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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04. 2024

은행잎 소리 없이 겹 쌓이고

은행나무에 관한 기억-1


언제부터 있었는지, 수령이 얼마나 됐는지는 모른다.

충청도 고향 마을에는 장정 대여섯 명이 빙 둘러 팔로 싸안을 만큼 우람한 은행나무가 언덕 위에 한 그루 서있었다.

은행나무가 선 언덕보다 더 높은 위치에 널찍하게 당진 성당은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휴전협정으로 겨우 종결된 어정쩡한 상태였던 당시.

거리엔 걸식을 하는 상이군인과 고아들이 떼거리로 다녔다.

이때 은행나무가 선 언덕 아래편에 규모 큰 고아원이 생겨났다.

원조물자로 운영된다는 고아원은 성당 관할로  수녀님이 아이들을 돌보았다.

이가 득시글대던 시절이라 단체로 하얗게 머리에다 DDT를 살포해 그 아이들에게선 약 냄새가 심하게 났다.

그래도 철 모르는 우리는 그 애들이 입은 구제품 꽃무늬 원피스며 구두를 부러워했다.

명절 때나 꽃고무신에 호박단 물색 고운 새 치마저고리를 구경할 수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가을이 오면 주변에 온통 금가루를 흩날리던 은행나무.

우리는 거기서 술래잡기도 하고 은행잎을 던져가며 뛰어놀기도 하는데 고아원 아이들은 누구 하나 은행나무 근처에 얼씬대지 않았다.

그 애들은 고작 고아원 뒤란에 떨어져 내린 은행잎이나 주워서 책갈피에 끼워뒀을까.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천진스러운 동심마저 그렇게 구분 짓게 했는지.

요즘, 고급 아파트 단지에 정책상 끼어놓은 평수 작은 서민 아파트 아이들은 같은 단지 내 애들이라도 서로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다더니.


은행나무에 관한 기억-2


눈부신 신라 금관이 겹쳐지던 은행나무는 아산 맹씨행단에서 만났다.

정승가답지 않게 조촐한 고택에 유독 은행나무만이 독보적 존재로 군림했다.

고불의 높은 얼이 그 나무의 정기에 스민 까닭인가.

유품으로 남겨진 옥피리의 정갈한 가락에 귀 씻은 연유인가.

순후한 산천에서 자유로이 향유해 온 하늘 바람 구름 덕인가.

고흐의 밀밭 같은 광기의 노랑도 아니요, 열정에 들뜬 해바라기의 타는 빛깔도 아니었다.

순수한 노랑, 티 없이 아주 맑은 그 노랑은 차라리 투명했다.

수령 육백 년이나 됐다는 은행나무는 아름다운 색조로 주위를 압도하며 참으로 장관이었다.

위엄 어린 기품과 함께 햇살 비껴 들어 숭고하기까지 하던 그 나무.

나무에 경외심을 느끼기는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고불 맹사성의 고택 앞에 선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바람이 불적마다 우수수 금색 종이를 마구 흩뿌려댔다.

꿈처럼 황홀한 정경이었다.

고택 앞마당까지 하냥 날아든 은행잎은 우산이끼 파랗게 낀 담장가에다 대비도 선명한 점묘화 화폭을 큼직하게 펼쳐놓았다.

그 화폭은 그늘진 곳의 아픔에 귀 기울이며 가난한 이들과 이웃하고자 낮은 곳으로 재림한 고불의 넋인듯싶었다.


은행나무에 관한 기억-3


하논 은행나무의 변모가 궁금했다.

또 하나 이유인즉, 어디서 건 해마다 햇 은행잎을 한 움큼 갖고 와 바구니에 담아놓아 버릇해 왔다.

잠시 들른 하논, 은행잎 색깔이 맑지 않고 푸르뎅뎅하니 칙칙해 오늘은 한참을 골라야 했다.

제주도의 온화한 날씨 때문일까.

이곳 성지에서 본 은행나무는 색채도 우울한 데다 털갈이하는 새처럼 부스스 꺼벙한 모양새였다.

한논본당이 세워진지도 어언 122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라산 남쪽에 설립된 최초의 성당으로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라 일컬어지는 이곳.

젊은 혈기에 의욕이 넘쳤던 사제의 공격적인 교세 확장 의지는 무모함으로 평가되고 있다.

결국 신축 교안(이재수의 난)의 원인이 되어 한논본당은 잿더미가 되고 말았으니까.

새로 부임한 타게 신부가 심었다 해도 수령 물경 120세인데 위용은커녕 초라하다 못해 초췌한 하논 은행나무.

신앙의 이름을 내걸고 종교인의 양심 운운하며 지금도 덥수룩 수염 기른 채 시위 주도하는 이들이 있다.

정치색 짙은 정구현에 분심 들어 성당 외면하는 신자가 그 얼마인지 알기나 하는지?

모름지기 순명 정결 청빈의 서약을 올곧게 지키는 존경받는 성직자가 좀 더 많아지길 고대한다.


은행나무에 관한 기억-4



서귀포성당 맞은편 솔동산을 지나던 중이었다.

느닷없이 눈앞이 환해졌다.

단아한 은행나무 한 그루 금관총 금관처럼  눈부셨다.

이파리들이 금관의 영락되어 산들산들 춤을 췄다.

샛노란 은행잎이 금가루처럼 쏟아져내렸다.

미련 없이 훌훌 지체 떨구는 낙하의 몸짓에 홀려 넋을 놓고 서있었다.

숫제 황홀한 투신이었다.

솔동산에 솔향 대신 노랑나비 군무라니.

12월에 선물처럼 펼쳐지는 황금빛 축제.

감지덕지한 뜻밖의 초대였다.

그날 노란색에 퐁당 빠져버리기로 했다!

샛노랑 빛깔에 취해있다가 치자물을 한번 들여보자 싶었다.

마침 누리끼리해져 안 입는 여름용 잠옷이 생각났다.

오래전 인도인 가게에서 산 흰색 리넨 잠옷이다.

세탁된 옷이나 한번 다시 정련을 해 탈수를 시켰다.

치자 세 개와 양파 겉껍질 한 줌을 큰 냄비에 넣고 센 불에서 중불로 오래 끓였다.

치자만 사용하면 너무 귀여운 노랑이 되지 싶어 약간 묵직한 색을 내려고 양파껍질을 넣었는데 냄비가 마치 김치찌개 분위기. ㅎ

노란 염액이 추출되자 또 다른 냄비에 백반을 적당히 넣어 잘 녹인 다음 끓여줬다.

뜨거운 염액에 천을 넣고 골고루 주물러줘야 하므로 목장갑과 비닐장갑을 이중으로 꼈다.

시금치나물 무치듯 조물조물 해준 다음 30분 정도 푹 잠기는 염액에 담가두었다.  

색상이 곱다 싶어 꼭 짜서 이번엔 백반 끓인 물에 넣어 15분쯤 담가 놓았다.

이 과정을 두 번 되풀이하였다.

물색이 맘에 들게 염색되자 맑은 물에 서너 번 헹궈서 말려주었다.

그늘에서 말려야 한다기에 실내에서 자연건조시켰다.

노란빛이 좀 진하게 나왔지만 계속 세탁을 하다 보면 색이 옅어질 터.

감물을 들이면서 흰색 옷감에 치자물을 들여봐야지 별렀는데 드디어 도전해 봤다.

이만하면 첫 염색치고는 성공작에 속한다.^^

노오라니 떨어진 은행잎을 골라서 주워왔는데, 집안의 해충기피제 역할도 한다고 해 이쁜 청둥호박 옆에 깔아줬다.


뭇 낙엽에 관한  기억-5


만추의 용두산 공원 입구는 서정시였다.

수북 쌓인 채  쓸지 않고 그냥 둔 은행잎.

<낙엽이 있는 거리>로 지정됐기 때문에 은행잎은 금빛 파도 되어 출렁거렸다.

무더기 진 낙엽을 밟는 감촉이 꽤 근사했다,

초겨울비가 한차례 내리고 나니 가로수 잎새들이 나무를 떠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불타오르듯 화려하던 공원의 뭇 나뭇잎들도 죄다 자취를 감췄다.

차가운 비 덕에 비질하며 거리 청소해야 하는 환경미화원의 손길이 한가해졌다.

포도 위를 슬슬 빗질하던 청소부가 갑자기 연못가 조경수 앞에 멈춰 서더니 빗자루를 거꾸로 쳐들었다.

웬일?

누르스름하게 퇴색된 버드나무 잎이 추레해 보인다 싶었는데 그는 빗자루로 탁탁 후려쳐 버드나무 잎을 털어댔다.

일손 번거롭게 하는 낙엽이겠지만 며칠 상관이면 져버릴 텐데 그걸 못 기다리고 모지락스레 떨궈버리다니.

벚꽃이 뜨락에 눈처럼 내린 이른 아침.

말끔하게 비질을 한 뒤 일부러 가지를 흔들어서 몇 잎 꽃 이파리를 띄웠다는 시인의 낭만까지는 사치라 하자.

그러나 최소한 전송의 미학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떠오른다.

바람이 불적마다 낙엽이 하나둘 지고 있다.

병상의 소녀는 창밖을 내다보며 몇 잎 남지 않은 담쟁이 잎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다.

마지막 잎이 지고 나면 자신도 떠나리라는...

북풍 거세게 불고 비가 창문 두드려대는 밤이 지났다.

그러나 까딱 않고 붙어있는 담쟁이 잎 하나.

비바람 속에서 밤새워 잎새 하나를 벽에 그려 넣은 노화가의 마지막 작품, 아니 걸작품이었다.

빗물에 젖은 램프와 사닥다리와 그림물감 그리고 찢긴 낙엽이 끼어있는 빗자루의 차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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