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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Nov 26. 2024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밤새 늦가을비가 보슬거린다. 아침이 되자 비는 조용히 그친다. 신통할 정도로 기특한 캘리포니아 날씨다.

간밤엔 달빛도 비치더니만 한밤중 언제부터인지 비가 내렸는데 아침이 되면서 비는 슬그머니 잦아들었다.

기분 좋게 피부에 와닿는 찹찹한 습기가 고맙기만 한 데다 바람결까지 아주 부드럽다. 걷기 딱 좋다.

월요일부터 가을학기가 시작되었다. 한밤 빗소리를 들으면 내일 아침 학교를 갈 수 있겠나 싶어 진다.

늦장을 부리며 슬슬 일어나 커튼을 열면 창밖은 이미 훤하게 들어있다.

푸른 하늘을 보자 새 기운이 솟으며 큰 기지개 한 번에 어깨가 펴진다.

준비를 하고 여덟 시 집을 나선다.

하얗게 씻어 뽀송뽀송 말려둔 운동화를 꺼내 신으니 마음까지 청쾌해진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볍게 걸음을 떼어놓는다.

점점 발자국에 탄력이 붙는다. 어깨너비 보폭을 유지하며 허리 바로 펴고 팔을 자연스럽게 흔들면서 걸어간다. 신명이 오른다.

학교까지는 30분 거리다. 하루에 가장 적합한 양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게 되는 이 특혜를 누리려 열심히 다니는 학교다.

정신 맑은 아침 시간에는 항상 묵주기도를 바친다. 그 시간이 30분 가까이 소요되니 안성맞춤으로 맞아떨어진다.

기도를 마치면 그날의 숙제 하나는 완결 지은 셈. 가뿐하다. 감사 기도가 후렴처럼 따라 나온다.

건강 허락해 주시고 이 길을 매일 걷도록 이끌어주신 하늘에 합장배례하게 된다.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던가. 학교 덕에 규칙적으로 운동 시간도 갖게 되고 정시에 기도도 바치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다.

이에 무엇을 더 바라랴.

맑은 대기를 폐부 깊숙이 호흡하며 삽상히 스치는 적당한 바람결 음미하노라면 생의 찬가가 절로 읊조려진다. 좋다, 너무 좋다.

빗물 흠뻑 빨아들인 잔디 빛은 한결 윤기로와졌다. 눈에 잘 띄지 않던 지렁이도 흙에서 나와 기어 다닌다. 그조차 반갑다.

텃밭 채소들은 두 손들어 환호, 잎새마다 보기 좋게 부풀어간다. 푸르게 성장할 채비를 하느라 정중동.

이제 곧 칩거의 겨울이 삼가는 듯 조신한 걸음으로 곁에 다가설 것이다. 이어서 서두름 없이 그러나 이윽고 봄은 오려니.


요즈음 날씨는 걷기 좋은 최상의 조건들을 두루 갖췄다. 우선 지나치게 춥도 덥도 않다.

태양은 너무 약하지도 강렬하지도 않은 온화한 빛이다. 바람은 칼바람이나 된바람이 아닌 명주 피륙 남실거리는 실바람이다.

건너편 산자락에는 안개도 감겼다. 건조한 데저트 지역인데 잦은 비 덕에 알맞게 물기를 머금어 습습해진 대기.


어느 집 뜨락 레몬트리 열매 흐드러져 그 무게로 가지 축  늘어졌다. 새콤한 향이 사방에 스며드는 듯.

귀갓길, 멋없는 도로변을 걸어가지만 머릿속에는 언제가 가봤던 노고단 운무가 스쳐 지난다.

펜실베이니아 호숫가가 어른거리고 운주사 이끼 낀 산길도 떠오른다.

그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면 풀냄새 느껴지고 멧새 소리 솔바람 소리도 들린다.

어쩌면 보잘것없이 소소한 일들이지만 그 하루하루가 엮여 만들어 낸 삶.

세포 낱낱에 채워지는 생동감으로 스스로 충만한 기쁨을 느낀다면 그게 곧 행복.

학교를 오가며 삼십 분 거리를 걷노라면 윤기로운 생명력이 샘솟는 기분이 항상 든다.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는 행보(行補)가 낫다.’ 란 말이 괜히 생겼겠는가.

걷기를 하노라면 2백 개 넘는 뼈와 6백 개 이상의 근육과 장기가 활발히 활동하게 된다.

따라서 허리와 다리 근력을 강화시켜 준다.

걷기 운동의 가장 큰 장점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으며, 운동 장소나 장비가 별도로 필요치 않다는 점이다.

미국립 노화연구소(NIA)에서는 걷기야말로 최상의 노화방지제라 했다.

최근의 의학 연구 보고서를 보면 치매 예방에 가장 좋은 것 역시 걷기다.

꾸준히 걷기를 하면 뇌 혈류를 개선해 주고 특히 기억 중추인 해마를 활성화시켜 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걷는 동안 사색이 절로 깊어지고 글의 맥이 가닥 잡히기도 한다.

또한 걸으면 혈액순환이 좋아져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예방할 수 있으며 각종 성인병과 우울증, 골다공증을 막는 효과를 본다.

걷기가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고 심폐기능과 근지구력 등 체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뿐 아니라 만사 자신감이 생겨 긍정적 사고를 하게 된다. 걸을 때 의식적으로 가끔씩 복식호흡을 해 주면 금상첨화.

마사이족의 건강 비결은 그들이 먼 거리를 이동하며 생활하는데 따른 걷기에 있다.

문명의 이기를 외면하고 18세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아미시 공동체 사람들은 다 같이 농장 일을 하며 자급자족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매일 밭에 나가 일을 하느라 미국인 평균보다 여섯 배나 더 많이 걷는다.

아미시 사람들은 심장병과 치매 발생률이 현저히 낮고 만일 생기더라도 늦은 나이에 온다는 것.

학자들은 그 이유를 엄청난 양의 걷기로 꼽는다.



건강하게 장수하길 원한다면 부지런히 걷되 주저 없이 빛나는 태양을 벗 삼아야 할 일이다.

한국인들의 이상한 풍속도 중 하나가 야외에 운동하러 나오면 일단 선크림은 기본이다.

챙 넓은 모자에 마스크에 토시까지 착용, 완전무결하게 몸을 감싼다.

강한 자외선이 피부 노화의 주범인 데다 피부암을 유발한다는 데 겁을 먹어서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진은 암을 예방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햇볕 쬐기'를 권한다.

우리 몸이 햇빛에 노출되면 비타민 D가 피부를 통해 체내에 합성되며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 준다는 건 다 아는 사실.

비타민 D는 식품 섭취만으로는 보충이 불가능한 영양소로 태양이 주는 무상의 선물이다.

햇빛은 질병과 싸우는 백혈구를 증가시켜 저항력을 강화시키고 심장마비와 뇌졸중의 위험성도 낮춰준다.

또한 햇볕을 쬐면 행복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세로토닌을 더 많이 분비하게 만들어 주기에 자연 항우울제가 된다.

GDP가 높은 데다 복지천국이라는 북유럽 우중충한 스칸디나비아 각국의 높은 자살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불면증 치료제이기도 한 것은, 낮에 햇빛을 충분히 받으면 약 14시간이 지난 뒤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순조로워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의 에너지원인 햇빛을 받으며 운동을 하면 한층 건강하고 활력 넘치게 되므로 태양을 극구 차단시킬 일이 아니다.

솔뱅이 아니라도 사철 햇빛 눈부신 Sunny Field인 이곳에서 솔라 에너지를 온몸으로 흡수하며 날마다 걸을 수 있는 일상.

심신 건강에 이 이상 더 유익하고 효과적인 조건들을 어디서 찾겠는가 싶다.

이탈리아 속담에 '해가 잘 드는 곳에는 의사가 필요 없다.'고 하였듯 이에 적당한 운동만 추가되면 의사 할 일 거의 없어진다.

이 점은 스스로의 직접경험에 의해 증명된 것이라 확신하는 바다.

캘리포니아로 옮겨 온 이후 나의 삶이 전에 비해 훨씬 밝아지고 의욕적이며 활기차졌음을 자신도 분명하게 느낀다.

행복의 주관적 요소인 자기만족이 있는 삶, 고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2018

-모든 운동의 준비와 마무리는 스트레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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