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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무량화
Dec 03. 2024
한라산 설경 초대
눈이 부셔 늦잠에서 깨보니 하늘빛이 새파랬다.
현관문을 열자 눈바람 싸하게 밀려왔고, 건너다 보이는 백록담은 새하얗다.
섣달 첫날인 어제는 적설량도 적고 날씨도 흐려 눈구경을 덮었던 터.
오늘은 하늘 청명한 데다 바람 없고 햇살 따스해 온화하기 그지없는 겨울 날씨.
기상상태가 최적인 이런 아침이야말로 설경 방문에 안성맞춤이다.
서둘러 방한복에 장갑으로 중무장하고 아이젠까지 찾아 넣고 보니 시간이 꽤 됐다.
중문에서 240번을 타면 1100고지 휴게소 바로 코앞에서 내려준다.
인기몰이를 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새 이름으로 운행될 "
한라눈꽃버스"는 240번 운행차량의 횟수를 늘려 관광객을 모실 예정.
눈꽃버스는
12월 21일부터 내년 2월 23일까지 운행되며 토요일·공휴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제주버스터미널
~
1100 도로 영실 매표소
~
중문컨벤션
센터
구간을 왕복으로 다닌다.
특히
1100 도로상에 적설량이 많아지면 일반 승용차는 통행금지, 따라서
한라눈꽃버스만이
다니며
한라산 고지 설경이 빚어내는 비경 속으로 안내해 준다.
중문 사거리에 닿으니
마침
배차시간이
맞아떨어져
금세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영실
입구쯤에서부터
눈이
쌓이기 시작하더니 오를수록 자욱한 은세계가 펼쳐졌
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이미 차량과 인파로 인근은 북새통이다.
내려가는 차 시간부터
체크해 뒀다.
12시 10분 차를 타면 오후 시간 일도 넉넉히 보겠다.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며 은세계로 진입, 흐벅지게 쌓인 눈은 아니나 설경의 신비를 만끽했다.
서귀포 시내에서는 7도였는데 설경 어우러진 천백고지에 올라오니 고도가 있어서인지 3도로 떨어졌다.
그래도 영하로는 내려가지 않아 춥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지난해 눈 펄펄 내린 다음날 천백고지에 왔다가 동태 될뻔했기에 옷을 많이 껴입어 오히려 부둔했다.
그땐 눈이 겹 쌓여 얼었다 녹았다 하는 바람에 길이 온통 빙판이었지만 이번엔 길가 눈은 녹아 아이젠도 필요치 않았다.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도 물로 변해 후드득 떨어졌다.
모자 위로 눈덩이들이 힘없이 쏟아져 내렸다.
휴게실 좌우편으로 눈꽃 소담스레 피었고 흰 눈에 싸인 구상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한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고상돈 동상 못 미쳐 백록상은 푸른 하늘 배경으로 더욱 희디혔다.
백설 자욱한 한라산 기슭, 바로 눈앞엔 멋들어진 설화가 곳곳에 비경을 이뤘다.
차도를 건너 천백고지 습지 탐방로 데크로 접어들었다.
한라산에 첫눈 내려 삼라만상이 고요한 가운데, 설경에 초대받은 객들은 삼삼오오 데크길 거닐며 선경에
취해 들었다.
그랬다. 신선이 달리 신선인가.
자연 속에 들어 잠시나마 속계 잊고 선계에 들면 그가 신선이요, 그가 누리는 삼매경이 신선놀음 아니랴.
도낏자루야 썩든 말든, 세간사는 물론 시간 흐름마저 잊고, 딴 데 오롯이 정신 팔 수 있다는 것.
아무렴! 여타 시름이나 아무런 고민도 없이 평안한 경지 여유롭게 누린다면 그게 곧 행복이리.
제주 쪽에서 느릿느릿 구름장 밀려들어 푸르른 하늘 잠식당했지만 여전히 맑은 날씨에 햇살 부드러웠다.
윤노리나무, 산딸나무, 팥배나무, 참빗살나무 등 팻말 달린 나무 이름을 되뇌어가며 걸었다.
친근한 소나무와 솔잎 유난히 긴 잣나무 비슷한 나무도 있고 전나무 닮은 침엽수도 간간 섞였다.
굴거리나무 같은 상록관엽수도 잎자루에 눈을 인채
무거운 듯 고개 푹 떨구었다.
윤기로운 청미래 열매 붉디붉었으며 시든 풀 누렇게 깔린 습지 물길은 얇으레 얼어 있었다.
전에 노루를 만난 습지 바로 그 자리에 오늘은 산까마귀만 정중동, 푸다닥거리며 물놀이를 즐겼다.
람사르 습지로 보호받는 여길 한바퀴 돌자면 20분 정도 소요되므로 천천히 걸으며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담았다.
서울은 폭설과 한파가 덮쳤다는데 여긴 볕바른 일기라 장갑 벗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영상의 겨울 날씨는 기분 아주 쾌적하고 산뜻하게
해 줬다.
백설 천지인 산정이라 더군다나 공기 투명히 맑아
산뜻
상쾌한 산책시간이었다.
천백고지에서 두 시간 정도 머무르면서 눈구경
멀미 나도록
할 수
있었으니 오늘도 축복 가득한
하루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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