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Apr 01. 2024

물꽃, 전설이 된 까닭은?

다큐

생래적으로 할 줄 아는 운동이라곤 걷기뿐이다.

게다가 운전대만 잡으면 어깨가 경직돼 운전도 못하는 천상 미개인이다.

그래서 택한 곳이다.

한라산 품 안에 오름 숱하고 섬을 빙 둘러 올레길이 있어 걷기 최적화된 곳이 제주도이기에.

이민살이 이십여 성상, 이미 노매드의 이력도 붙었는데 타고난 역마살이 또 도졌던가.

2021년 가을, 아는 이 하나 없는 생판 낯선 서귀포에 들어왔다.

검색 끝에 무조건 교통 좋고 가로등 밝은 서귀포 중심부에 자리를 잡았다.

만 이태를 살며 하늘만 번 하면 제주 곳곳을 종횡무진 쏘다녔다.

동으로 서로 혹은 한라산을 좌우로 넘나들며 사통팔달 들쑤시고 다니니 신명 한번 제대로 지폈다.

이게 바로 참다운 실존인 거야, 진짜 사는 맛이 났다.

지화자 좋구나 좋아! 날마다 흥이 올랐다.

하루하루 재미가 진진했다.

매 순간 행복의 연속이었다.

다이돌핀이 팍팍 샘솟았다.

그날 역시 어깨에 날개라도 돋은 양 사뿐히 이십여 킬로 넘게 걸었다.

성산읍에서 환해장성로를 따라 바다 끼고 걸었다.

신양리를 거쳐 온평리 신산리 삼달리 신천리...

다음 날 연달아 표선에서 남원 태흥리에 이르렀다.

짙푸른 바닷가에서 절로 탄식이 터졌다.

겉보기엔 멀쩡하나 속 골병 깊이 든 바닷속 형편을 듣고 나서다.


24시간  쏟아내는 양식장 하수로 바다가 오염돼 백화현상이 심화돼 간다는데.




영화는 서귀포 삼달리 앞바다가 무대다.

바다를 생존의 터로 삼은 제주 해녀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아흔이 넘은 할머니 현순직 상군 해녀와 서른몇에 해녀가 된 막내 해녀 채지애가 주인공이다.

삼달리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현역 해녀인 두 사람도 제주 사람이고 감독 고희영도 제주 출신이다.

제주에서 제주사람들이 만든 영화를 특별 상영하던 날.

슈퍼 블루문이 뜬 특별한 밤이었다.

제주도의 최고령 해녀인 현할머니에게는 혼자만 아는 비경의 '들물여'가 있다.

여든일곱 해 물질을 하며 숨겨둔 바닷속 '비밀 곳간'인 셈이다.

전복과 소라가 가득 널린 풍요의 바다로, 아름다운 물꽃이 피어나는 환상적인 장소다.

하지만 워낙 수심이 깊은 데다 조류가 세서 웬만한 상군 해녀들도 접근하기 어렵다.

이제 그녀는 나이가 들어 힘이 부쳐서도 더는 그곳에 가지 못한다.

가 본들 그 바다도 양식장에서 밤낮없이 흘려보내는 오폐수로 이미 사막화가 돼버렸을 게다.

감태나 파래, 미역 다시마 같은 갈조류가 뿌리내릴 수 없어 이를 먹이로 살아가는  어패류들도 자라지 못한다.

진작부터 여러 오염원에 의해 청정바다는 황폐하기 그지없는 바다로 변해갔다.

용궁이 있다는 신비로운 해저는 이미 깊이 병들어 백화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황량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은퇴 후에도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예전 그 들물여를 그리워한다.

오랜 날 깊은숨 참으며 헤엄쳐 드나들던  바위 벽에 함빡 피어있던 물꽃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사는 현 할머니는 여덟 살부터 물질을 해왔다.

구십을 훌쩍 넘겼어도 현역 상군해녀이던 현 할머니.

어느 날 마을에 막내 해녀 채지애가 들어오자 두 사람은 물질을 하며 살뜰한 정을 쌓아간다.

영화를 찍는 6년 사이에도 바다는 점점 더 빠르게 사막화되어 갔다.

안타까운 그 사실을 감독은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이었으리라.

나아가 가뭇없이 소멸돼 가는 것들에게 바치는 조사이기도 하리라.

더는 버틸 여력이 없다고 묵언으로 호소하는 제주 바다.

광부들은 작업 전 미리 유독가스에 민감한 카나리아를 탄광 안으로 들여보낸다고 한다.

전신으로 바닷속 생태계를 낱낱이 체득한 해녀들이야 말로 해저로 날린 카나리아라고 감독은 말했다.

바다가 죽어간다고, 회복불가 상태로 바다가 위험지경에 빠졌다고 대신 외쳐대는.

고희영 감독은 첫 장편 영화 <물숨>으로 전주국제영화제 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과 심사위원특별언급상 등 2관왕을 수상했다.

이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제33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인 ‘물꽃의 전설’을 찍었다.

다큐의 큰 축인, 머잖아 백수에 이른 연세에도 정정하신 현 할머니.

허리 반듯하고 총기 또렷한 그분이 기억하는 물꽃은 분홍색 산호인 ‘밤수지맨드라미’로 멸종위기에 처한 해양보호생물이라고 한다.

이를 찍은 수중촬영도 눈여겨 볼만하다.


진분홍 고운 물꽃은 그렇게 전설이 돼버리고 말았다.

작가의 이전글 아아, 사람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