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세 번째 주일 아침입니다.
서귀포 앞바다에서 태양이 눈부시게 떠올랐습니다.
가톨릭에서는 해마다 이날을 ‘주님 공현 대축일 ’로 지냅니다.
도반 내외가 이시돌목장에 있는 삼위일체 대성당 미사에 참례한다기에 동행을 약속한 터였습니다.
열한 시 미사에 맞춰 일찌감치 출발해서 미리 성사를 본 다음 전례에 임했는데요.
전과 달리 마치 알퐁스 도오데의 마지막 수업처럼, 본기도와 독서로 듣는 말씀 구절들 절실하게 새겨졌지요.
분위기 덕택인지 마음 간절해서인지 오늘따라 한층 경건해졌습니다.
한참만에 갖게 된 삼위일체 성전에서의 미사가 그만큼 감회 깊었나 봅니다.
제1 독서 이사야서의 말씀 중 "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 란 구절에 이르자 열없이 두근거리는 심장 지그시 눌러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축복은 감사하기 전까지는 축복이 아니라 했습니다.
제게 허락해 주신 건강과 평안의 축복, 누리기 과분하도록 '빛처럼 드러나' 오늘도 감사 기도로 시작한 하루입니다.
부디 신앙의 모범이신 성모님 본받아 하느님 뜻에 맞갖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게 하소서.
아직 짊어져야 할 십자가 남아있다면 스스로를 통찰하며 기꺼이 순명하게 하소서.
이시돌 목장은 제주판 오병이어 기적을 이룬 현장입니다. 맥그린치(Patrick James Mcglinchey1928-2018)란 아일랜드 신부가 이국땅에서 실천한 감동적인 사랑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25세 때 사제 서품을 받고 1954년 벽안의 젊은 신부가 제주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 당시의 시대 상황은 제주 4·3 사건의 와중에 민족적 비극인 육이오 전쟁이 휩쓸어 더없이 빈곤한 데다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제주땅이었습니다.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인 신부는 신자 몇 명 밖에 안 되는 척박한 땅 한림에 와서 성당을 짓고 초대 주임신부가 됩니다.
그가 처음 시도한 일은 지역민들을 지독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살 길을 터주는 일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을 모아 낙후된 농촌 생활을 개선해 나가는 활동인 4-H 운동을 필두로 가축 기르는 법을 먼저 교육시켰지요. 1959년에는 육지 공장에서 일하다 목숨 잃은 소녀의 참상을 보고 제주지역 내 여성 일자리 창출을 위한 수직 강습소를 세웠고요. 수직 기술이 있는 성 골롬반 수녀회를 초빙해 물레질 교육부터 시켜서 천 3백여 명의 여성 일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사금융 수단인 계(契)가 깨져 신자 한 사람이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1962년 지역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해 운영했습니다.
육지에 갔다가 그는 새끼 밴 요크셔 돼지 한 마리를 끌고 와 그 돼지가 낳은 새끼 열 마리로 돼지 신부님이란 애칭도 붙게 됐다지요. 양돈업이 번성해 만 오천 마리로 늘어나자 1980년 무렵 농가에 돼지를 골고루 분양해 주었는데요. 그렇게 주민들의 자립을 도운 결과 잘 알다시피 현재까지 양돈은 제주의 중요 산업 자원으로 자리잡게 되었답니다. 한라산 중산간 지대의 드넓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그는 1961년 성 이시돌의 이름을 따서 목초지에 중앙실습목장을 만듭니다. 그곳에 뉴질랜드에서 들여온 면양과 호주에서 도입한 소를 방목해 대규모 목장을 운영, 동양 최대 이시돌 목장으로 성장시켰지요.
1970년 낙후된 지역사회의 건강복지를 돕는 사업으로 성 이시돌 의원을 개원했습니다. 1981년에는 캐나다에서 젖소와 육우를 들여와 치즈 가공공장을 만들었고 현대화된 배합사료 공장도 운영하게 됐답니다. 이처럼 맥그린치 신부님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제주도민의 자립과 사람다운 삶을 위해 평생을 바쳤답니다. '너희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는 말씀처럼요. 그는 주민을 위한 각종 복지시설을 세워 사회에 환원하고 떠난 참 봉사자였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결과는 신부님의 성심 어린 노력과 지역 주민들의 전폭적인 협조와 동참에 힘입어 이루어진 것일 겁니다. 현재 성이시돌목장 안에는 양로원, 피정센터, 은총의 동산, 금악성당, 클라라관상수녀원과 삼위일체대성당이 자리해 천주교 성지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이시돌 목장은 스페인 농민들의 수호성인인 '성 이시돌(St. Isidore Patron Saint of Farmers)'에서 따왔는데요. 농민들의 수호성인인 이시돌 성인은 1110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가난한 부모 슬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농장 일꾼으로 살았지만 하느님에 대한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마리아 토리비아라는 심신 깊은 여인과 결혼했지요. 부부는 형편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동정심이 많았기에 늘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쟁기질하는데 두 천사가 나타나 함께 밭을 갈아줘, 이후부터 혼자 한 일인데도 세 사람 몫의 결과를 낼 수 있었다네요. 농사꾼으로 성실히 살다가 나이 육십에 하느님 품에 안겼는데 교회는 그를 세계 농민들의 수호성인으로 모셨답니다.
성이시돌 목장에 가면 신자 비신자를 막론하고 자기정화를 위해 새미 은총의 동산은 필히 들러 볼 만합니다. 삼나무 소나무 어우러진 숲과 잘 가꿔진 조경수들로 둘러싸인 아담스런 호수 새미소 주변은 성서공원으로 다듬어졌는데요. 예수님 생애 일화와 기적들이 실물대 크기로 조각돼 있는 '예수 생애 공원'은 배경 조경수와 조각품이 절묘하게 조화 이뤘고요. 성서 속의 예수님 수난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십자가의 길’을 비롯해, 산책하며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는 ‘묵주 기도 호수’와 야외 미사가 이뤄지는 ‘성모 동굴’ 등이 감동을 줍니다.
새해 들어 멀리 대성당까지 와 미사를 마치고 은총 동산에 들러 심신 정결히 다듬었으니 올해도 날마다 좋은 날들 이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