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 네 번째 주 목요일은 미국인들의 최대명절인 Thanksgiving Day로 법정공휴일이다.
터키요리와 펌킨파이가 주빈인 날이다.
식성에 맞지 않아 식구 아무도 반기지 않는 퍽퍽하면서 육질이 질긴 터키구이라 미국 살면서 단 한번 집에서 요리를 해봤을 뿐이다.
손주들이 유학 온 첫해였는데 보기엔 위 사진처럼 그럴싸했으나 아무도 터키를 좋아하지 않아 큼직한 터키가 처치곤란, 냉동실만 차지했다.
그 담부터는 칠면조 대신으로 통닭구이를 사 온 적도 있는데 오늘은 다 생략하고 한인이 하는 샤부샤부식당에서 만찬을 즐겼다.
미국 와서 첫해 추석날을 맞으며 참으로 심회가 수수하니 착잡했다.
차례는커녕 명절 기분 비슷한 것도 느낄 수 없는 타관에서 꼼짝없이 가게나 지키고 있자니 못 내는 추연한 기분마저 들었다.
대체 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였다.
달력에 빨간 표시가 된 추수감사절이 명절인 미국에서 추석날은 아무렇지 않게 무시되는 평일이었으니.
그 후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추석날이라 여기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불 환히 밝힌 앞집이
왁자지껄하다.
음악소리 웃음소리 드높고 아이들은 밖에서 뛰논다
연휴를 기해서 멀리 흩어져 살던 친척들이 모여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하늘의 축복에 감사드리며 파티를 즐기는 날답다.
전에는 명절을 챙기는 편으로 분위기라도 냈는데 이번엔 나 역시 번거로운 건 딱 질색,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우리 식구들 중에도 딸내미는 완전 토종, 한국식 문화를 고수하는 만치 음식도 한식을 선호한다.
왜 우리가 맛도 없는 터키를 구어가며 굳이 추수감사절을 챙겨야 하느냐는 데야 뭐...
어느새 7년 전 랭커스터에서 살 적이다.
11월이 기울며 벌써 술렁술렁 수업 분위기가 헐렁해지는가 싶더니 칠판에 공지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목요일 오후 학교 근방인 올리비아 집에서 댕스기빙 파티가 있으니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안 그래도 놀기 좋아하고 파티 좋아하는 남미 계통 사람들이 많은데 그때부터 교실은 슬슬 들뜨기 시작했다. 닷새 일하면 이틀은 모여서 질탕하니 먹고 마시고 흥겹게 춤추며 인생을 엔조이하는 라틴아메리카인들이다. 낙천적이고 자유로운 성향대로 신체도 낙천적이고 자유롭다 보니 대부분 몸집이 웬만한 山만하다. 특히 가슴이야말로 하나같이 풍만한 초특급 글래머들이다. 일부 연예인들은 전신 성형을 하고도 일부러 상반신을 슬쩍 숙여가며 딴에는 뇌쇄적으로 보이도록 애쓴다. 반면 이들은 태생적으로 가슴골을 일부러 만들 필요도 없는 순 자연산. 마침 제대로 한판 놀 건수를 만났다는 듯 아드리아나는 살사를 추듯 허리를 흔들며 신난 표정이 역력했다.
클래스에는 동양인 둘에 인도와 이집트 여성이 한 명, 시리아와 동유럽인이 하나씩 있고 그 외 전부 중남미 출신들이다. 국적은 다양해 브라질, 페루, 에콰도르, 멕시코, 우루과이, 쿠바도 있으나 언어는 브라질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스페인어권. 거의가 에스파냐어를 쓰므로 영어는 저리 가라로 자기네들끼리 '격하게' 자기네들 언어로 떠드니 시끌벅적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의 선조는 스페인인 포르투갈인을 주체로 하는 유럽 백인과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을 기본으로 한다. 거기다 원주민인 인디언과 유럽인과의 혼혈인 메스티소,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혼혈인 물라토 등이 있다. 메스티소는 서양 미인으로 완벽하게 재탄생했고 물라토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윤곽 뚜렷해 매력적이다. 암튼 다들 정열적인 데다 외향적인 성격에 덩치들이 우람하다. 일단 이국의 음식과 타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겠다 싶어 나도 은근 호기심이 동했다. 이날의 주인공인 터키는 올리비아가 굽고 그 외 부대 음식은 클래스 메이트들이 각자 하나씩 디쉬를 준비해 오기로 했다. 음식에 자신이 없는 나는 어느 자리에나 무리 없는 과일을 사가지고 갔다. 비장의 솜씨들을 발휘해 굽고 지지고 볶아온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모두 펼쳐놓으니 호화판 뷔페가 따로 없었다.
며칠 춥던 날씨가 풀리며 햇살 화창하게 내리는 오후, 야외에 차려진 식탁에 올려진 터키 두 마리는 잘 구워졌고 베이컨,부리토, 샐러드, 볶은밥, 호박과 애플파이, 케이크, 과일 등등 상차림이 다채롭고 풍요로웠다. 무엇보다 모처럼 학교 밖에서 한자리에 모이니 다들 하하 호호, 사진을 찍어대며 수다 떠느라 바쁘다. 그래도 먼저 식사 기도부터 했는데 에반젤리나가 영어와 스페인어로 각기 달리 한 기도는 아주 유창했다. 동서양 불문하고 입의 주기능이 먹고 말하는 것이듯 음식을 먹는 시간만은 그나마 조오용~했다. 터키만이 아니라 양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식성이라 여러 음식과는 대충 눈만 맞춰보고 갓 구운 빵과 샐러드로 식사를 대신했다. 모두들 덩치에 걸맞게 식성도 걸어 한 시간여 남짓 맛있게들 여러 차례씩 접시를 비우고 나자 분위기가 확 바뀐다. 이웃집 상관없이 음악 볼륨이 갑자기 높아지는가 싶더니 본격적으로 파티가 무르익어 이번엔 댄스타임이다.
그런데 어쩌랴, 동서양은 이리 차이가 나는 것을... 피하지방층이 엷은 두 동양인은 실내가 아니라서 점점 추위가 스며드는 걸, 아흐~ 더는 못 참겠다! 꾀꼬리. 으슬으슬 추워서 우리 둘은 감기라도 걸릴 것 같은데 그들은 반팔 차림에도 끄떡없이 에너지가 폭발하는 듯. 죄다 확확 열기에 들뜬 표정들이다. 거기다 몸치인 나뿐만 아니라 젊은 중국여성도 춤이라면 젬병인 모양.
우리는 의기투합, 표시 안 나게 슬그머니 퇴장하는 게 최선책 같았다. 혹여 분위기 흐리기 전에 눈치껏 알아서 일찌감치 또한 아무런 미련 없이 우리 둘은 슬그머니 퇴각했다.
시대가 점점 글로벌화되면서 음식도 문화도 정치나 경제마저도 점점 닮은 꼴이 되어가고 있긴 하나.... 그럼에도 동과 서의 차이점은 이렇듯 확연히 드러난다. 피부색만이 아니라 뇌구조부터, 피부터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 근본적 차이라니. 글로벌 스탠더드라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의 무의식과 사고방식, 행동 패턴 등은 옛 동양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기에 아무래도 서양인의 행동양식과는 서로 차이가 나, 그들 式에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왠지 어설프면서 거북하기도 하다.
동과 서는 표현방식부터 다르다. 차를 더 마실래? 와 More tea? 에서 보듯이 동양인은 동사 위주의 표현을 즐기고 서양은 물질 위주의 표현을 주로 한다. 또한 동양은 물질과 시간을 고정 불변의 것으로 보지 않고 순환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한편 서양은 물질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으로 이루어진 고정불변의 개념으로 파악한다. 물질의 속성도 중요하지만 동양은 순환하는 과정, 그 사이의 관계, 원인과 결과 등을 중요시한다. 동양에서는 기쁨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은 ^^, *^^*이다. 슬픔은 ㅜㅜ,ㅠㅠ이다. 반면 서양은 기쁨 :), 슬픔 :(처럼 입 모양으로 표현하는데 즉 입꼬리를 올리고 내림으로써 자기감정을 나타낸다. 눈의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동양인에 비해 서양인은 입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해서 서양인이 보기에는 동양인은 표정이 없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평소 서양인이 훨씬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만 동양인은 이심전심 눈빛으로 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