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션은 기분 값
무더운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에어컨을 틀기엔 아직 이른 5월
시원한 음료 한 잔이 간절해지는 계절이다.
그리고 나의 가장 위험한 시즌이기도 하다.
"텀블러가 6개나 있어. 그런데도 또..."
새로운 플라밍고 색상의 텀블러를 박스에서 꺼내며 작은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하지만 그 화사한 핑크색과 무광이지만 메탈릭 광택을 보는 순간. 죄책감은 곧 설렘으로 바뀐다. 이번에는 대용량이라 더 실용적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텀블러는 환경을 위한 투자야, 일회용 컵 줄이는 거잖아." 이 말은 내가 새 텀블러를 살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는 변명이다.
물론 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랍 속에 무지개처럼 쌓인 텀블러들을 보면 과연 '환경'을 위한 것인지 내 '취향'을 위한 것인지 선을 긋기 어렵다.
남편은 내 컬렉션을 볼 때마다 한숨을 내쉰다.
"또 샀어? 집에 텀블러가 몇 개인지 알아?"
"하나도 안 많아! 다 다른 용도로 쓰는 거라고."
"그래서 매일 다른 텀블러 들고 다니나?"
"............."
현실은 현실이다. 화려한 색상의 스탠리 5개와 오왈라 1개 중에서 정말로 자주 쓰는 건 딱 두 개뿐이다.
진한 핑크퍼레이드 스탠리와 대용량 베이비핑크 오왈라.
나머지는.. 글쎄, 예쁘게 진열해 두고 가끔 기분 전환용으로 사용한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진짜 약속할게."
남편에게 한 약속이자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을 열자마자 타임라인에 등장한 스탠리 새 컬러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색상은 다다익선인가?! 볼때마다 눈에 꽂히는 예쁜 색상. 텀블러가 아니라 예술 작품 아닌가?
"그냥 구경만 하는 거야, 사는 건 아니고."
하지만 누구나 알듯이 '구경'은 곧 '장바구니'가 되고 '장바구니'는 '주문완료'가 되는 법이다.
특히 신상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는.
오늘 나는 메시 스타일과 고민하던 차에 결국 신상 플라밍고 텀블러를 들여놓았다.
이번에도 꼭 필요했다.
886ml는 조금 작고 기존의 핑크와는 색이 살짝 달랐으니까. 완전히 다른 제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의 경고가 귓가에 맴돈다.
"진짜 한 번 더 사면 전부 갖다 버린다!!!"
그 말이 농담인지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름다운 플라밍고에 핑크를 보고 있으면 출근길에 들고 갔을 때 동료들의 부러운 시선과 카페에서 리필할 때 바리스타의 눈빛.
그 기분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사실 아무도 관심없음..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텀블러는 단순한 물병이 아니다. 개성의 표현이자, 작은 사치, 그리고 평범한 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드는 소소한 행복이다.
비싼 가격에 허세라고? 나는 그것을 '나의 기분을 위한 투자'라고 부른다.
그래도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다짐해 본다.
적어도 다음 시즌까지는...
남편, 미안해요. 딱 한 번만 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