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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ㅏ Sep 05. 2024

행복한 결혼식

EP16: 아무것도 모르지만, 어쨌든 사랑하니까


 루나는 울창한 푸른 계곡 한가운데서 눈을 떴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우뚝 솟은 참나무와 속삭이는 버드나무로 둘러 쌓인 계곡은 자연의 장엄함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지저귀는 새소리, 향긋한 자연의 냄새, 솔솔 불어오는 바람, 푸르스름한 빛, 은은히 느껴지는 달짝지근한 맛까지 말 그대로 꿈속의 세상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곳에선 하얀 대리석 기둥, 울리는 종소리,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 향기, 알싸한 맛이 느껴지는 결혼식장이 있었다. 자연의 웅장함과 인간의 예술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을 향해 발걸음을 향한다.


 목가적인 환경 중심에 상아색 벽과 슬레이트 지붕이 황금빛 태양 아래 반짝이는 담쟁이덩굴과 활짝 핀 장미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향기가 정원의 싱그러운 흙내음과 케이크 내음이 어우러져 있다. 경내는 꽃의 천국을 만들기 위해 세심하게 조경된 정원과 함께 라벤더와 백합, 모란과 팬지 등이 산들바람에 흔들리며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을 비추는 고요한 호수가 있다. 별가루처럼 빛을 흩뿌리는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장식되어 어쩌면 인공적인 결혼식장을 위해 자연이 꾸며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결혼식의 중심에 식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토끼 두 마리와 수많은 하객 동물들이 있었다. 루나는 자연스럽게 결혼식에 자리했다. 인사를 돌던 토끼 두 마리도 루나를 보곤 인사를 건넸다.

 “공주님도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 찾아와 주셨군요. 반갑습니다.”

 “응. 결혼식이라는 허울 좋은 행사를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으니 구경은 해봐야지.”

 “맞아요. 모두가 저희의 사랑을 축복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정말 사랑하면 굳이 주변에 알리고 인정받는 식을 전재산을 탈탈 털며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지만, 너희가 한다니까 이선 축하할 게”


 두 토끼는 까르르 웃는다.


 “그게 결혼식이니까요. 요즘은 결혼보다 결혼식이 더 중요해요.”


 루나는 차려진 오렌지 주스를 쪽쪽 빨며 말한다.


 “나는 궁금한 게 있어. 정말 두 사람은 사랑해?”

 “당연히 사랑하죠!”


 두 토끼가 동시에 말한다.


 “내 말은,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할 만큼 사랑하냐는 거야. 굳이 둘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알리고, 평생 변치 않을 사랑을 맹세할 수 있다고? 고작 몇 십 년 밖에 안 살고, 이 넓은 세상에서 오직 이 지역에서, 제한된 사람들만 만나고 살았으면서 평생 사랑을 맹세할 수 있냐는 거지. 너도 변할 거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도 변할 건데 고작 지금 가진 생각으로 결혼을 한다고?”

 “제정신이면 결혼을 안 하죠, 이성적인 생각보다는 감성으로 하는 게 결혼입니다.”


 루나는 수긍했다.


 “그렇군. 예전 결혼 제도는 일부다처제, 왕이면 많은 이성을 거느리고, 또 종교에 따라 많은 이성을 거느리는 게 가능한데 지금 너희가 하는 결혼 제도는 너무나도 비이성적이야. 감성적이어야만 가능하긴 해. 평생 한 사람과의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하다니! 하긴, 그래도 감성이 식을 때쯤이면 이혼란 제도가 있으니까. 실제로 이혼하는 토끼도 수 십만 마리라며. 나중에 새끼 때문에 이혼 못한다. 사회적 시선 때문에 이혼 못한다고만 안 하길 바라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걱정 마세요. 저희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랑해요"

 "이혼하는 토끼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루나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 묻는다.


 "서로는 과거를 얼마나 알고 있어?"


 신부토끼가 말한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아요! 환상 속에서 살고 싶은데 그런 현실적인 소리를 하면 환상이 깨지잖아요!"


 신랑토끼도 거들며 말한다


 "맞아요. 과거를 아는 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거라고 하잖아요! 굳이 알아봤자 좋은 이야기가 많이 나올 거 같아서. 저도 환상을 사랑할 겁니다."


 "그렇지. 그런 미친 짓을 하는데, 환상이란 방어기제가 없는데 너무 힘들 거야! 그렇지만 응원할 게 서로를 못 믿어 법적으로 구속되고 문서로 확인받기 위한 계약을 하고, 고작 비싼 반지를 사주며 서로 감동하며 앞으로의 집안 갈등과 출산 육아 과정의 책임감 있는 행위를 잘 이수한다는 의미로 이런 행사를 개최한 걸 응원해."


 루나는 세상을 떠나며, 이상한 제도와 이상한 결정을 내리는 토끼들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문화는 존중해야 한다는 선진적인 사상을 탑재했기에 이해하려 노력하며 자신의 생각이 편협적이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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