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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Nov 23. 2024

아, 娑婆여!

이른 아침 텃밭에 나갔다가 된서리 하얗게 덮어쓴 채소 잎들을 보았습니다.

잎사귀가 얼어버린 듯한 이런 상태는 처음 대하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늘상 해가 올라온 한참 뒤에나 뒤란을 찾았으니 얘네들이 이런 고통을 말없이 감내한 걸 알 턱이 없었지요.

만날 때마다 얘들은 언제나 아무 일 없었던 듯 멀쩡하니 지극히 태연한 얼굴이었으니까요.

밤마다 내리는 찬서리 꼼짝없이 받아내며 죽을 듯 추웠을 푸성귀들.

실내에서 히터를 높이고도 서늘하다 한 것이 미안쩍었습니다.

햇살이 비치는 쪽은 어느새 본연의 잎사귀 색깔을 되찾았으나 그늘진 곳은 이렇듯 아직 얼어있었습니다.

잠시 후 햇볕이 내리면 언 몸이 녹겠지만 날마다 밤샘 고행을 한 그들이 안쓰럽고 짠하기만 했습니다.

어리고 여린 식물이 참고 견뎌야 하는 생의 무게가 연민스럽다 못해 처연했습니다.

유정 무정 모든 존재가 다 아릿하니 아프게 다가오며 숙연해졌습니다.

 아, 사바 세상....


목숨 있는 모두들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하는 고뇌 가득 찬 이 세상은 그래서 고해.

힘들거나 아프지 않고 견뎌낼 상처도 시련도 없는 그런 사람, 아무라도 누구 없습니까?

참을 ‘忍’은 ‘칼날 인(刃)’을 가슴인 ‘마음 심(心)’ 위에 올려놓은 한자.

그러니 더러 제 가슴도 베일 때가 있겠습니다.

마무리는 천양희 시인의 시로 대신합니다.



세상의 행동 중에 참는 게 제일이라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든 참기로 했지요

날마다 참으면서 일만 하고 살았지요

참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

그러다가 문득 길가의 무명초들을 힐끗 보았지요

발밑에 밟히고 바람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이 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참으면서 사는 일이었지요

그때서야 힘든 것이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

시 <참는다는 것>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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