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타 통신

일본 도쿄의 칵테일 바에서

by mupdayz


지난 일본 신주쿠 출장(?) 중 우연히 오래된 바의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름은 아라타. 3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이 덩치 좋은 남성은 우리의 한국말을 듣더니 자신이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이라고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은 출판사에서 일하지만 어릴 땐 수구 선수였는데 한국에서 학창시절에 스포츠 유학 같은 걸 했었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수구 강국인가?)


아무튼 더듬더듬 되지도 않는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이어갔고, 어찌됐든 술은 만국 공통어인지라 바에서 나와 근처의 아라타의 단골집이라는 어느 실내 포차같은 곳에서 오뎅에 사케 같은 것을 먹고, 기세좋게 이번에는 역시 아라타의 단골집이라는 인당 이삼만원 정도의 돈을 내면 사케와 위스키 등을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 바도 가보게 되었다. 이 술집,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필시 한달 안에 나 때문에 문을 닫아야 했을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술자리를 이어간다는 건 일견 위험해보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설레고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세번째 술집에서는 재일교포 3세 정도 되시는 할아버지도 옆에 앉아 '충청도' '충청도'를 외치기도 했다. 다시 볼 수는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 시간 만큼은 오랜 친구처럼 끈끈했다. 그런 밤이었다. 아라타는 결국 지하철이 끊겨 우리 호텔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고, 다음날 늦게까지 잠든 우리와 달리 먼저 출근을 해야했던 그는 호텔 메모지에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와 이메일 주소 등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마치 헐리우드 영화에서 원나잇 스탠드를 하고 다음날 메모 한장만 남기고 떠나는 금발의 미녀가 생각났다. 다시 말하지만 아라타는 30대 후반의 매우 중후한 사내다.


아라타를 보며 느낀 건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었다. 샐러리맨으로서의 스트레스, 하룻밤의 회포, 낯선 사람과의 즐거운 인연 같은 것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지하철이 끊긴 후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전화해서 '아, 그러니까 내가 한국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는데 지하철이 끊겨서 여기서 자고 출근해야할 것 같아' 라고 뒷목에 식은땀을 흘리며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일본은 택시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시내에서 차가 끊기면 외박하는 것이 그렇게 낯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지 한달이 넘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그가 남긴 이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영어도 짧고 일본어는 더더욱 짧아서 그냥 내가 그날의 그 한국인이며, 앞으로 계속 연락을 이어가고 싶다면 이 주소로 메일을 하라고 보냈다. 몇 주 동안 대답이 없는 것을 봐선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싶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답장을 받았다.


친애하는 김에게.
지금 일본은 장마 시즌입니다.
밖에 나갈 때는 꼭 우산을 챙겨야 하죠.
수분이 많은 계절이라, 음식도 잘 상하고 배탈의 요인이 되기도 해요.
한국은 장마가 아닌가요?


안녕히.


-아라타 네모토.


뭔가 매우 재미있었다. 세상에 이런 내용의 편지라니! 이런 내용의 편지를 주고받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니, 이런 서신을 주고받은 적이 내겐 있기나 했던가? 말 그대로 안부 편지다. 처음엔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가, 이내 두세번 다시 읽고선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바로 이런 게 편지다. 답장을 썼다.



친애하는 아라타에게.
안녕하세요.
한국은 아주 덥지만 아직 장마는 아니에요.
그러나 다음주나 며칠 후부터는 장마가 시작될 것 같아요.
한국에선 습기보다는 공기 문제가 더 커요.
그래서 나쁜 공기를 없애기 위해 집집마다 공기청정기를
구입하곤 합니다. 우리집에도 두 대나 있어요.
사람들은 매일 아침 날씨와 함께 공기가 좋은지 나쁜지를 체크하는게 일상이 되어있어요.
다행히, 여름은 봄보다 공기가 좋답니다.



어린 시절 펜팔이 생각났다. 사실 난 펜팔을 해본 적이 없다.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지 못하는 것도 펜팔에 속한다면 해본 적은 있지만. 대신 고교시절엔 소개팅에서 만난 잠실여고 2학년 여학생에게도 편지를 보내보았고, 중학생 시절 짝사랑하던 동급생에게도 우편으로 편지를 보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목적이 없는 단순한 서신이라기보다는 그녀들의 마음을 훔치기 위한 목적성이 있으므로 약간은 순수성에 위배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안부서신의 제대로 된 첫 경험을 마흔 네살의 여름이 되어서야 처음 해보는 것이다. 그게, 그리 나쁜 기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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