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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19. 2024

목장길 따라 이달봉으로

가을 억새 명소는 역시 새별오름이다.

새별오름에 가서는 억새 은빛 파도 보고 나면 끝이다.

볼장 다 봤다고 여겨 반대편 언덕길 휘리릭 내려온다.

산정에서 애월 앞바다도 조망해 봤고 한라산 이마도 건너다봤으니 아암~ 이만하면 족하고말고!

많은 오름이 밀집해 있는 서부 중산간 오름 지대 내려다보며 연타로 감탄사도 발해봤고...

그러나 바로 코앞에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또렷한 삼각봉이며 경주 신라고분 닮은 봉우리 궁금하지 않은가?

쓸데없는 잡사, 이를테면 일상적 경제생활과 동떨어진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일이 궁금한 건 나뿐일까.

시선이 절로 가닿는 위치라서 궁금했는데, 잠시 다녀가는 여행객이라면 모를까 섬에 머무는 입장에서는 가고 싶으면 가면 된다.

아무튼, 새별오름 산정에서 내려다본 이달봉과 이달이 촛대봉을 기어코 찾게 됐다.





새별오름 정상 남쪽 봉우리에서 북봉을 향해 길 아닌 길을 억새 덤불 헤치고 나가면 끄트머리 짬에  동쪽 절벽이 나선다.

이쯤에서 너부죽 원만한 말굽형 분화구가 내려다보인다.

초목에 내린 이슬로 바짓단은 물론 무릎 짬까지 후줄근히 젖었다.

전망 아주 좋은 명당자리에 외딴 바다에 뜬 고도처럼 외로운 한 기의 무덤이 있는데 아들을 두지 못한 할머니의 유택이라 한다.

그래도 살아생전 형편 넉넉했던지 산담도 견실하고 망주석 혼유석 등 묘역은 잘 가꿔져 있었다.

여기서는 앞에서 보면 맏딸처럼 품새 수더분하고 편안한 산세였던 새별오름이 영 낯설어진다.  

분화구로 내려가는 길은 수풀 키대로 우거져 미답의 처녀지를 개척해 나가듯 치고 나가야 한다.

그만큼 오가는 인적이 드물다는 반증이다.

내왕자가 별로 없어서 일단 길이 트여있지 않은 터라 든든한 산악인이 앞장서지 않는다면 감히 엄두내기 힘든 코스다.

새별오름 정도야~ 하고 행장 가벼이 나섰는데 여기야말로 스틱이 꼭 필요한 곳이었다.

휘휘한 산길 여기저기 어쩐 노릇인지 이장터가 자주 보였다.

이장을 한 다음 뒤처리로 봉분 없앤 자리를 다듬어 놓으면 부정 타는지 파헤쳐진 그대로 남아 흉물스러웠다.

물론 세월 따라 비 내리고 바람 불면 자연스레 절로 절로 아무 표 없이 예사 산야로 돌아가겠지만.

이달봉으로 가는 길, 가느다란 끈처럼 산자락 휘둘러가며 이어진 길을 억새 물결 따라 내처 걸었다.


가을 억새와 구절초와 미역취와 잘 어울리는 오이풀꽃뿐인가.


촛대봉 언저리에 숫제 지천 이룬  고사리밭.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산 71-1번지에 자리한 이달봉(二達峰).

이달오름이라고도 하고 이달이악이라고도 부른다.

봉긋하게 솟은 정상부의 모습이 촛대와 비슷해서 촛대봉이 맞을 법 하건만 이달봉이다.

남매처럼 한 뿌리로 이어진 같은 줄기이듯 연결된 두 봉우리가 눈에 띄는데 왼쪽이 이달봉이고 오른쪽이 이달이 촛대봉이다.

실제로도 이달봉과 촛대봉은 쌍둥이 화산체로 정다운 남매 같아 보인다.

이달의 '달' 어원은 높다 또는 산이란 의미로 곧 두 개의 산이란 말이 되겠다.

표고는 488.7m이며 비고는 119m인 원추형 오름이라 비교적 산뜻하게 오를만하다.

입구 통로는 마소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ㄹ 자형 철제 방책이 기다리는데 여기를 지나자마자 말똥이 흔히 목격됐다.   

산비알로 접어들면 오래전에 조성된 길인 듯 폐타이어 조각을 깐 등산로가 이어졌다.

오르는 길에는 솔잎 두터이 깔려있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걸어야 했다.

산불감시초소 옆에 누워있는 이달봉 정상 표지석을 보나 따나 찾는 사람 별로 없는 산임이 맞겠다.

하산길도 역시 솔잎이 많아 스틱의 필요성을 거듭 느꼈다.

오름의 경사면에는 소나무와 삼나무가 무성하고 기슭 대부분은 억새와 고사리를 비롯 잡초들 어우러진 풀밭.

꿀풀이 진보라 꽃 자욱하게 깔려있었고 오이풀도 독특한 진자줏빛 꽃을 물고 있었다.

고사리는 숫제 밭을 이뤘다.

평원에 이어 연달아 촛대봉이 가르마 같은 길을 열어줬다.

이달이 촛대봉은 각각 456m와 86m라니 구릉 정도 수준이라 가뿐하게 넘었다.

방목하는 말들이 산기슭 여기저기서 풀을 뜯고 있었다.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서인지 통통한 말 잔등마다 윤기가 흘렀으며 말 갈기도 매초롬했다.

목초지가 드넓게 펼쳐진 이시돌목장이 저만치 보였다.

인근 땅은 거의 전부 이시돌 소유지라고 하는데 마시멜로 같은 곤포 사일리지가 쌓여있기도 했다.

결국 이달오름은 당연히 말 구유이자 놀이터이자 운동장이라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말들이 나타날밖에.

이달봉 촛대봉을 올랐다가 둘레길 따라 다시 돌아 나와 새별오름 주자장으로 회귀하는 데는 두 시간도 채 안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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