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호 Jan 16. 2017

돼지국밥을 시전 하다


(* 일단 이 글은 돼지국밥을 만드는 방법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방법이 궁금하시다면 http://murutukus.kr/?p=3824 이 글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


왜 만드는가?


집에서 만들기 힘든 음식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최고는 역시 냉면이다. 비빔냉면이야 뭐 어찌어찌한다 하더라도 물냉면은 그 육수의 맛이 가장 중요한데, 제대로 된 육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스킬도 중요하지면 역시 핵심적인 것은 “양”이기 때문이다.


소량을 만들어서는 제대로 된 육수를 내기 힘들뿐더러 비용도 문제가 된다. 대량으로 만들려면 일단 시설, 화력이나 그릇 등이 문제가 되고, 또 그렇게 만들어 뒀다가 그걸 어느새 다 먹겠는가. 육수만큼 상하기 쉬운 것도 없는 법이다. 냉면집 대장균 검출사고는 항상 육수 탓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냉동 보관을 한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결국 냉면육수는 집에서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소금과 설탕과 식초로 만든 가짜 육수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설렁탕도 마찬가지다. 냉면보다야 약간 덜하지만, 설렁탕 역시 양으로 승부하는 육수 제조 과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만들기도 힘들지만, 만들어서 먹는 것도 큰일이 된다.


돼지국밥 역시 비슷한 범주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만들어 봤다. 가장 큰 이유로는, 물냉면이나 설렁탕이야 집 근처에서 얼마든지 사 먹을 방법이 있지만, 내가 사는 곳 주변에는 제대로 된 돼지국밥집이 없기 때문에 사 먹기조차 힘든 것이라는 점이다.


사 먹을 수 없으니 만들어 먹어야지.


돼지 사골


신기한 일이지만, 소사골에 비해 돼지 사골은 지나치게 푸대접을 받고 있다.


사골이라면 대략 네 개의 다리뼈를 의미한다. 주로 국물을 내는 용도로 사용하는데 소의 사골이 엄청난 가격으로 대단한 대접을 받으며 명절날 선물용으로도 많이 팔리고 하는 것에 비해 돼지의 사골은 거의 버려지다시피 하는 부위이다.


왜 그런지는 대략 소와 돼지의 사골을 이용해서 국물을 내다보면 어렴풋이 알게 된다. 손질하기도 어렵지 않고, 끓일수록 뽀얀 국물이 먹음직스럽게 우러나는 소의 사골과 달리 돼지 사골은 좀.. 쉽게 표현하자면 더럽다.


일단 돼지 사골은 피도 많이 나온다. 그리고 골수의 성분이 소와 달라서 그런지 색도 그리 좋지 않다. 잡 성분도 많이 끼어 있어서 국물이 쉽게 탁해지기도 한다. 직접 해본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어느 선 이상으로 끓일 경우 갑자기 골수의 성분이 우러나오면서 국물이 갈색으로 변하기도 한다고 한다. 난 거기까지는 경험을 해 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다.


그러니 옛사람들이 보기에 돼지뼈를 우려낸 국물은 그리 고급스럽지 않은 음식이었다는 점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안 팔린 거겠지 뭐. 그러나, 돼지국밥은 돼지뼈로 국물을 우려내는 음식이다. 그게 아니면 돼지국밥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돼지 사골을 구하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 된다.


젊은 총각이 운영하는 동네 정육점이 있는데, 거기서 맨날 이거 저거 고기들을 사다 먹다 보니 얼굴을 알게 되었다. 나만 아는 줄 알았더니 주인장도 나를 알아본다. 그래서 돼지 사골을 좀 구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선선히 얼마나 필요하시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국물을 우려서 돼지국밥을 만들려고 한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준비해 둘 테니 다음 주에 오시라고 한다.


다음 주에 가봤더니 냉동고에서 그럴싸한 돼지 사골, 잡뼈 거의 안 섞인 사골을 한 무더기를 들고 나온다. 오호라~


얼마냐고 물었더니, 자기네 집에서는 돼지를 직접 해체하기 때문에 돼지뼈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거라고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 고마운 마음에 수육용 사태를 좀 팔아준다.


우려내기


이렇게 돼지 사골 국물 우리는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만만치가 않다.


이만한 함지박에 찬물을 담고 거기에 뼈를 넣어 핏물을 빼야 된다. 사골이 워낙에 싱싱한 거라서 그랬는지, 냉동기가 녹아가면서 핏물이 엄청 나온다. 물이 붉은색이 돌면 갈아주고, 또 붉은 핏물이 스며 나오고… 이 짓을 한 열 번 정도는 한 것 같다. 그래도 완전히 안 빠진다. 시간은 서너 시간이 넘은 것 같은데..


반나절을 담가야 한다는 얘기가 사실이었다.


그러고 나서 들통에 물을 담고 뼈를 넣고 초벌 끓이기를 시도한다. 엄청나게 더럽다. 핏물이 마구 떡이 지면서 갈색 거품이 부글거린다. 이 더운 날 그 불 앞에 서서, 국자로 계속 건져낸다. 한도 없이 나온다. 한도 없이 건진다.


어지간히 핏물이 빠지고 거품이 줄기 시작할 때, 불을 끄고 물은 다 쏟아 버리고 뼈를 건져낸다. 뼈 곳곳에 갈색 찌꺼기들이 달라붙어 있다. 저거 다 씻어 내야 한다. 그뿐 아니라 관절 연골 부위에 남아있는 연골과 근육들 사이에도 곳곳에 박혀 있다. 그거 다 힘줘서 연골을 뜯어내가며 닦아 내야 한다.


오로지 맑고 먹음직스러운 국물을 만들기 위해 이 짓을 해야 한다. 그냥 비싸더라도 소 사골을 사다가 곰국이나 끓여 먹을걸..


이젠 사골 값은 머릿속에 없다. 내 인건비, 내 노동력, 이 시간에 트윗질을 했으면 팔로워라도 더 늘었을 텐데..


새 수세미를 꺼내 박박 문질러 가며 구석구석 손가락도 잘 안 닿는 틈바구니 속까지 숟가락 젓가락을 동원해가며 긁어내가며 다 닦는다.


땀이 뻘뻘 난다.


그래도 대충 뼈를 다 닦아 놓으니 색도 좀 검붉은 색에서 허여멀건 해졌고, 이제는 국물을 우려도 될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대략 여섯 시간.


본격 국물 만들기


들통에 뼈를 담고 맑은 물을 붓는다. 웅머시기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채워본다. 그리고 일단 불을 켜서 물이 끓을 때까지 지켜본다. 다행히 잡티나 거품이 나지 않고 물이 맑게 끓기 시작한다. 이제 되었다 싶지만, 이제부터는  핏물이 아니라 기름과의 싸움이 된다.


기름이 엄청 뜬다. 끝없이 뜬다. 이 기름 걷어다가 중국집에다가 기증하고 싶을 정도로 뜬다.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기름이 막 소용돌이치면서 한쪽으로 몰린다. 그러면 국자로 걷어낸다. 한참을 걷어내도 또 뜬다. 그러면 또 건진다.


어.. 부재료를 빼먹었다.


대략 소 사골 끓일 때와 비슷한 부재료들이 들어간다. 무, 생강, 마늘, 양파 등. 이거 나중에 거르기 귀찮으니까 망에 넣는 게 좋다. 무야 크니까 괜찮지만 나머지는 뭉개지면서 국물을 탁하게 만들 소지가 있는 놈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렇게 넣고 시간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물이 졸아들면 보충해주고, 기름이 뜨면 건져낸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 끓이니, 관절의 연골 부위가 다 떨어져 나온다. 보통은 국물을 맑게 하기 위해 이것들을 다 건져버리는데, 좀 아깝다. 그래서 불을 좀 줄이고,  뼈를 꺼내 붙어 있는 살점들을 다 떼어내면서 연골들도 함께 떼어낸다.


사실 이 부분이 바로 소에서 말하는 도가니인데, 이 도가니도 겨자장 찍어 먹으면 맛있거든. 돼지 도가니도 별 차이가 안 난다. 또  살점 들도 다 떼어내서 모아뒀다가 나중에 국물로 국밥 끓일 때 조금씩 넣어주면 맛있기도 하다.


그렇게 다시 한번 걸러내서 다시 우리기에 돌입한다.


보통 길게 우리는 사람은 24시간 꼬박 우리기도 하고, 짧게 우리는 사람도 10시간 정도는 우린다고 하는데, 밤이 깊어 버렸다. 한 일곱 시간 정도 우렸는데, 가스불을 켜두고 잘 수는 없잖은가. 불이라도 나면 어쩌라고..


그래서 결국 불을 끄고 잠을 잔 뒤, 아침에 다시 우렸다. 이 부분이 좀 맘에 걸리긴 했지만 할 수 없지 뭐. 돼지국밥 해 먹으려다가 집을 태워먹은 사람이 되어 신문에 나기는 싫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다시 우린다. 한 서너 시간 더 우렸다. 여기서 국물을 뽀얗게 만들려면 대여섯 시간 정도 더 우려야 하는데, 난 뭐 뽀얀 국물이 그렇게 좋지도 않고, 또 워낙에 국물의 양에 비해 뼈가 많이 들어간 상태라서 이미 꽤 진하기도 하고 해서 열 시간 좀 넘게 우리는 걸로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국물을 식힌다.


한참을 상온에서 식히면 그렇게 건져냈음에도 불구하고 또 기름이 뜬다. 계속 식히면 위로 떠오른 기름이 식어서 굳으면서 막을 형성한다. 그러면 그 막을 또 건져낸다.


휴..


이제 겨우 국물을 완성했다. 충분히 식은 국물을 7-800 미리 정도로 나누어 비닐봉지에 담아 냉동실에 얼린다. 냉동실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는 시점이다.


뼈는 버리면 되고, 여태껏 사용했던 기름투성이의 도구들을 깨끗하게 손질해서 보관하면 된다. 이거 안 하면 돼지국밥 끓여 먹으려다가 아내에게 살해당한 남편이 되어 신문에 난다.


내용물 챙기기


사태는 수육을 만든다. 국밥 만들 때 어차피 한번 살짝 또 끓이게 되니까, 그냥 먹을 수육보다는 약간 덜 삶는 것이 좋다.


그리고 모아두었던 도가니와 뼈의 살점들도 잘 갈무리 해 둔다.


또, 돼지머리에서 뼈를 발라내고 남은 것을 삶아둔, 돼지머리고기를 좀 구한다. 원하는 사람들은 곱창이나 애기보, 오소리감투 같은 것을 구해와도 좋다. 이런 것들이 모두 다 돼지국밥에 들어가는 재료다. 여기다가 순대를 넣으면 이단이다. 그건 돼지국밥이 아니라 순대국밥이잖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재료. 부추를 준비한다.


부추는 고춧가루, 들깨, 참기름, 젓국 넣고 무침을 만들어서 준비해도 되는데 난 그냥 싱싱한 부추를 썰어서 국밥에 바로 넣는 것을 권한다. 대파도 송송 썰어 통에 좀 담아두고..


품질 좋은 새우젓이 있어야 한다. 난 이게 없어서 마트까지 가서 쪼매난 병에 담긴 것을 사 왔다. 나중에 철이 되면 시장 가서 한통 사다 놔야 할 텐데, 지난해에 사두었던 것이 다 떨어졌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거기에 다데기를 만들어야 한다. 다데기 만드는 법은 대략 알아서 하시길.


고춧가루, 고추장, 마늘 다진 거, 생강 다진 거, 등등등 넣고 잘 섞어서 만들어 둔다.


그리고 밥통에는 밥이 있어야 한다. 명색이 국밥인데 밥이 없으면 안 되잖아.


돼지국밥


준비한 국물을 뚝배기에 3-400미리 정도 부어주고 팔팔 끓인다.


국물이 팔팔 끓을 때, 수육과 머리고기 등 각종 부재료들을 적당량 투입한다. 그러면 국물이 식어서 끓는 게 멈춘다. 잠시 기다리면 다시 끓어오르고, 그때 밥통의 밥을 한 공기 투입한다. 밥이 찬 밥이라면 다시 한번 끓어오르길 기다리는 것이 맞고, 더운밥이라면 바로 불을 꺼도 된다.


여기에 부추, 대파, 그리고 청양고추 잘게 썬 것을 투입한다.


고춧가루를 넣던가 다데기를 넣던가 하고, 들깨가루를 좀 뿌려주고, 후추도 좀 뿌리면 좋고, 마지막으로 새우젓을 입맛에 맞게 적정량을 투입한다. 새우젓이 없다고 소금이나 간장을 넣고 먹지 말자. 맛없다. 돼지국밥에는 무조건 새우젓이다. 이게 아니면 돼지국밥이 아니다.


휴..


이제사 돼지국밥이 완성되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거의 2박 3일은 걸린 것 같다. 아직도 머리고기는 준비가 안 되어서, 호화스럽게 수육만 넣고 먹는다.


써놓고 보니, 만드는 방법을 다 설명했네..

<이것은 밥을 넣지 않고 부재료를 보강한 돼지술국>


<이것은 제대로 된 돼지국밥>


보통은 뚝배기에 담아 먹어야 제맛인데, 집에서 먹을 땐 빨리 식으라고 대접에 담아 먹어도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MSG에 대한 오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