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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을 돕는 면형의 집

by 무량화
야자수와 화산석이 맞아주는 면형의 집 안내석을 지나자, 한겨울에도 곱게 핀 장미가 시봉하는 김대건 신부님 상


돌담 사이 토종 동백꽃길 지나 복자 수도원 면형의 집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절로 두 손 모아졌다.

온 데서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데는, 신목처럼 압도해 오는 수령 220년 차 녹나무 웅자도 경건한 분위기에 한몫했다.

그때도 있었을, 해묵은 이 나무 아래 거닐며 에밀 타케신부는 나무와 무슨 대화 나눴을까.

타국 땅 조선, 그것도 가난하고 척박한 외진 섬에 십자가 꽂으면서 그는 어떤 기도를 바쳤을까.

홍로 본당 지으며 생명에 대한 외경감으로 그는 이 우람하고도 실한 나무와 같이 살기로 진작에 작정했을 터.

아마도 그래서였으리라.

아늑한 평화와 위안이 스며드는 정원에 안긴 것만으로도 고해성사받은 뒤의 정화된 느낌이 들이찼다.

그랬다.

오래오래 그 자리에 머무르고 싶었다.

정원수인 나이 든 동백나무 아래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무한 침묵에 잠겨 들고도 싶었다.

무엇보다 십자가의 길 십사처 하나씩 그 앞에 무릎 꿇고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아뢰고 싶었다.



면형의 집은 한국 순교자들의 영성을 알리며 신자들의 영성생활을 돕는 피정센터 운영을 통해 신자 재교육의 장으로써 역할을 한다.

생소한 단어 면형(麵形)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았다.

면형이란 동그란 밀떡이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로 바뀐 후에도 그 모양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겉모양을 이르는 가톨릭 용어.

즉 밀떡의 형상을 한 성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설립자 안드레아 신부의 영성 용어 ‘면형 무아(麵形 無我)’에서 따왔다.

면형무아란 면형이 축성되어 그리스도의 몸이 되듯 나란 인간적 본성이 없어진 무아에서만이 하느님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이다.

성체성사의 삶으로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영성의 삶을 면형무아라 이른다고.

영성이란 초월적 경계는 너무 높고도 숭고하기만 해 그 근처 감히 서성일 수 없어서이리라.

낯설고도 어려운 단어 말고 대신 낯익은 호랑가시나무 여기선 구골목서라 부르는 하얀 꽃 펴 향기 가득 정원에 차면 오래 거닐어보리.

조촐한 주님의 집은 본관 오른편에서 고요로이 기다린다.

항시 문이 열려있어서 언제라도 고단한 세간사 부려놓고 마음 다스릴 수 있다.



피정은 말 그대로 일상생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 조용한 곳으로 가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 걸 의미한다.

평소 머물렀던 자리에서 잠시 벗어나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고 묵상과 성찰기도를 바치며 자신을 정화시키는 피정.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에서 두 번째로 설립한 분원으로 귤 농장과 피정의 집을 함께 하고 있는 면형의 집이다.

면형의 집은 제주에 천주교가 전래된 초기부터 자리한 유서 깊은 장소로 1902년 프랑스에서 온 타케 신부가 이곳에 홍로본당을 건립했다.

서귀포성당 제3대 주임인 타케 신부는 홍로 본당을 세웠는데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사목 하는 포리 신부가 두 차례 홍로성당을 방문한다.

이때 식물학자이기도 한 포리 신부로부터 식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뒤 관심 깊게 제주의 식물군을 관찰해 나간다.

그러던 중 유럽에는 없는 왕벚나무 자생지를 한라산 관음사 부근 해발 6백 미터 지점에서 발견하고 1908년 유럽 학계에 보고하게 된다.

표본번호 4638호인 왕벚나무 자생지가 제주임을 타케신부가 최초로 세상에 알린 것.



식물학계의 인정을 받게 된 타케 신부는 감사의 뜻으로 1911년 포리 신부에게 왕벚나무를 선물로 보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기준 어미나무로 명명한 관음사 지구 왕벚나무 후계목은 현재 서귀포성당 정원에서 자란다.

왕벚나무를 선물한 뒤 그 답례로 일본에 있는 포리 신부로부터 온주밀감 나무 열네 그루를 기증받았다.

제주 귤 재배 역사의 시작은 그렇게 싹을 틔우게 되었다.

열네 그루의 나무 중 하나는 백 년 넘게 면형의 집 앞마당을 지켰는데 저지난해 고사했다.

고사목은 방부처리 후 비정형 나무조각 작품으로 재탄생해 <홍로의 맥>이라는 제목으로 주님의 집 현관 안에 전시돼 있다

면형의 집 정원의 감귤나무 옆에는 감귤 시원지 기념비도 세워졌다.

천주교 탄압으로 와해 위기에 처한 제주 천주교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한국전쟁 때는 피난처 신학교로 사제들을 양성하기도 한 이곳.

지금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피정센터로 천주교 신자들과 비신자들을 위한 피정의 집이 운영되고 있다.

단체는 90명까지 피정 가능하고 매일 아침 7시에 미사가 있으며 면담 성사도 볼 수 있다.


전 화 : (064) 762-6009

팩 스 : (064) 732-6009

홈페이지 : http://brotherhood.or.kr/p_pj_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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