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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피역과 학창 시절

기차 통학생과 기찻길 옆 동네

by 땡자랑

고즈넉한 임피역사에는 간간히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대형 버스에서 내리는 20-30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거나, 승용차를 이용하는 3-4명의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다. 임피역은 간이역의 기능이 아닌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관광지가 되어 있다.


임피역은 1912년 호남선의 지선으로 완공된 군산선의 역으로 처음 신축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라도의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는 수탈의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1936년 건축된 현재의 임피역은 오래된 역사 건물로 추정된다. 건축이 서양과 동북아시아 가옥 양식을 결합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등록문화재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임피역은 어린 시절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중학교는 십리길을 걸어서 읍내에 있는 학교에 다녔고, 고등학교는 기차를 타고 익산시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아침 첫차는 군산역에서 출발하는 비둘기호 열차로 7시 07분에 출발한다. 좌석이 있긴 하지만 입석까지 학생들로 꽉꽉 차서 달리는 통학 열차이다. 임피역에서는 익산과 군산으로 가는 열차가 서로 교차하여 통과한다.


저녁에는 9시 30분에 막차를 탔다. 고3학년 때 야간자율학습을 10시까지 했다. 공부하느라고 고요한 교실에서 부스럭거리며 책가방을 챙겨 9시쯤이면 교실에서 살짝 빠져나온다. 미안하기도 하면서도 속으로는 '야호!' 쾌재를 부른다. 남들보다 1시간 빨리 공부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차 통학생 특혜이다. 막차에는 아침에 기차에 탔던 통학생들이 모두 같은 기차에 탄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쑥배치마를 입은 촌스러운 여고생과 세일러칼라의 짧은 치마를 입은 여상 학생도 같은 차에 탄다.


매일 기차를 타고 통학하다 보니 눈에 띄는 남학생도 생겼다. 키가 크고 조용하며 용모가 준수했다. 기차칸에 올라타면 눈을 두리번거리며 짝사랑 그 남학생을 찾는다. 그냥 뒷모습이라도 보면 행복했고, 안 보면 궁금했다. 기차 안에서 단짝 친구와 속삭이며,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잡고 두 발로 버티면서 다녔다. 학창 시절의 꿈과 희망이 기차 속에서 영글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기차 통학을 했다. 임피역에서 출발하여 익산역에서 환승을 하여 전주까지 기차를 타고 다녔다. 통학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같은 칸에 모인다. 향우회 선배님을 기차에서 만났는데, 3월 이용권을 8월로 조작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승무원들은 전주로 가는 환승한 학생들의 승차권 잘 검표하 않았다. 이 틈새를 노려 나도 3월 승차권을 8월로 고쳐서 한 달간 무임승차를 했다. 조작된 8월 승차권을 이용한 한 달 동안은 승무원이 지나가기만 해도 심장이 콩당 거렸다.


최근 부산 연수에 가기 위해 SRT를 탔다. 익산에서 오송역까지 가서 환승하는 왕복 기차표를 인터넷으로 구입하였다. 지정 좌석에 앉아 가는데 승무원이 차표 검사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기차표 없이도 부산까지 공짜 기차를 탈 수도 있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KTX에 다니는 딸을 둔 친구가 요즘은 전산으로 다 입력되어 지정석 아닌 자리에 앉아 있으면 승무원이 티켓 검사를 한다고 했다.




친정집 동네인 당메는 기차가 지나가는 마을이었다. 익산에서 들어오는 기차가 보이는 이십여 호 정도의 작은 기찻길 옆 동네였다. 통학생인 내가 마루에 서서 뜨거운 밥을 찬물에 말아먹다가 뛰기 시작하면 기차를 탈 수 있을 만큼 기차역과 가까운 동네이다. 승무원인 안 씨는 같은 동네에 살았다. 깃발을 흔들며 통학생들이 탈 때까지 기다린 후에 출발 신호를 해준다. 어쩌다 늦게 오는 학생도 아저씨는 끝까지 기다려줬다가 기차를 출발시다.


승무원 안 씨는 아버지한테 '형님'이라고 호형호제하는 가까운 사이다. 역 안에서 차표를 팔고, 기차가 들어오면 깃발을 흔들며, 기관사에게 출발 신호를 하는 일을 했다. 전주로 대학을 다니는 나에게 "재면이 형님네 딸들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라고 볼 때마다 칭찬을 했다. 휴일에 아버지랑 막걸리 한잔을 마시는 날에도 딸들이 얌전하고 똑똑하다고 항상 부러워했다.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로서 새벽부터 항상 바쁘셨다. 나 역시 아침 첫차와 저녁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가기 때문에 아버지랑 대화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날은 막차를 타러 익산역을 빠져나오던 중이었다. '어! 뒷모습이 키가 작은 아빠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무엇이 바쁜지 아빠는 딸을 보지 못하고 앞으로 쑥 지나가셨다. 당시 못난 사춘기 소녀였기에 키 작은 아빠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아는 체를 못했다. 아빠 뒤를 천천히 따라 걸어가 아빠가 올라 탄 기차 칸을 지나 일부러 다른 칸에 탔다. 지금이었다면 아빠 팔짱을 끼고 걸으며 하루 일과를 종알거려 딸바보를 만들었을 텐데! 어쩌다 키가 작은 노인분의 뒷모습을 보면 그 옛날 아빠를 보는 것 같아 한참을 멈춰 서 있을 때가 있다.


친정에 갈 때마다 임피역을 방문해 본다. 학창 시절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했던 역전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관광객들이 오래된 역사 앞에서 사진도 찍고, 둘러보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기차를 타려고 숨차게 뛰었던 학창 시절 내 모습도 떠오른다. 그 시절 함께했던 통학생들은 잘 살고 있을까? 문득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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