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해안 길은 어느 때라도 부담없이 걸을 수 있는 안전한 올레 10코스 중 일부다.
포시즌이 아니라 깨끗한 모래와 푸른 물이 어우러진 '명사 벽계'를 일컬어 이름부터 사계(沙溪)다.
산방산 아래 완만한 포물선 그으며 길게 펼쳐진 해변은 부드럽고 곳곳의 특색있는 지층대도 꽤나 흥미롭다.
모래언덕 능선을 떠라 산책하듯 사박사박 걸어가며 한번씩 시선 틀어 뒤편 한라산과 산방산 자태를 감상하는 묘미 역시 각별하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지질 트레일 답사를 마치고 점심식사 후 내처 서쪽으로 걷기 시작한 터다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증받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브랜드를 꼼꼼스레 훑어보기 위해서다.
사계해안을 걷노라면 초입에서 특이한 해안사구를 만나게 된다.
상층에 가는 모래가 쌓인 언덕 지형이 나타나는데 아주 단단한 사구라서 신기한지라 저마다 이리저리 사진에 담아둔다.
이어서 송악산의 용암 분출 후 화산재가 쌓인 상태에서 그 위로 걸어 다닌 사람과 동물 발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는 발자국 화석지에 닿게 된다.
억겁의 시간이 빚어낸 이야기에 귀 열어두고 걷는 지질 여행에는 청푸른 사계 해변이 탄주 하는 해조음도 동행한다.
형제해안길 따라 걷노라면 까만 화산석은 물론이고 제주 사람들이 누룩돌, 누룩빌레라 부르는 누런 암석 덩이가 질펀히 깔렸다.
지질 트레일에 이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든 해안길 끝나자 길게 누운 송악산이 바짝 다가와 선다.
건공중에 떠오른 한라산은 멀리서 구름과 희롱하고 연안 낚시터로 인기 그만이라는 형제섬은 사계 앞바다에서 늘 다정스럽다.
송악산 둘레길은 산세 아기자기한 데다 제법 가파른 오름길도 있어 다채롭게 오르내릴 수 있는 트래킹 코스다.
산정에 서면 동으로는 멀리 눈을 인 한라산이 떠오르고 산방산, 단산, 군산은 물론 중문 주상절리대 등 해안선 또렷하게 드러난다.
저 아래 서남쪽 바다엔 가파도 마라도가 널빤지 쪽처럼 길줌하니 떠있다.
반도처럼 쑥 삐져나온 널펀펀한 지형에 산이라기엔 보잘것없는 야트막한 언덕 몇 개 있는 듯하던 송악산.
알고 보니 아흔아홉 개의 작은 봉우리가 모여있어 일명 99봉이라고도 한다는데.
더구나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이중 분화구를 지닌 화산지형이란다.
1차 폭발로 형성된 제1분화구 안에서 2차로 또 폭발이 일어나 두 개의 분화구가 생긴 경우라고.
송악산이란 이름과는 달리 듬성듬성 작은 소나무뿐 풀만 무성한 민둥산이지만 과거엔 동백, 후박, 느릅나무 숲 우거졌었단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군사기지를 만드느라 숲을 몽땅 불태워 지금처럼 헐벗은 산이 되고 말았다.
뿐 아니라 숲 속 여기저기 땅굴을 파놨으며 해안가 절벽에 일제는 흉물스러운 진지동굴을 열다섯 개나 뚫어놓았다.
산길 걸으며 방목해 키우는 말을 가까이서 볼 수는 있었다만, 동굴 터를 들여다 볼적마다 절로 터지는 탄식.
그러게 조선국 군주든 벼슬아치라는 위정자들 모두, 나라 잃는 핫바지 바보짓은 하지 말았어야.