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나무는 연륜이 덧보태질수록 운치롭다.
회초리같이 무수히 올라오는 햇순을 정돈해 주되 안목있게 전지를 해줘야만 분재처럼 단아한 체형이 유지된다.
그만큼 관리가 중요하다.
칠십리시공원 매화낭은 그 점 후한 점수를 받을만하다.
입지 면에서도 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기품있게 자리잡은 고매라 한층 더 아취와 품격이 느껴진다.
다만 걸매공원보다 약간 철이 늦어 매화철 한창일 즈음이면 자력에 이끌리듯 발길 자주 시공원으로 향했다.
안개같은 세우 젖어드는 날도, 바람 거칠게 몰아쳐 매화 꽃비되어 휘날릴 적에도, 은근스러운 매화 암향 탐하며 야행조차도 하곤 했다.
이곳 매화 길은 서귀포시와 자매도시가 된 이바라키현에서 한일간 우호친선의 의미로 보낸 기금으로 조성되었다고.
아무려나 꽃길까지 미워해서야 쓰겠나?
그러나 이날은 일단 시공원 매화는 접어두고 일로 직진, 달리기 수준으로 샛기정길을 뛰어내려가야 했다.
바다에 노을빛 어리는 걸로 미루어 일몰 시각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새연교가 보이는 언덕길 중간쯤에서 잠깐 멈춰 섰다.
볼 적마다 감탄하게 되는 저 실루엣.
새섬에서 자연스레 연결되는 새연교와 바다 한가운데 뜬 범섬 그리고 서귀포층을 품은 절벽지 풍경만이랴.
남성중로 해변길 따라 늘씬하게 솟은 야자수가 노을에 젖어드는 저 이국적 풍광이라니.
해가 바다로 숨어버리기 전 새연교 위에 서려고 다시금 걸음을 재촉했다.
범섬 옆으로 지는 해를 배웅하고자 방파제 앞에도, 새연교 위에도 사람들이 꽤 모여있었다.
오늘따라 구름 한 점 거느리지 않은 하늘.
그래선지 낙조는 더더욱 선연하면서도 광휘로웠다.
이튿날부터 주말 동안 계속 비 소식이 들었기에 날씨 좋은 오후를 택해 왔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범섬 오른쪽으로 서서히 내려앉는 해.
법환포구와 강정해안 그리고 아스라이 산방산 윤곽이 잡힌다.
태양은 그 순간에도 쉼없이 바다 향해 자신을 점점 더 내려놓았다.
바다로 스러지기 직전 바로 그 순간, 햇살은 마지막으로 눈부신 광채를 힘껏 발하고는 이윽고 사라졌다.
촛불이, 다 타버린 심지 끝에서 한번 크게 일렁이다
마침내 스러지듯이.
새연교에 올라 서쪽 향해 손 모둔 채 내내, 저처럼 자연스럽게 우리도 평온하고 고요한 끝맺음 할 수 있게 되길 기원했다.
부디,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 그간 고마웠노라고 조그맣게 되뇌며 손 흔들어 모두와 작별할 수 있기를.
할 일 다 마치고 서서히 바다에 잠겨드는 태양.
해는 내일 다시 떠오르지만 오늘을 종결한다는 마지막이 주는 숙연함.
그건 비감이 아닌 숙제를 마친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돌아서서 천천히 걸어 귀로에 올랐다.
이중섭이 잠시 머문 초가지붕 위 목련 봉오리 부풀어 하얀 속살 비칠 거 같았다.
밤이라 더 활기 넘쳐나는 올레시장은 여전스레 붐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