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도전
2. 무모한 도전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던 날, 나는 집에서 '무모한 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지하철과 달리기 중 누가 더 빠른가를 가늠하는 무모한 개그맨들의 도전을 보며 깔깔대며 웃었다. 어차피 지는 게임이지만 뭔가 잘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한 그런 묘한 기대감을 들게 했다. 한참을 보면서 대전 결혼식에 다녀오겠다고 길을 나선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제 죽전을 지나 집으로 오고 있겠다고 생각했다.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형에게 갔다.
"형, 엄마 아빠 오기 전에 라면 끓여 먹을까?"
라면 먹는 걸 유난히도 싫어했던 엄마 덕분에 부모님이 집을 비우면 라면을 꼭 하나씩 챙겨먹는 버릇이 생겼다. 하지만 바른생활 사나이인 단칼에 거절했고, 나는 정수기에서 정확히 500ml를 개량해 라면물을 올렸다. 그 다음은 tv에서 흔히 보는 장면과 다르지 않다. 라면을 넣고 스프를 넣고 드디어 라면이 찰기있게 익어가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고, 형이 전화를 받았고, 그 전화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닌 경찰의 전화였고, 우리는, 그렇게, 둘만 남았다. 부모 없이 살아가는 무모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게 벌써 10년도 훌쩍 넘었다. 우리 형제는 그 후로 라면을 먹지 않는다.
다행히 나에겐 형이 있었다. 형은 나에게 부모같은 존재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형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보험회사에서 나온 보험금을 허투루 쓰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엄청나게 중요한 시기에 받는 충격임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충격흡수 젤이라도 있는지 마치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듯 더욱 공부에 매진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교에 떡하니 붙은 형은 곧바로 과외자리를 다섯 개나 잡았고, 그것으로 생활비를 벌며 받은 돈으로 재테크를 시작했다. 농담 하나도 섞지 않고, 우리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더 부자가 되었다. 형은 투자의 귀재였다. 우리집은 24평 시영아파트에서 45평 송파의 아파트로 그 둥지가 바뀌었다. 문제는 형의 그 앞만 보고 가는 성격에 내가 그저 꼽사리로 끼어있다는 것뿐. 형은 나에게 눈치도 주지 않았고, 그렇다고 하나뿐인 동생이라고 특별히 아껴하지도 않았다. 때론 마치 저렇게 프로그램되어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계적이었다. 집은 늘 먼지 하나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게 너무 싫어 내 방만은 내 마음대로 어지럽혔다. 가끔 형이 출근하고 집에 없는 날 친구가 집에 놀러라도 올라치면 내 방문을 열자마자 앨리스가 사는 '더럽게' 이상한 나라의 문을 연 것 같다고 말했다.
거금 500만원으로 자전거를 사겠다고 말하고 친구 인철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석구야, 어차피 500만원으로 최고급 자전거를 사긴 힘들 거야. 뭐, 물론 나쁘지 않은 매우 좋은 카테고리 안의 자전거를 구입할 수 있겠지. 그런데 말이야 그런 자전거는 꼭 500만원이 아니더라고 300에서 400만원 사이에서도 적지않게 구할 수 있거든. 내가 자전거 쪽이라면 잘 아는 선배가 있으니 거기 가면 저렴하게 살 수 있을 거야. 거기서 한 400짜리로 한 대 사고, 나머지로 새로 나온 최신형 플스 게임기랑 대형 LCD 모니터 한 대 사자! 응?"
500만원 꽉 채워서 자전거에 투자하기로 했다. 그러지 않았다간 이 반백수 인철이 새끼가 내 방안에서 24시간 게임을 하며 눌러살 것이 확연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은 되도록이면 그렇게 하자고 인철이에게 곧 사라질 것이 자명한 시한부 희망을 안겨주며 그 ‘자전거를 잘 아는’ 선배에게 가자고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