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지게 즐긴 시월 놀이판

시월이 열리면 상가부터 등황색으로 치장한 채 핼러윈 시즌을 손짓하고 이어서 집집마다 뜰 앞이 부산해진다. 비교적 간소하고 얌전한 축에 속하는 우리 집 현관 앞 핼러윈 장식이다. 몇 년째 잘 갈무려 뒀다 쓰는 핼러윈 소품들을 꺼내 시월이면 한 달 내내 이런 소꿉질 놀이 차지게 즐긴 체리힐의 가을. 

아기자기한 핼러윈 시즌이 오면 소품들 요리조리 위치 변화로 분위기 바꿔주는 재미 쏠쏠했다. 국화와 호박만 해마다 새로 살 뿐 기타 핼러윈 장식은 위치만 바꿔주면 그럴싸했다. 뒤편 호박은 작은 전구가 불을 밝히는 공산품이고 앞쪽만 햇호박이며 국화는 향이 강한 샛노랑이나 등황 색깔을 선택한다. 빗자루를 탄 마귀할멈은 현관 옆 호랑가시나무에 매달려 흔들흔들 그네를 타고. 핼러윈 노리개 앞뜰에 늘어놓고 이번엔 뒤란 송판 펜스에서 시래기 말려가며 볕바라기 중. 가을이 오면 한인 농장에 가서 무청을 몇 박스 사다가  펜스에 널어놓고 겨울나기 준비를 했다.

이맘때면 블로그마다 시월 단풍빛으로 화려하게 물들여진다. 캐나다에서 시작된 단풍 소식이 로키 산맥을 타고 내려와 콜로라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가 애팔래치아 산맥 쪽으로 번져가며 환상적인 동부의 가을을 연출시키곤 했다.  

여기서는 굳이 단풍맞이 가을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었다. 가든 스테이트로 불리는 별칭처럼 온데 사방이 울창한 숲이라 가을이면 집에 들앉아서도 단풍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언덕 하나 없는 기름진 평지에 빽빽한 숲이 끝 모르게 펼쳐져 잎잎이 눈부신 봄의 신록, 여름의 웅숭깊은 녹음, 가을은 아름드리 활엽수마다 색색으로 단풍 물들던 뉴저지.

제일 먼저 낙엽 져 내리는 건 뒤란의 뽕나무 눗누런 잎새였다. 반면 뒤꼍에 우람하게 서있는 또 한그루 나무, 두 아름이나 되는 메이플 나무는 아직 청청하다. 그래도 더러 낙엽 져 날리는 손바닥 닮은 잎사귀 다 떨어지면 뒤란 잔디밭에 갈색 낙엽이 수북 쌓이고 풀장은 그물망으로 낙엽을 짬짬이 걷어줘야 했다. 앞마당 창가에 그늘 드리우는 체리나무도 아직은 여전 시퍼렇다. 불그레 단풍 들어 낙엽이 지려면 한참 있어야 한다.

헌데 문제는 마당 한편에 그 역시 두 아름이나 되는 귀골타입의 늘씬하게 솟은 먹통 호두나무다. 수형도 멋지고 한여름 그늘도 짙으나 그런만치 낙엽이 장난 아니다. 더구나 잎자루마다에 다섯 장이나 되는 너른 잎을 달았으니 바람 한자락만 스쳐도 우수수~~~  이건 숫제 소낙비로 내린다. 도로변에 적당한 간격으로 줄지어 서있는 노거수 떡갈나무는 또 어떻고.

다람쥐 놀이터인 이 도토리나무는 톡! 톡톡!! 차 지붕에 알맹이를 떨구면서 낙엽 또한 사정없이 휘날려댄다. 길가에 수북수북 쌓여있다가 바람 따라 휘날리면서 마구 뜰을 어지럽히는 낙엽들. 이제 겨우 7~80%쯤 단풍이 들었으니 낙엽은 시작에 불과한데 본격적으로 낙엽 지는 11월엔 그래서 타운십 불도저가 동원되어 낙엽을 치우는 울 동네다. 이처럼 가을 깊어갈수록 단풍잎 우수수 뭉탱이로 쏟아져 내리니 일과처럼 조석으로 낙엽을 쓸어야 했다.

빗자루로는 어림도 없어 갈퀴질에다 blower가 동원되지 않고서는 치울 재간이 없을 정도로 되쌓이던 낙엽들. 바람 한자락이 휘몰고 지나가면 거목 가지를 떠나 허공 선회하던 단풍잎은 낙엽 되어 죄다 땅에 눕는다. 날이면 날마다 앞뒤 뜨락의 나무들이며 도로변 가로수까지 가세해 어지러이 떨어져 쌓이는 잎새들이 성가실 지경이었다. 비라도 내리고 난 다음엔 바닥에 딱 달라붙어버리는 통에 블로워도 먹혀들지 않고 갈퀴질 하기 더 상그러웠다.

낙엽의 낭만은 사라지고.... 하루 이틀도 아닌 가으내 그건 진짜 재미도 장난도 아닌 아예 노동 수준이었다. 낙엽을 쓸면서~ 운운하며 아취 넘치는 호사 취미 정도로 여겼다간 오산,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을 정도인 낙엽. 그저 어서 빨리 낙엽이 다 져버리기만을 고대할 만큼 거의 매일매일 낙엽과의 전쟁을 치르던 만추였다. 오죽하면 하도 갈퀴질을 해싸니, J블로그 아이디였던 촌장 팔뚝 이리 굵다랄 거라 여긴 분까지 생기랴. 그 이웃님이 알통 박인 우람한 팔뚝 삽화를 다 블로그에 올렸다.ㅎ

정신 수란스럽게 날려대면 갈퀴질 해도 소용없건만 나는 또다시 뜰로 나선다. 오래된 습관처럼. 하나마나 금방 어지럽혀지니 눈 딱 감고 지나가자고 때로는 제법 다짐도 했다. 그러나 눈에 거슬려서 안 되겠다. 다시 득득~ 긁어대고 웨에엥~~ 돌려대고. 성격이 문제다. 내 신상 내가 볶는다. 벽공에 휘날리는 낙엽이야말로 싯적이라구? 시는 무슨 얼어 죽을... 쳇!

사실 낭만이면 낭만이지 지저분할 것까지야 없는 낙엽이건만 쌓여있는 꼴을 그대로 보아 넘길 수가 없다. 그러니 살 붙고 체중 늘 겨를이 있겠나, 안됐다, 참말로! 다음번 이사 갈 집 조건 꼽기 첫째는 낙엽 치울 걱정 없는 집. 그래서 사막으로 가기로 작정했는지도. 희뿌옇게 밝아오는 여명 속에서 갈퀴질에 여념이 없는 마당쇠.  마당쇠의 신실한 도우미 blower는 너무 고마워  사진까지 담아뒀다.

쓸고 또 쓸고... 긁고 또 긁고 강박적으로 낙엽과 전쟁을 치르는 자신이 병적이다 싶기도 하다만. 해서 한이틀 자제한 채 손 맺고 쉬는 중인데 하필이면 집을 보러 온다고, 당연 앞뒤 돌아다니며 집단장 겸해 청소부터 해야지 우짤끼고! 그래서 또 득득득~ 낙엽 긁으며 취미생활 중.

이듬해 눈 소복 쌓인 이월에 서부로 이사 오기 전 뉴저지 체리힐 웨더 베인 집에서의 마지막 화려한 가을을 누렸다. 하얀 십자가 같은 리얼터 안내 사인이 입구에 서있으며, 길가 떡갈나무 가로수가 앞뜰 가득 낙엽을 떨구어 놓았는데 볕 좋은 창가라서 체리나무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다. 철 지난 국화분이 현관 앞에 앉아있고 문에 걸린 리스는 댕스기빙 리스, 핼러윈 장식을 거둬들인 11월 어느 날 집이 계약되며 우리는 동에서 서로 대륙횡단 이삿짐을 꾸렸다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