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거룩한 사랑

마침표 없는 사랑의 문장을 번역하며

by 화원

나는 너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사랑을 발명한다. 정확히는 네가 내게 건네는 사랑의 형상을 가공한다. 네게서 기인한 파편들—입술에 머금는 단어, 시선이 머무는 지점, 고유한 습관의 몸짓을 모아 정성스레 분류하고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인다. 마치 네 사랑의 현현한 물증이라도 되는 것처럼, 집요하게 끌어모은 증거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너의 궤적이 나의 궤도를 따라 순항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미 없는 신호탄을 허공에 대고 열렬히 타전하고 있는 것인지.


안다. 이 해석의 과정이 영원한 불가지(不可知)의 영역에 속해 있다는 것을. 네가 나를 지극히 사랑한다 하더라도, 나는 결국 ‘나’라는 상태, 나를 점유한 관념의 폐쇄된 언어로 너를 번역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랑을 발명한다. 없는 것을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을 없다고 부정하면서, 왜곡된 사랑의 실체를 붙잡으려 손을 뻗는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내가 추적하던 것은 너의 사랑이 아니라, 어쩌면 내 사랑의 망령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믿었던,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그 사랑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언제부터 미아가 되어 어디를 찾아 헤매고 있었던 걸까. 애초에 실재하기는 했던 걸까. 보이지 않는다. 이 답답함을 해소해 줄 명백한 증거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너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나의 결함이 아니라 너의 변심이라고, 너는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내게 선언한다. 사랑한다는 믿음 아래 쌓아온 시간들이 부정되는 일을 견딜 수 없어서, 감당하기 버거운 진실을 너라는 타자에게 유기한다.


내게는 관성처럼 굳어진 과정이다. 여러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여전히 같은 경로를 답습한다. 어느 날 문득 사랑의 죽음을 목도하면, 말라버린 샘의 바닥에 고여있었을지도 모를 흔적을 기어이 파내다, 이내 스스로를 기만하며 망각 속으로 투신한다. 그 사랑의 죽음은 정말로 너의 사랑이 소멸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주어지고 있던 사랑을 감각하는 나의 능력이 마비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죽어 부패한 사(死·愛)체를 그제야 발견한 건 아니었을까.


사랑의 밀도가 측정 불가능한 임계치 아래로 추락할 때, 그것은 곧 ‘무’로 수렴하는 것일까. 단 한 점의 잔해도 남기지 않은 채 휘발되는 것일까. 만약 나의 사랑이 거대한 착각이었다면, 너의 사랑은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 각자의 사랑이 실체를 갖는다 한들, 그것이 서로의 세계에 닿을 수는 있을까. 닿았다고 느끼는 그 감각은 누구의 소유일까.


나는 사랑을 찾을 때마다 [우리] 사이의 불길한 '간격'을 목격하곤 한다. 그 거무죽죽하고 끈적한 간격이 좁혀올 때면, 나는 이내 서둘러 결론을 내리고 그곳으로부터 도망칠 채비를 한다. 명징한 빛을 발하는 관계를 찾아서. 선명히 관계가 정의된 타인들과의 거리감은 나에게 안전한 지대를 보장해 준다. 이 관계들을 나는 **정상**이라고 부르며, 아니,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다독이며 간격으로부터 한 발 짝 물러선다.


“이건 사랑이 아니야."
꽤 안락한 문장이다.

통제 가능한 진실에는 요행도, 심연도 없기에.


‘사랑’. 존엄하고 신성히 치부되는 이 이름은, 사실 온갖 감미로운 수식어로 치장한 폭군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도달할 수 없는 간극을 대동하고 나타나는 이것은, 내게 거룩한 망상에 포획된 세계를 통째로 건네곤 한다. 사랑이 가득 찬 세계를 직시하라며, 사랑하기를 종용하며, 꼬리를 무는 명령들이 나의 존재 의미를 추궁한다.


이 거대한 연극에 가담하는 이들은 진정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걸까. 어쩌면 본인들도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사랑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랑 없이 세상을 지탱할 힘이 부족한 미천한 존재임을 인정하며- 기만의 행렬에 부단히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실을 마비시킬 만큼 달콤한, 사랑의 단지 속에 절여진 채 정신을 잃는다면, 나도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나 역시 그들처럼, 어떠한 의심도 없이 사랑을 숭고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생각한다. 온 세계가 사랑이라는 광기에 잠겨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 광기 속에서 망설이며 헤매는 내가, 그럼에도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그리곤 물어볼 것이다. 너에게 사랑은 무엇이냐고.


※ 커버에 사용된 이미지는 저작권 제약이 없는 Ben Mack 님의 사진으로, 아래 링크의 [Pexels] 갤러리에서 원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www.pexels.com/ko-kr/@ben-ma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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