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덜 깬 오전, 아내와 거실에 앉아 이런저런 옛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한번은 계약을 잘못한 바람에 일은 일대로 몇개월 동안 하고 그 결과로 유감이라는 말과 함께 달랑 몇 만원을 손에 쥐고 처량하게 집에 오던 스물두세살 시절의 어느날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기억 속의 나는 배가 참 고팠고, 석양이 지는 오후 나를 돌려보내던 사람들 중 아무도 내게 밥 한 끼 사주지 않았고, 주머니 속에 을씨년스럽게 들어있던 몇만원은 가난하고 비루한 이유로 순두부 백반 하나도 허락치 않았다.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중반 사이로 형성되어있던 그 당시 내 시각에서의 어른들은 그처럼 아량이라곤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처음 잡지사와 인연이 닿아 잡지사에서 어떤 야외행사를 주최하는데 그 현장을 돕기 위해 사무실에 갔을 때였다. 대표님은 팔을 쭉 뻗어 나를 안아주었다. 어른 남자가 날 안아주는 것도 처음이었고, 인사를 이렇게 하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반갑다고 활짝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편집장님은 까만 단발머리였고, 이미 친했던 기자 누나는 내게 밥 먹었냐고 먼저 물어보았다. 그때가 오후 2시 반인가였고, 이미 점심때가 훌쩍 지났는데도 누나는 집요하게 물어보았다. 사실 나는 밥을 안 먹은 상태였다. 쑥스러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 먹었다고 했더니 불고기 비빔밥을 시켜주어 사무실 구석에서 혼자 먹었다. 불고기와 상추의 조합이 기가 막혔다.
이후 기자가 되어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에도 젊은 친구들이 자주 사무실에 왔다. 알바로 일을 도와주러, 혹은 자신의 컨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그럴 때마다 나의 선배들은 아이들에게 밥을 먹었냐는 확인부터 했다. 그래서 한 번 선배에게 물어보았다. 밥때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냐고. 그랬더니 누나가 말했다. 배고프면서 일하면 서럽잖아. 그 말이 참 기억이 난다고 하자, 아내는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다며 울먹울먹했다.
우리에겐 그런 '정말'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그런 건 청춘이라는 말로 가려지지 않는다. 몇 년 후면 50이 된다. 밥 먹었냐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나는 나에게 자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