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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15. 2024

복근이 생겼다

절운동

새하얀 사기대접이 장독대에 올려져 있다. 꼭두새벽에 길어온 정한 우물물이 담긴 사기그릇에는 청색으로 찍힌 壽 혹은 福 자 선명했다. 정화수 앞에서 비손 하는 엄마의 뒷모습이 또렷하게 각인돼 있는 내 기억 구조. 쪽 찐 할머니 모습에서 정화수를 떠올릴 수가 없는 건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이다. 시어머니로부터 은연중에 전수받은 습속일까. 미신이라커니 기복신앙이라커니 해대도 난 예나이제나 별로 개의치 않는다. 새벽기운이라는 신성성에 더해 오롯한 마음으로 치성드리는 엄마의 모습은 이젠 신앙이기에.


마을 앞에 있는 깊은 샘은 마을 전체가 쓰는 공동우물이었다. 엄마는 새벽잠에서 깨어나 누구보다 일찍 샘물을 길어왔을 것이다.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물, 삿된 것을 씻어주는 정화력이 있는 물이라 동서양을 불문하고 깨끗한 물은 어디서나 부정과 재앙을 물리치는 벽사의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정화의 힘이 있는 물로 손을 씻거나 특별기도를 바치목욕재계부터 한다. 기독교에서는 물로 세례를 주고 특히 성당에서는 사제가 축성한 holy water로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변환시킨다. 카미노 마무리로 루르드에 들러서는 선물용으로 기적수를 여러 배낭에 넣어 왔다.


올해는 벽두부터 날씨가 자주 궂었다. 자동으로 외부활동이 제약을 받았다. 시도 때도 없이 즐기는 단 하나의 취미이자 도락인 걷기 놀이 역시 제동이 걸렸다. 몸이 찌뿌둥한 데다 다리 근육도 약화되는 조짐이 보였다. 일부러 제주시에 있는 체력인증센터까지 찾아가서 체력점검을 받아보았다. 결과는 C등급, 형편없이 낮았다. 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는 줄창 근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루는 피트니스클럽에 들어가 본격상담도 해봤다. PT를 통해 개인운동지도를 받으라는데 망설여졌다. 자신없다는 내 얘기를 듣더니 딸내미가 지나가는 말로 그랬다. 그럼 집에서 절운동이라도 해보던가...

내가 절운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정월대보름날부터다. 둥두렷 맑은 달이 떠오르자 불현듯 어린 시절처럼 달을 향해 소원을 빌어보고 싶었다. 자연스레 두 손이 모아졌고 엎드려 절을 바쳤다. 세 번 절을 했는데 성에 차지 않았다. 창천 높직이서 은빛을 발하는 보름달은 하냥 유현하기만 헸다. 분위기에 취해 그날 오랜만에 백팔배를 올렸다. 절에 열심 내던 삼십 대 때부터 아들 대입시가 있던 해엔 밤샘하며 천배도 바쳤던 터라 전혀 어려운 줄 몰랐다. 그렇게 대보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절운동을 해왔다. 손님이 오면 뒷방에서 살짝 했다. 몸이 가벼워 고요히 엎드렸다가 일어날 때는 두 다리의 반동으로 사뿐히 일어나기에 얼마든지 할만했다.


꽃피는 삼월도 내내 날씨는 우중충했다. 고사리 장마가 든 사월은 영락없이 긴 장마가 이어졌다. 청명해야 할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이 무색하게 거의 날마다 빗줄기 오락가락했다. 유월 장마철, 당연히 화창한 날씨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칠월도 쨍한 햇빛은 야박할 정도로 인색했다. 델듯한 폭염 이글거리는 팔월엔 제주에 유례없는 70여 일의 열대야까지 이어졌다. 입추가 애진작에 지나고 처서 백로 추분이 든 구월까지도 혹서기는 끝나지 않아 에어컨이 혹사를 당해야 했다. 절기도 소용없더니 한로가 든 시월 들며 비로소 완연히 달라져 가는 날씨. 기상상태로 인해 야외활동이 어려워 거의 방콕 하며 지내야 했던 그동안과 달리 기온 선선해지니 외출이 잦아졌다. 성산으로 영실로 돌아다니느라 아무리 피곤해도 절운동만은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마치 국가대표선수 훈련하듯이.


요셉은 성당 다니는 사람이 무슨 백팔배냐고 마땅찮이 여겼다. 또 딸 핑계를 댔다. 딸내미가 절운동해보라고 권했다며, 백팔참회기도를 바치는 불자가 아니라 운동으로서의 절을 한다니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첨엔 묵주를 돌리며 숫자를 헤아렸는데 이젠 내 속도에 맞는 명상요가 절운동 앱을 열어놓고 시작한다. 특별히 염원을 외우거나 별도의 기도문을 바치는 것도 아니다. 수련이나 명상법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마음에 아무것도 담아두지 않고 그저 텅 비워둔 채라 무념무상, 합장 자세로 허리를 낮게 굽히고 이마를 바닥에 깊이 숙인다. 그러면서 동시에 천천히 단전호흡을 병행한다. 대체로 시간은 20분 채 안 걸린다. 하루 몇 시간씩 할애하던 걷기 대신 이십 분 만에 하루치 운동 깔끔하게 종료. 내가 유일하게 복용하는 약은 골다공증 약, 따라서 골절에 취약하므로 체중을 올려야 한다. 근육도 늘려야 한다. 체중은 아무리 노력해도 요지부동, 그러니 근육량이라도 늘려나가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지난 유월 무렵, 갈비뼈 아래가 약간 부둔했다. 전에 없던 증상이라 은근 놀라 부근 내부 장기를 짚어보니 간, 위, 비장 등이 자리했다. 특별 소견은 없었으나 겁 많은 사람이라 아들에게도 의논하고 딸에게도 물어봤다. 정 불편하시면 사진 한번 찍어보시지요. 그 정도는 아니라며 더 이상 거론치 않았다. 그 후에 느꼈지만 근육이 강화되며 주변부 복벽을 압박한 게 이유였지 싶다. 칠월부터 무더위가 기승부려 자주 샤워를 하게 됐다. 어느 땐 하루에 두세 번도 더 찬물을  뒤집어썼다. 그러다 거울에 비친 복부에 난생처음 보는 가로줄이 선명하게 나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것도 한 줄이 아닌 두 줄. 하나만 더 생기면 王자가 될 판이다. 골체미 드러나는 빈약한 체형인데 완연 도드라진 복근이 샌드백처럼 단단하다. 이러다 노인네 주책스레 크롭탑 입을라! ㅎ


여름 어느 날 딸내미와 통화 중 어메이징 뉴스라며 신기방기한 복근 얘길 했다. 절운동이 코어 근육은 물론 허리와 팔다리 근육을 단련시키는 전신운동 맞다면서 꾸준히 해봐, 무릎만 괜찮다면. 딸내미는 적극 성원을 보탰다. 며칠 뒤 아들에게도 절운동하며 어떤 효과도 기대 한 바 아닌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절운동을 계속했더니 의외의 보너스로 복근이 다 생겼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겠어요, 아들 역시 단박 수긍부터 했다. 저도 점심시간 후에 잠시 낮잠을 자는데 앞으론 절운동을 해볼까 싶네요. 이런~이런~ 아들은 대체의학을 별로 신뢰치 않는다. 동생 전문 분야인 한의학조차 보완제로 보는 신경외과의다. 엄마가 직접 체험을 통해 얻은 결과치라서인지 미더워하는 눈치다. 허리 무릎 등 관절에 문제가 없다면 누구라도 한평 방에서도 매트 한 장으로 가능한 최고의 전신운동, 해싸며 나 이러다가 절운동 전도사 되겠는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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