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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11. 2024

하논 분화구 풀잎에 아침 이슬

이른 아침 하논으로 향했다.

추수가 시작됐나 싶어 하루걸이로 하논을 드나든다.


어느 결에 노랗게 익어가는 감귤 탱탱하다.

하논 초입에 들어서자 벌써 구수하게 익어가는 벼 내음이 느껴진다.

농수로 건너 농가에서 키우는 닭과 거위가 목청 가다듬어 아침을 노래한다.


닭은 꼬끼오! 거위는 꿱꿱! 하논의 아침 풍경은 정중동.

한라산은 구름에 가려 자취 묘묘하나 남쪽 하늘은 번하게 트여 푸르다.


논두렁 잡초에 채 마르지 않은 이슬.


지그시 고개 숙인 벼 이삭과 잎새마다에도 맺힌 이슬 투명히 맑다.


농수로 가에 핀 여뀌꽃과 방동사니며 개모시풀 줄기며 잎이 그새 후줄근해졌다.


이쪽은 아직 여전히 풍요로운 전원 풍경을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하논성당 옛터 가는 숲길 터널 돌아 나오자 갑자기 액자 안의 그림이 바뀐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누런 나락이 묵직하게 출렁대고 있었는데 오늘 가보니 일찍 심은 논은 추수가 다 끝났다.


벼를 베고 탈곡까지 해주는 콤바인이 지나면 논바닥에 누여지는 볏짚 가지런하다.


나락을 영글게 하려고 논물을 빼내 메마른 논고랑에 나뒹구는 우렁이.


하나는 껍질뿐이고 하나는 속이 들어있어서 농수로에다 옮겨줬다.


농수로 잡풀에 낳아놓은 연분홍 우렁이알은 햇볕에 의해 자연 부화돼 한살이가 시작됐고.

떨어진 벼 이삭을 쪼으느라 논바닥에는 참새, 까치며 비둘기까지 떼거리로 몰렸다.

하논 추수 소식을 용케도 전해 듣고 모여든 새떼.

잘 차려진 맛있는 잔칫상 차지하고 신이 났어도 녀석들 경계심은 여전하다.

살금살금 다가갔지만 어느새 포르르 한꺼번에 날아가 버린다.

가을걷이 끝나 하논이 완전히 비더라도 깔아놓은 볏짚에는 철새들 무리 지어 날아와 추운 계절을 깃들어 살 것이다.

명년 봄 빈 논에 함빡 자운영 꽃 피어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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