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