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은 배추 고르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요. 겉 이파리가 새파라니 싱싱한 배추 포기를 눌러봐서 알이 꽉 차고, 속대를 먹어보면 달큰 고소한 걸 골라서요. 배추 크기에 따라 두 쪽이나 네 쪽을 낸 다음 갈피마다 천일염 훌훌 쳐서 염도 알맞게 하여 큰 통에 착착 쟁여둡니다. 배추 절이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아, 오랜 살림의 노하우가 밴 손맛이란 게 이때 필요한데 사실 맛있는 김장의 비결도 여기서 좌우된다 하더군요. 열 시간 정도 잘 절인 다음 깨끗하게 헹궈서 물기를 빼놓고 속 넣을 준비에 들어가지요. 최근에는 이 과정 모두를 지방의 단위농협에서 신용을 걸고 일괄처리해 전국에 유통시키더라구요. 정말 주부들 살기 편해진 세상이지요.
다음 단계로는 미리 준비해 둔 갖가지 양념을 한데 버무릴 차례가 되겠는데요. 소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재료는 지방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나더군요. 지방마다 김치 맛이 다른 것은 기후에 맞춰 젓갈과 양념재료가 다른 때문이더라고요. 물론 기본양념인 마늘 파 생강 미나리 갓 고춧가루와 같은 부재료는 동일하나, 새우젓을 쓰느냐 멸치젓을 쓰느냐에 따라 김장맛이 차이나는거죠. 통배추김치, 보쌈김치, 깍두기, 동치미, 백김치, 고들빼기김치, 섞박지, 젓국지, 호박지 등 김치 종류도 지방별로 물론 다르답니다. 충청도에서 즐겨 담는 호박지를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모르고요. 김장 때 새우젓과 황석어젓을 주로 쓰면서 생굴 생새우 생태를 저며 넣으므로 김장맛이 시원한 충청도 식은 국물도 많은데요. 반면 경상도 식은 멸치젓 위주라 비릿하면서 뻑뻑하고 간이 꽤 세더라고요. 부산은 위 사진 양념처럼 무채는 아예 안 넣고 해조류인 청각을 양념에 많이 넣더군요.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 기사에서 '한국의 김치는 저렴한 건강보험’이라고 극찬한 바 있지요. 적당히 숙성 발효시킨 건강식품 김치의 우수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재론할 필요가 없구요. 2013년 제8차 유네스코 위원회에서는 김장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최종 확정했다는 뉴스도 있었어요. 특이한 점은 김치라는 음식을 등재한 것이 아니라 김장이라는 우리 문화를 등록했다네요. 정식 명칭이 ‘김장,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Kimjang :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랍니다. 몇 백 포기의 김장을 하려면 으레 이웃 간에 품앗이하듯 함께 모여서 김장을 담갔으므로 우리만의 공동체 정서가 담긴 독특한 문화를 기린 것이지요. 요즘은 봉사 단체에서 군부대나 소외가정을 위해 대량으로 김장을 담글 뿐이고요. 각 가정에서는 고작 여남은 포기 정도나 김장을 담는데요.
예전에 김장김치는 반 양식이라고 했어요.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한겨울로 접어들기 이전에 집집마다 김장을 많이 담가서 저장해 두는 게 중요한 연중행사였지요. 배추 한 접(100 포기)은 예사였고요. 식구가 많을수록 몇 접씩 배추김치를 담가야 했는데요. 어는 것을 막으려고 담근 김치를 항아리째 땅에 묻거나 가마니로 겹겹이 싼 김치광을 따로 만들기도 했지요. 이제는 식습관이 변하고 입맛도 변해서 전통으로 이어져 온 김장 담는 집도 영 줄어들었는데요. 상품화된 김치 맛에 익숙해진 젊은 주부들은 김장이란 개념 자체조차 낯설 정도가 됐네요. 정말 여러모로 세상 아주 많이 바뀌었습니다.
혹시 김장 때 배추의 노란 속잎 떼어 속대쌈 먹어본 기억이 있나요. 배춧속 넣으며 그냥 배추쌈에 양념만 올려놓고 먹어도 맛있지만, 간간 잡히는 굴을 속잎에 싸서 엄마가 입에 쏘옥 넣어주던 그 맛이라니... 김장 돕는 이웃들 대접하려고 돼지고기 삶은 수육 두툼하게 썰어 접시 수북 내놓기도 했는데요. 배추쌈 위에 수육 얹어 먹으면 배추와 양념과 수육이 서로 환상의 조합을 이뤄 입에 착 감겨들던 그 맛. 오직 김장철에만 맛볼 수 있는 그 맛을 어디서 다시금 누려볼라나요.
유년의 김장날, 어느 핸가는 펄펄 눈발이 날리기도 했어요. 지금처럼 일기예보에 따라 일정을 짜던 시절이 아니니, 이미 들여온 배추 쪼개 절여둔 다음날이면 날씨 상관없이 일은 진행돼야 했거든요. 발갛게 언 손으로 배추를 정히 헹궈 채반에 걸쳐놓던 엄마는 마당에 장작불을 피워놨어도 당신 손을 녹일 짬은 없었지요. 김장 속 넣을 다음 단계 준비를 여축없이 해놓아야 하니까요. 간밤 내내 무채 썰어 함지에 버무려둔 양념소를 꺼내놓고요. 둘레상 펴서 배추부터 옮겨다 놓고 모리모리 둘러앉아 겉줄기부터 들춰가며 소를 골고루 넣어 척척 치대던 이웃들. 끝으로 배춧잎을 꼭 여며서 독에 차곡차곡 쟁여 넣던 엄마 팔목까지 양념 물이 벌겋게 묻어있었지요.
김장 항아리 맨 위에 천일염 한 움큼 술술 쳐서 뚜껑 덮고 며칠 지나 국물이 생기면 둥글납작한 호박돌로 누질러 놓았는데요. 김치 국물에 김치가 푹 잠기도록 해야 맛있는 김장맛을 내게 된다고 하면서요. 그렇게 공기와 김치의 접촉면을 최소화하면 김치 맛이 변하지 않고 고유의 맛도 한결 더 난다네요. 허나 경상도 식 김치는 무채가 들어가지 않아서 거의 국물은 없더라고요. 그래서인지 김치 한 포기 꺼낸 다음 야물딱지게 꼭꼭 눌러 푸른 배춧잎으로 잘 덮어두긴 하더군요. 오늘 찍은 갱상도 부산식 김장 사진은 마침 옆집 할머니가 김장한다기에 몇 컷... 위 지방보다 보름여 정도 늦은 남도의 김장날, 다행히 눈 내린 다음이라 날씨가 푹해 김장 담기 아주 좋은 날이었고요. 그나저나 김치는 염장식품인 만치 짜지 않게, 드시는 양은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거 유념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